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삼국 시대법률과 사회 풍속

고구려의 서옥제

그 풍속은 혼인할 때 구두로 미리 정하고, 여자의 집에서 [집 안의] 본채[大屋] 뒤편에 작은 별채[小屋]를 짓는데, 그 집을 서옥(壻屋)이라고 부른다. 해가 저물 무렵에 신랑이 신부의 집 문 밖에 도착하여 자기 이름을 밝히고 절하면서, 신부의 집에서 머물기를 청한다. 이렇게 두세 번 거듭하면 신부의 부모는 그때서야 서옥에 가서 자도록 허락하고, [신랑이 가져온] 돈과 폐백은 [서옥] 곁에 쌓아 둔다. 아들을 낳아서 장성하면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其俗作婚姻, 言語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名壻屋. 壻暮至女家戶外, 自名跪拜, 乞得就女宿. 如是者再三, 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 傍頓錢帛. 至生子已長大, 乃將婦歸家.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이 사료는 『삼국지』 「동이전」의 일부로, 3세기 중반 고구려의 혼인 풍속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료에 서술된 것처럼 고구려에서는 구두로 미리 혼인을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부의 집 안에 있는 서옥(壻屋), 즉 사위의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장성하면 그때 신랑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혼인의 형태는 신랑 집과 신부 집 중에서 어느 쪽을 중심으로 혼인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취가혼(聚嫁婚)과 초서혼(招壻婚)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취가혼은 혼인을 하여 처음부터 신부가 신랑 집에서 사는 것으로, 이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家父長)적인 혼인 형태로 이해된다. 이와 달리 초서혼은 솔서혼(率壻婚) 또는 데릴사위제라고도 하는데, 취가혼과 반대로 신랑이 신부 집에서 사는 것이다. 이때 신랑이 신부 집에 평생 머무를 수도 있고 일정 기간만 머무를 수도 있는데, 이 사료에 보이는 고구려의 서옥제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신랑은 신부를 얻는 대신 일정한 재화, 즉 폐백을 주어야 했고, 또한 신부 집에 머무는 동안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부 사이의 아이는 외가(外家)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계(母系) 중심의 양육은 향후 아이의 사회 활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짐작된다. 따라서 3세기 중반 고구려에서 서옥제란 형태의 혼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가족 제도에서 모계의 중요성이 컸던 사정을 반영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구려 서옥제의 혼인 형태」,『고구려발해연구』13,김선주,고구려발해학회,2002.
「고구려 지모신신앙과 모처제」,『사학연구』58⋅59,한영화,한국사학회,1999.
저서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사계절,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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