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24년(369) 가을 9월에 고구려 왕 사유(斯由)
고국원왕(故國原王)
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이끌고 와서 치양(雉壤)에 주둔하고, 병력을 나누어 민호(民戶)를 침범해 빼앗았다. 근초고왕이 태자(太子)를 보내니, 태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가서 치양에 이르러서는 고구려군을 급습해 깨뜨렸다. 500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이들을 장수와 병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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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23년(562)] 9월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이사부(異斯夫)
에게 명하여 그들을 토벌하도록 하였는데, 사다함(斯多含)이 그 부장(副將)이 되었다. 사다함이 5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먼저 달려갔는데 전단문(栴檀門)에 들어가 흰 깃발을 세우니, 성 안에서는 두려워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
가 병력을 이끌고 그곳에 이르니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하는데 사다함이 최고였으므로 왕이 상으로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주었다. 사다함이 세 차례 사양하였지만 왕이 이를 강권하여 마침내 받았다. 그 포로는 풀어 주어 양인(良人)이 되도록 하였고, 토지는 나누어 군사들에게 주니, 국인(國人)이 이를 아름답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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