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삼국 시대관등제와 신분제

신라의 골품제

진골(眞骨). 방은 길이와 너비가 24자를 넘지 못하고 장식 기와를 덮지 못하며, 겹처마를 만들지 못하고 현어(懸魚)를 조각하지 못하며, 금⋅은⋅놋쇠[鍮石]⋅오채(五彩)로 장식하지 못한다. 계단 돌은 갈지 못하고 삼중 계단은 설치하지 못하며, 담장은 들보[梁]와 마룻도리[棟]를 시설하지 못하고 석회도 바르지 못한다. 발[簾]의 가장자리 테는 금(錦)⋅계수(罽繡)⋅야초라(野草羅)를 금하고 병풍은 수놓은 것을 금하며, 침상은 대모(玳瑁)⋅침향(沉香)으로 꾸미지 못한다.

6두품(六頭品). 방은 길이와 너비가 21자를 넘지 못하고 장식 기와를 덮지 못하며, 겹처마와 중복(重栿)⋅공아(栱牙)⋅현어를 시설하지 못하며 금⋅은⋅놋쇠⋅백랍(白鑞)⋅오채로 장식하지 못한다. 중간 계단과 이중 계단은 설치하지 못하고 계단 돌은 갈지 못하며, 담장은 8자를 넘지 못하고 또한 들보와 마룻도리를 시설하지 못하며 석회도 바르지 못한다. 발의 가장자리 테는 계수⋅능(綾)을 금하고 병풍은 수놓은 것을 금하며, 침상은 대모⋅자단(紫檀)⋅침향⋅회양목으로 장식하지 못하고 또한 비단 보료를 금한다. 겹문과 사방문(四方門)은 설치하지 못하며, 마구간은 말 5마리를 넣을 수 있게 한다.

5두품. 방은 길이와 너비가 18자를 넘지 못하고 느릅나무를 쓰지 못하며, 장식 기와를 덮지 못하고 수두(獸頭)를 설치하지 못하며, 겹처마와 중복⋅화두아(花斗牙)⋅현어를 시설하지 못하고, 금⋅은⋅유석⋅동랍(銅鑞)⋅오채로 장식하지 못한다. 계단 돌은 갈지 못하며 담장은 7자를 넘지 못하고, 들보를 가설하지 못하며 석회도 바르지 못한다. 발의 가장자리 테는 금⋅계(罽)⋅능⋅견(絹)⋅시(絁)를 금한다. 대문과 사방문은 만들지 못하며, 마구간은 말 3마리를 넣을 수 있게 한다.

4두품에서 백성. 방은 길이와 너비가 15자를 넘지 못하고 느릅나무를 쓰지 못하며, 우물천장을 시설하지 못하고 장식 기와를 덮지 못하며, 수두와 겹처마와 공아⋅현어를 설치하지 못하고 금⋅은⋅유석⋅동랍으로 장식하지 못한다. 섬돌은 산돌을 쓰지 못하며 담장은 6자를 넘지 못하고, 또한 들보를 가설하지 못하며 석회도 바르지 못한다. 대문과 사방문은 만들지 못하며, 마구간은 말 2마리를 넣을 수 있게 한다.

삼국사기』권33, 「잡지」2 옥사

그 관직을 임명하는 데는 왕의 친족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 족(族)은 제1골과 제2골이라 이름하여 스스로 구별하였으며, 형제의 딸이나 고모⋅이모⋅종자매(從姊妹)를 다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다. 왕족은 제1골이며, 아내도 역시 그 족으로 자식을 낳으면 모두 제1골이 된다. (이들은) 제2골의 여자에게 장가가지 않으며, 비록 간다 하더라도 언제나 첩으로 삼았다. 관직으로는 재상(宰相)⋅시중(侍中)⋅사농경(司農卿)⋅태부령(太府令) 등 무릇 17등급이 있는데, 제2골이 그것을 맡았다.

『신당서』권220, 「열전」145 동이열전 신라전

眞骨. 室長廣不得過二十四尺, 不覆唐瓦, 不施飛簷, 不雕懸魚, 不餙以金銀⋅鍮石⋅五彩. 不磨階石, 不置三重階, 垣墻不施梁棟, 不塗石灰. 簾縁禁錦罽繡⋅野草羅, 屛風禁繡, 床不餙玳瑁⋅沉香.

六頭品. 室長廣不過二十一尺, 不覆唐瓦, 不施飛簷⋅重栿⋅栱牙⋅懸魚, 不餙以金銀⋅鍮石⋅白鑞⋅五彩. 不置中階及二重階, 階石不磨, 垣墻不過八尺, 又不施梁棟, 不塗石灰. 簾縁禁罽繡⋅綾, 屛風禁繡, 床不得餙玳瑁⋅紫檀⋅沉香⋅黄楊, 又禁錦薦. 不置重門及四方門, 廐容五馬.

五頭品. 室長廣不過十八尺, 不用山楡木, 不覆唐瓦, 不置獸頭, 不施飛簷⋅重栿⋅花斗牙⋅懸魚, 不以金銀⋅鍮石⋅銅鑞⋅五彩爲餙. 不磨階石, 垣墻不過七尺, 不架以梁, 不塗石灰. 簾縁禁錦⋅罽⋅綾⋅絹⋅絁. 不作大門⋅四方門, 廐容三馬.

四頭品至百姓. 室長廣不過十五尺, 不用山楡木, 不施藻井, 不覆唐瓦, 不置獸頭⋅飛簷⋅栱牙⋅懸魚, 不以金銀⋅鍮石⋅銅鑞爲餙. 階砌不用山石, 垣墻不過六尺, 又不架梁, 不塗石灰. 不作大門⋅四方門, 廐容二馬.

『三國史記』卷33, 「雜志」2 屋舍

其建官, 以親屬爲上. 其族名第一骨⋅第二骨以自別, 兄弟女⋅姑⋅姨⋅從姊妹, 皆聘爲妻. 王族爲第一骨, 妻亦其族, 生子皆爲第一骨. 不娶第二骨女, 雖娶, 常爲妾媵. 官有宰相⋅侍中⋅司農卿⋅太府令, 凡十有七等, 第二骨得爲之.

『新唐書』卷220, 「列傳」145 東夷列傳 新羅傳

이 사료는 신라가 골품에 따라 가옥의 크기와 장식 등을 규제한 내용이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가 시행된 사회였다. 골품제는 골품에 따라 신분이나 정치적 활동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여러 규제가 가해졌기 때문에, 흔히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에 비견되곤 한다. 골품제는 크게 골제두품제라는 2개의 신분 계층으로 구성되었는데, 골제는 다시 성골과 진골로, 두품제는 6두품에서 1두품까지 6개의 신분으로 세분되었다. 따라서 골품제는 전체 8계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6두품의 상위 신분을 7두품이 아니라 진골로 표현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품 신분과 성골⋅진골 사이에 차별적 계층을 설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두품 신분 간에도 엄격한 차별이 존재하였는데, 『삼국사기』권33에 골품에 따른 여러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옥사(屋舍)조가 눈길을 끄는데, 이에 의하면 각 신분별로 거주하는 집의 크기나 장식 등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골의 경우 집의 크기는 24×24자를 넘을 수 없었던 반면, 6두품은 21×21자를 넘을 수 없었고, 5두품과 4두품 이하는 각각 18×18자, 15×15자를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붕이나 계단은 물론이고 발이나 병풍, 침상을 장식하는 재료에 대해서도 골품에 따라 규제하였음을 알려 준다. 아울러 집으로 드나드는 문조차 신분에 따른 규정이 정해져 있었는데, 6두품은 겹문과 사방문을 설치할 수 없었고 5두품과 4두품 이하는 대문과 사방문을 설치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한다. 진골은 그러한 규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 겹문이나 사방문, 대문의 설치가 자유로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 미루어 신라에서는 거주하는 집만 보아도 신분을 알 수 있었을 법하다. 옥사조에 실려 있는 규정이 실제로 적용되었는지의 문제는 접어 두더라도, 발이나 침상 등 일상생활 품목이나 심지어 마구간 규모까지 신분에 따른 규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골품이 신라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삼국사기』권33의 색복(色服)조, 거기(車騎)조, 기용(器用)조에도 옥사조와 마찬가지로 골품에 따라 의복과 각종 옷 장식, 수레 장식 등에 대한 규정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골품에 따른 규정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예는 관등 및 관직 진출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 『신당서』에는 제1골과 제2골이 등장하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제2골을 6두품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지만, 제2골이 재상(宰相)⋅시중(侍中)⋅사농경(司農卿)⋅태부령(太府令) 등을 맡았다고 한 점을 중시하면 진골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제1골을 성골로 추정하기도 하였지만, 제27대 선덕왕(善德王, 재위 632~647)이 ‘성골남진(聖骨男盡)’, 즉 성골 남자가 없어 왕위에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8세기 중반에 성골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제1골과 제2골은 모두 진골이지만, 진골 내부에서도 제1골, 제2골과 같은 형태로 나름의 위계가 설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제1골은 제2골 여자에게 장가가지 않으며 장가를 간다 하더라도 첩으로 삼았다는 기사가 남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골품제는 신라가 멸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만큼 신라 사회에서 골품제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격하게 시행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골품제가 엄격하게 시행될수록 두품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골품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순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고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골품제 연구의 현황과 전망」,『한국고대사논총』9,김기흥,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2000.
「신라 골품제의 구조와 기반」,『한국사론』30,윤선태,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1993.
「신라 골품제 연구의 새로운 경향과 과제」,『한국고대사연구』54,주보돈,한국고대사학회,2009.
저서
『신라의 정치구조와 신분편제』, 서의식, 혜안, 2010.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중판), 이기동, 일조각, 1997.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1974.
『신라골품제연구』, 이종욱, 일조각, 1999.
『신라 골품제의 성립과 운영』, 전미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편저
「사회구조」, 이기동, 국사편찬위원회, 2003.
「삼국시대 사회구조와 신분제도」, 이기백, 이기백 외 공저, 한길사, 1988.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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