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문집 권42
서(序)
향촌에서 약조를 세운 것에 대한 서문. 【약조를 붙임.】
옛날 향촌 대부(鄕大夫)들의 직분은 덕행과 도예(道藝)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형벌로써 규탄한다. 선비 된 자는 또한 반드시 집에서 닦아 고을에서 드러난 후에 나라에 등용되니, 이와 같음은 어째서인
가? 효제(孝悌)와 충신은 인도(人道)의 큰 근본이요, 집과 향당(鄕黨)
은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왕의 가르침은 효제충신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법을 세우기를 이와 같이 하였다. 후세에 이르러 법제(法制)는 비록 폐하였으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진실로 그대로 있으니, 어찌 고금(古今)의 마땅함을 참작해서 권하고 징계하지 아니하겠는가. 지금의 유향소(留鄕所)
는 바로 옛날 향대부(鄕大夫)가 남긴 제도이다. 알맞은 사람을 얻으면 한 고을이 화평해지고, 알맞은 사람이 아니면 온 고을이 해체가 된다. 더욱이 시골은 왕의 존엄함[王靈]이 멀어서 좋아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공격하고, 강하고 약한 자들이 서로 알력을 벌이고 있으니 혹시라도 효제충신의 도가 저지되어 행해지지 못하면 예의를 버리고 염치가 없어지는 것이 날로 심해져서 점점 이적(夷狄)이나 금수(禽獸)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니, 이것이 실로 왕정(王政)의 큰 걱정이다. 그 규탄하고 바로잡는 책임이 이제는 유향소
로 돌아오니, 아아, 그 또한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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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을은 비록 땅은 작으나 본래 문헌(文獻)의 고을로 이름이 났고 유현(儒賢)이 많이 나서, 왕조에 빛나는 자가 대대로 자취를 잇대었으므로 보고 느끼고 배우고 본떠서 고을의 풍속이 매우 아름답더니, 근년에는 운수가 좋지 못하여 덕이 높아 존경받는 여러 공(公)들이 서로 잇달아 돌아갔다. 그러나 오히려 오래된 집 안에 남아 전하는 법도가 있어 문의(文義)가 높고 성하니, 이를 서로 따라서 올바른 나라가 되는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인심이 고르지 않고 습속이 점점 그릇되어 맑은 향기는 드물게 풍기고, 재앙의 싹[櫱芽]이 사이사이에서 돋아나니, 지금 막지 않으면 그 끝이 장차 이르지 않을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숭정대부(崇政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이 이러함을 근심하여 일찍이 약조를 세워서 풍속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였으나 미처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 지사(知事)의 여러 아들이 방금 경내(境內)에서 거상(居喪)하고 나 역시 병으로 전원(田園)에 돌아와 있는데, 고을 어른들이 다 우리 몇 사람으로 하여금 속히 선생의 뜻을 이룩하라고 책임 지우는 것이 매우 지극하였다. 사양했으나 되지 않아 이에 서로 함께 의논하여, 그 대강만 들어서 이 같이 하고, 다시 고을 사람에게 두루 보여 가부를 살핀 뒤에 정하였으니, 영원토록 행하여도 폐단이 없을 것이다.
혹은 이르기를, “먼저 가르침을 세우지 않고 다만 형벌을 사용하는 것은 의심된다” 하니, 그 말이 진실로 그럴듯하다. 그러나 효제와 충신은 사람이 타고난 성품에 근본하였고, 더구나 나라에서 상(庠)과 서(序)를 베풀어 가르쳐서 권하고 인도하는 방법이 아님이 없으니, 어찌 우리가 지금 특별한 조목을 세우겠는가. 맹자가 말하기를, “도가 가까운 데 있는데 먼 데서 구하고, 일이 쉬운 데 있는데 어려운 데서 구하는도다. 사람마다 부모를 사랑하고 그 어른을 존대하면 천하가 편안해진다” 하였으니, 이것은 공자의 이른바 지덕(至德)이며 요도(要道)요, 선왕이 인심을 착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고을의 모든 선비들이 성명(性命)의 이(理)를 근본하고 국가의 가르침을 따라서 집에 있어서나 고을에 있어서나 각기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 곧 이것은 나라의 좋은 선비가 되어서 혹은 궁하거나 달하거나 서로 힘입을 것이니, 오직 반드시 특별한 조목을 세워서 권할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역시 형벌로 쓸 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이 같이 함을 알지 못하고 예의(禮義)를 침범하여 우리 고을의 풍속을 허물면, 이는 바로 하늘이 버린 백성이니 아무리 형벌을 가하지 않고자 하나 그렇게 되겠는가. 이 점이 오늘날 약조를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부모에게 불순한 자 불효한 죄는 나라에서 정한 형벌이 있으므로 우선 그 다음 죄만 들었다.
형제가 서로 싸우는 자 형이 잘못하고 아우가 옳으면 균등하게 벌하고, 형이 옳고 아우가 잘못하였으면 아우만 벌하며, 잘못과 옳음이 서로 비슷하면 형은 가볍고 아우는 중하게 처벌한다.
가도(家道)를 어지럽히는 자 부처(夫妻)가 치고 싸우는 일, 정처(正妻)를 쫓아내는 일, 아내가 사납게 거역한 경우는 죄를 감등한다. 남녀 분별이 없는 일, 적첩(嫡妾)을 뒤바꾼 일, 첩으로 처를 삼은 일, 서얼[孼]로 적자[適]를 삼은 일, 적자가 서얼
을 사랑하지 않는 일, 서얼
이 도리어 적자를 능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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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관부(官府)에 간섭되고 향풍(鄕風)에 관계되는 자
망녕되이 위세를 부려 관을 흔들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자
향장(鄕長)을 능욕하는 자
수절(守節)하는 상부(孀婦)를 유인하여 더럽히는 자
이상은 극벌(極罰)에 해당한다. 상⋅중⋅하의 구분이 있다.
친척과 화목하지 않는 자
본처[正妻]를 박대하는 자 처에게 죄가 있는 경우는 감등한다.
이웃과 화합하지 않는 자
동무들과 서로 치고 싸우는 자
염치를 돌보지 않고 사풍(士風)을 허물고 더럽히는 자
강(强)함을 믿고 약한 이를 능멸하고 침탈(侵奪)하여 다투는 자
무뢰배와 당을 만들어 횡포한 일을 많이 행하는 자
공사(公私)의 모임에서 관정(官政)을 시비하는 자
말을 만들고 거짓으로 사람을 죄에 빠뜨리게 하는 자
환란(患亂)을 보고 힘이 미치는 데도 가만히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는 자
관가의 임명을 받고 공무를 빙자하여 폐해를 만드는 자
혼인(婚姻)과 상제(喪祭)에 아무 이유 없이 시기를 넘기는 자
집강(執綱) 좌수(座首)을 업신여기며 유향소
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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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소
의 의논에 복종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을 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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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강(執綱)이 사사로이 향안(鄕案)에 들인 자
구관(舊官)을 전송하는데 연고 없이 참석하지 않는 자
이상은 중벌(中罰)에 해당한다. 상⋅중⋅하의 구분이 있다.
공회(公會)에 늦게 이른 자
문란하게 앉아 예의를 잃은 자
좌중에서 떠들썩하게 다투는 자
자리를 비워 놓고 물러가 편리한 대로 하는 자
연고 없이 먼저 나가는 자
이상은 하벌(下罰)에 해당한다. 상⋅중⋅하의 구분이 있다.
(지위를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원악 향리(元惡鄕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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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으로서 민가(民家)에 폐를 끼치는 자
공물(貢物)
값을 범람하게 징수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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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庶人)
이 문벌 있는 자손을 능멸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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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문집』권42, 서, 향입약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