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삼국 이전여러 나라의 사회 모습

옥저의 민며느리 풍속

『위략(魏略) 』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나라의] 혼인하는 풍속은 여자의 나이가 열 살이 되면 서로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는 [그 여자를] 맞이하여 장성하도록 길러 아내로 삼는다. [여자가] 성인이 되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여자의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하는데, [신랑 집에서] 돈을 지불한 후 다시 신랑 집으로 돌아온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魏略曰. 其嫁娶之法, 女年十歲, 已相設許, 壻家迎之, 長養以爲婦. 至成人, 更還女家. 女家責錢, 錢畢, 乃復還壻.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이 사료는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일부로, 옥저의 혼인 풍속인 민며느리제를 전하고 있다. 옥저의 혼인 풍속을 전하는 『위략(魏略)』은 서진(西晋) 태강(太康) 연간(280~289)에 어환(魚豢)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체가 전하지 않고 일문(逸文)으로 부분만 남아 있다. 그런데 『삼국지』 동이전의 주요 내용이 이 『위략』을 인용해 서술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만큼 그 사료적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위략』에 따르면, 옥저에서는 여자의 나이가 열 살이 되면 며느리로 삼을 집에서 데려다 키웠고, 성인이 되면 친정으로 되돌려 보낸 다음 친정집에 돈을 지불하고 다시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다고 한다. 이를 민며느리제라고 하는데,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고구려의 서옥제(婿屋制)와 대비된다. 고구려는 옥저와 반대로 사위가 처가로 가서 혼인하였고, 여자의 집 뒤편에 작은 별채를 짓고 살다가 아이가 장성한 이후에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남편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데릴사위 제도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듯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고구려의 서옥제는 신랑과 신부 중에서 어느 쪽 집안에서 혼인 절차가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다만 두 나라의 사례 모두 혼인 과정에서 상호 간에 일정한 재화 내지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옥저에서는 신랑 측 집안에서 며느리, 즉 신부를 양육하는 대신 신부의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성인이 되어 신부가 집으로 돌아가면 돈을 지불해야만 다시 신랑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반면에 고구려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 측 집안에 노동력을 제공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고구려의 서옥제는 집안의 노동력 상실과 관련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혼인을 하면 신랑 내지 신부 측 집안에서 노동할 수 있는 인력이 하나 줄어드는 것이므로, 그에 대해 보상해 주기 위해 이러한 제도가 생겨났다. 따라서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고구려의 서옥제처럼 원시⋅고대의 여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매매혼(賣買婚)의 일종이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편저
「옥저의 사회와 문화」, 이현혜, 국사편찬위원회, 1997.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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