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현대북한의 경제

1946년 북한 토지 개혁에 대한 법령

북조선 토지 개혁에 대한 법령(1946.3.5)

제1조 북조선 토지 개혁은 역사적 또는 경제적 필요성으로 된다.

토지 개혁의 과업은 일본인 토지 소유와 조선인 지주들의 토지 소유 및 소작제를 철폐하고 토지 이용권은 경작하는 농민에게 있다. 북조선에서의 농업 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은 농민의 개인 소유인 농민 경제에 의거한다.

제2조 몰수되어 농민소유지로 넘어가는 토지들은 아래와 같다.

ㄱ.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단체의 소유지

ㄴ. 조선 민족의 반역자, 조선 인민의 이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 제국주의자의 정권기관에 적극 협력한 자의 소유지와 일본 압박 밑에서 조선이 해산될 때에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 자들의 소유

제3조 몰수하여 무상으로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 토지는 아래와 같다.

ㄱ. 1 농호에 5정보 이상 가지고 있는 조선인 지주의 소유지

ㄴ. 스스로 경작하지 않고 전부 소작 주는 소유자의 토지

ㄷ. 면적에 관계 없이 계속적으로 소작 주는 전 토지

ㄹ. 5정보 이상을 소유한 성당, 사원 기타 종교 단체의 소유지

제4조 몰수되지 않은 토지는 아래와 같다.

ㄱ. 학교, 과학연구회, 병원 소유지

ㄴ.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특별한 결정으로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반일 침략 투쟁에서 공로 있는 자들과 그의 가족에 속하는 토지, 조선 민족 문화 발전에 특별한 공로자와 그의 가족에 속한 토지

제5조 제2조, 제3조에 의하여 몰수한 토지 전부 농민에게 무상으로 영원한 소유지로 양여함

제6조

ㄱ. 몰수한 토지는 고용자, 토지 없는 농민, 토지 적은 농민에게 분여하기 위하여 인민위원회 처리에 위임함

ㄴ. 자기 노력에 의하여 경작하는 농민의 소유지는 분할치 아니함

ㄷ. 자기 노력으로 경작하려는 지주들은 본 토지 개혁에 대한 법령에 의하여 농민들과 같은 권리로써 다만 다른 군에서 토지를 가질 수 있음

제7조 토지를 농민 소유로 분여하는 식을 도 인민위원회가 토지 소유권에 대한 증명서를 교부하며 이를 토지 대장에 등록함으로써 완결됨

제8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준 토지는 일반 부채 부담에서 면제함

제9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할양당한 지주에게서 차용한 고용자와 농민의 일체 부채는 취소함

제10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분여된 토지는 매매치 못하며 소작주지 못하며 저당하지 못함

제11조 지주의 축력 농업기구 주택의 일체 건축대지 등은 제3조 【ㄱ】항에 의하여 몰수되어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하되 인민위원회는 본 법령 제6조에 의하여 토지 가지는 고용자, 토지 없는 농민에게 분여함. 몰수된 일체 건물은 학교, 병원 기타 사회기관의 이용으로 넘길 수 있음

제12조 일본 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 일체 단체의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도 인민위원회에 맡김. 본 법령 제3조 【ㄱ】항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조선인 지주의 소유인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인민위원회에 보류됨

제13조 농민들이 소유한 적은 산림을 제외하고 전 산림은 몰수하여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함

제14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소유자에게 소유된 관개시설의 전부는 무상으로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함

제15조 토지 개혁은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지도하에 실시됨. 지방에서 토지 개혁을 실시할 책임은 도, 군, 면 인민위원회에 부담되며 농촌에서는 고용자, 토지 없는 소작인, 토지 적은 소작인들의 총회에서 선거된 농촌위원회에 부담됨

제16조 본 법령은 공포한 시기부터 실행력을 가짐

제17조 토지 개혁 실행은 1946년 3월 말일 전으로 마칠 것

토지 소유권 증명서는 금년 6월 20일 전으로 교부할 것

1946년 3월 5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서기장 강양욱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연감』, 1950

北朝鮮土地改革에 대한 法令(1946.3.5)

第1條 北朝鮮土地改革은 歷史的 또는 經濟的 必要性으로 된다.

土地改革의 課業은 日本人土地所有와 朝鮮人地主들의 土地所有 及 小作制를 撤廢하고 土地利用權은 耕作하는 農民에게 있다. 北朝鮮에서의 農業制度는 地主에게 隷屬되지 않은 農民의 個人所有인 農民經理에 依據한다.

第2條 沒收되어 農民所有地로 넘어가는 土地들은 如左함

ㄱ. 日本國家, 日本人 及 日本人團體의 所有地

ㄴ. 朝鮮民族의 叛逆者, 朝鮮人民의 利益에 損害를 주며 日本帝國主義者의 政權機關에 積極 協力한 者의 所有地와 日本 壓迫 밑에서 朝鮮이 解放될 때에 自己 地方에서 逃走한 者들의 所有.

第3條 沒收하여 無償으로 農民의 所有로 分與하는 土地는 如左함

ㄱ. 1 農戶에 5町步以上 가지고 있는 朝鮮人 地主의 所有地

ㄴ. 自耕치 않고 全部 小作주는 所有者의 土地

ㄷ. 面積에 不關하고 繼續的으로 小作주는 全土地

ㄹ. 5町步以上으로 所有한 聖堂, 僧院 其他 宗敎 團體의 所有地

第4條 沒收되지 않는 土地는 如左함

ㄱ. 學校, 科學硏究會, 病院 所有地

ㄴ. 北朝鮮人民委員會의 特別한 決定으로 朝鮮의 自由와 獨立을 爲하여 反日本侵略鬪爭에서 功勞있는 者들과 그의 家族에게 屬하는 土地, 朝鮮民族文化發展에 特別한 功勞者과 그의 家族에 屬한 土地

第5條 第2條, 第3條에 依하여 沒收한 土地 全部 農民에게 無償으로 永遠한 所有地로 讓與함

第6條

ㄱ. 沒收한 土地는 雇傭者, 土地 없는 農民, 土地 적은 農民에게 分與하기 위하여 人民委員會 處理에 委任함

ㄴ. 自己 勞力에 依하여 耕作하는 農民의 所有地는 分割치 아니함

ㄷ. 自己 勞力으로 耕作하려는 地主들은 本 土地改革에 對한 法令에 依하여 農民들과 같은 權利로써 다만 他郡에서 土地를 가질 수 있음

第7條 土地를 農民 所有로 分與하는 式은 道人民委員會가 土地所有權에 對한 證明書를 交付하며 此를 土地臺帳에 登錄함으로써 完決됨

第8條 本 法令에 依하여 農民에게 준 土地는 一般 負債 負擔에서 免除함

第9條 本 法令에 依하여 土地를 割讓當한 地主에게서 借用한 雇傭者와 農民의 一切 負債는 取消함

第10條 本 法令에 依하여 農民에게 分與된 土地는 賣買치 못하며 小作주지 못하며 抵當하지 못함

第11條 地主의 畜力 農業機具 住宅의 一切 建築垈地 等은 第3條 〈ㄱ〉項에 依하여 沒收되어 人民委員會의 處理에 委任하되 人民委員會는 本 法令 第6條에 依하여 土地 가지는 雇傭者, 土地없는 農民에게 分與함. 沒收된 一切 建物은 學校, 病院 其他 社會機關의 利用으로 넘길 수 있음

第12條 日本國家, 日本人 及 日本人 一切 團體의 果樹園 其他 果木들은 沒收하여 道人民委員會에 맡김. 本 法令 第3條 〈ㄱ〉項에 依하여 土地를 沒收당한 朝鮮人 地主의 所有인 果樹園 其他 果木들은 沒收하여 人民委員會에 保留됨

第13條 農民들이 所有한 적은 山林을 除外하고 全 山林은 沒收하여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의 處理에 委任함

第14條 本 法令에 依하여 土地를 沒收當한 所有者에게 所有된 灌漑施設의 全部는 無償으로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의 處理에 委任함

第15條 土地改革은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의 指導下에서 實施됨. 地方에서 土地改革을 實施할 責任은 道, 郡, 面 人民委員會에 負擔되며 農村에서는 雇傭者, 土地없는 小作人, 土地적은 小作人들의 總會에서 選擧된 農村委員會에 負擔됨

第16條 本 法令은 公布한 時期부터 實行力을 가짐

第17條 土地改革實行은 1946年 3月末日 前으로 畢할 것

土地所有權證明書는 今年 6月 20日 前으로 交付할 것

1946年 3月 5日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委員長 金日成

書記長 康良煜

朝鮮中央通信社, 『朝鮮中央年鑑』, 1950

이 사료는 1946년 3월 5일 발효된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이 법령이 선포되면서 시작되었다. 3월 5일 발표된 「토지개혁법령」과 「토지개혁 실시에 대한 임시조치법」, 3월 8일 발표된 「토지개혁법령에 관한 세칙」은 기존의 토지 소유 관계를 전면 부정하고 ‘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 원칙을 결정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의 소유 토지와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의 소유지 및 5정보 이상을 가진 지주의 토지, 계속 소작을 주고 있던 모든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둘째, 농가의 가족 수와 노력자 수에 따라 토지를 분배하며 분여된 토지의 매매와 저당, 일체 소작제도를 금지한다.

셋째, 몰수한 산림, 관개시설, 과수원 및 농민들이 경작하기에 불리한 일부 토지는 국유화한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3월 5일 처음 토지개혁을 발표한 이래 26일 만인 3월 31일 토지개혁 완료를 선언하였다. 이렇듯 토지개혁이 최단기간에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사전 계획과 준비, 그리고 농민들의 열광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전체 농가의 4%에 불과한 지주가 총경지 면적의 58.2%를 차지하고, 농가의 56.7%에 달하는 빈농이 총경지 면적의 5.4%를 나눠 가질 정도로 토지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해방이 되면서 농지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농민들은 투쟁을 통해 3⋅7제를 관철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은 1월 말부터 토론을 시작해 2월 20일 토지개혁안을 마련하고, 3월 5일 임시인민위원회 이름으로 법령을 공포하였다.

토지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토지 전문가 박문규와 법학자 최용달을 초청했고, 북한의 사회경제학자 김광진과 안길, 김책, 주영하 등 당 인사가 참여하는 토지개혁법령작성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뒤 김일성을 비롯한 위원들이 몇 차례나 농촌을 돌아보고 농민들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현장조사를 거쳤다.

그렇게 해서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1,000,325정보의 토지가 몰수되어 724,522호의 농민들에게 981,390정보의 토지가 무상으로 분배되었다. 또한 북한의 토지개혁은 북한 사회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토지개혁은 우선 농업 발전에 질곡이 되었던 봉건적 토지 소유 관계를 청산하였으며, 북한에서 공업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식량과 농산물 원료를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북한 공산당은 토지개혁 과정에서 빈농과 고농(머슴살이 농민) 가운데 많은 당원을 흡수하여 농촌에서 당의 기초를 세웠으며, 당의 성분을 바꿔 당을 확대할 수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연구」,,이주철,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89.
저서
『북한의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 김성보,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편저
『북한경제의 전개과정』,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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