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이 하루는 서제(庶弟)인 거득공(車得公)을 불러 “네가 총재(冢宰)가 되어 백관을 고루 다스리고 사해(四海)를 공평정대하게 하라.”라고 말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약 소신을 총재로 삼으신다면 신은 원하건대 남몰래 국내를 다니면서 백성들의 요역(徭役)의 수고로움과 편안함, 조세의 가볍고 무거움, 관리의 청렴하고 부패함을 살펴본 뒤에 그 직을 맡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였다.
공은 치의(緇衣)
승려가 입는 검은 물을 들인 옷
를 입고 비파를 든 거사 차림을 하고 서울[京師]을 떠났다. 아슬라주(阿瑟羅州)
【지금의 명주(溟州)】
, 우수주(牛首州)
【지금의 춘주(春州)】
, 북원경(北原京)
【지금의 충주(忠州)】
을 거쳐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해양(海陽)】
에 이르러 마을(理閈)을 돌아다니니, 주(州)의 관리 안길(安吉)이 낯선 사람[異人]을 보고 자기 집으로 오게 하여 정성을 다해 대접하였다. 밤이 되자 안길이 처첩(妻妾) 세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지금 거사 손님을 모시고 자는 사람은 종신토록 해로하겠소”라고 하였다. 두 처가 말하기를, “차라리 함께 살지 못할지언정 어찌 다른 사람과 함께 자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머지) 한 처가 말하기를, “공이 만약 종신토록 같이 사는 것을 허락한다면 명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좇았다. 이튿날 아침 거사가 작별하고 떠나려 할 때 말하기를,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제 집은 황룡사(黃龍寺)
와 황성사(皇聖寺) 두 절 사이에 있고, 제 이름은 단오(端午)
【세속에서는 단오를 거의(車衣)라고 한다】
이니, 주인께서 만약 서울에 오신다면 제 집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와 총재가 되었다.
'황룡사(黃龍寺)' 관련자료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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