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의복이 남자는 대략 고구려(高句麗)와 비슷하였다. 조회(朝會)나 제사 지낼 때는 관(冠)의 양쪽 곁에 깃털을 달았으나, 군사(軍事)에는 그렇지 않았다. 배알(拜謁)하는 예는 두 손을 땅에 짚어 공경을 나타냈다. 부인의 의복은 도포 같으면서 소매가 약간 컸다. 시집가지 않은 여자는 편발(編髮)로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뒤로 한 가닥을 늘어뜨려 꾸몄고 시집간 사람은 이를 두 가닥으로 늘어뜨렸다. 병기로는 활⋅화살⋅칼⋅창이 있다. 그들의 습속은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숭상하고 아울러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애독하니,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엮을 줄도 알았다. 또한 음양오행(陰陽五行)도 이해하였다.
송나라 원가력(元嘉曆)을 이용하여 인월(寅月)을 한 해의 처음으로 삼았다. 또 의약(醫藥)⋅복서(卜筮) 및 점치고 관상 보는 법도 알고 있었다. 투호(投壺)와 저포(樗蒲) 등의 여러 가지 놀이가 있으나 바둑이나 장기를 더욱 좋아한다. 승려와 비구니⋅절⋅탑은 매우 많으나, 도사(道士)는 없다.
세금은 베⋅명주⋅삼베 및 쌀 등으로 한 해의 풍흉을 헤아려 차등 있게 바치게 하였다. 그 나라의 형벌은 모반하거나 전쟁에서 퇴각한 자 및 살인을 한 사람은 참수하였다. 도적질한 사람은 유배시키고 도적질한 물품의 배를 징수하였다. 부인이 간통죄를 범하면 남편 집의 계집종으로 삼았다. 혼인의 예는 대략 중국의 풍속과 같다.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그 나머지 친척은 장례가 끝나면 상복을 벗었다.
토지는 낮고 습하였으며 기후는 따뜻하다. 오곡과 각종 과일⋅채소 및 술⋅음식⋅반찬⋅의약품은 거의 중국과 같고, 낙타⋅당나귀⋅노새⋅양⋅거위⋅오리 따위는 없다. 그 나라의 왕은 매 계절의 중월(仲月)
중춘(仲春)⋅중하(仲夏)⋅중추(仲秋)⋅중동(仲冬)을 가리킴
에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 지내고, 또 해마다 네 번씩 그의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에 제사 지낸다.『주서』권49, 「이역열전」41, 백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