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조선 후기도참 사상의 유행과 새로운 종교의 등장

동학의 후천 개벽과 보국 안민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뛰어난 장부에게 오랜만에 때가 왔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 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한 몸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때여 때여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해와 달을 놀리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 있네

만고 명장 어디 있나 장부 앞에 장사 없네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용담유사』, 검결

時乎 時乎 이내 時乎 不再來之 時乎로다

萬世一之 丈夫로서 五萬年之 時乎로다

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無袖長衫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浩浩茫茫 넓은 天地 一身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曲調를 時乎 時乎 불러내니

龍泉劍 날랜 칼은 日月을 戱弄하고

게으른 無袖長衫 宇宙에 덮여 있네

만고명장 어데 있나 丈夫當前 無壯士라

좋을시구 좋을시구 이내 身命 좋을시구

『龍潭遺嗣』, 劍訣

이 사료는 조선 후기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1860년(철종 11년)에서 1863년(철종 14년)에 걸쳐 지은 포교 가사집인 『용담유사』 「검결」에 수록된 내용이다. 『용담유사』는 1881년(고종 18년) 6월 충청북도 단양군 남면 천동 여규덕의 집에서 최시형(崔時亨, 1827~1898)에 의하여 처음 간행되었고, 그 뒤 1893년(고종 30년)과 1922년 각각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된 바 있다. 이때 「검결」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함께 간행되지 못하였다.

최제우가 살았던 철종(哲宗, 재위 1849~1863) 대는 안팎으로 변화가 휘몰아치는 격변기였다. 안으로는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 곧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홍수⋅지진⋅역질 등이 창궐하여 전국적으로 농민 반란의 양상이 나타나던 시기였으며, 밖으로는 이양선의 출현과 천주교의 전래로 왕조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와 같이 내외적인 위기에 대응하여 일어난 사상이 동학이었다.

『용담유사』는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과 더불어 동학의 기본 경전이다. 최제우는 자신이 깨친 후천개벽 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국문으로 쓰고, 가사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였던 것이다.

『용담유사』 중에서도 「검결」은 1861년(철종 12년)에 지은 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24구의 짧은 노래이다. ‘칼 노래’라는 뜻의 이 노래는 최제우가 정치적 변혁을 꾀하였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최제우는 전라북도 남원의 은적암에서 수도를 하면서 득도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검결」을 짓고 목검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 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에서 보듯이, 최제우는 수도에만 그치지 않고 상원갑 세계를 위한 변혁을 꾀하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최제우는 처형을 당했고, 「검결」도 『용담유사』의 다른 작품과 함께 전해지지 못하였다. 갑오 동학 농민 전쟁 때는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기도 하였다.

한편, 『용담유사』에 나타난 동학의 신앙 대상은 ‘천(天)’, ‘천주(天主)’, ‘한울님’이었다. 창도 당시 최제우의 중심 사상은 경천의 ‘시천주(侍天主)’ 신앙을 바탕으로 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종교였다. 동학은 우주 만물이 모두 ‘지극한 기운[至氣]’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일원론에 기초해 있다. 하늘⋅땅⋅사람⋅정신⋅마음은 모두 지기(至氣)의 표현일 뿐이므로, 하늘과 사람은 애당초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지기는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사람도 누구나 지기를 몸과 마음에 모시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이처럼 천주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 천주를 몸과 마음에 모시는 사람은 신분이나 적서, 남녀 등의 구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고, 수행을 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2대 교주인 최시형에 이르러 “사람이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3대 교주인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체계화되었다.

또한 동학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내세가 아니라 현세를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동학의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은 인류의 역사를 크게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하며, 5만 년에 걸친 선천의 시대가 지나고 후천의 시대가 개벽하였다며 변화에 대한 민중의 갈망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혼란에 가득 찬 선천의 종말기를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만을 위하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시대로 보았는데, 서학과 서양 세력이 이기주의에 기초한 각자위심을 더욱 증폭하고 있다며 동학에 의해 모두가 다른 마음을 이겨 내고 한 몸이 되는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새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동학이 지향한 세계는 극락이나 천당과 같은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 실현되는 동귀일체의 공동체이다. 동학에 입도하여 조화의 이치를 깨닫는 것도 “그날부터 군자가 되어 무위이화(無爲而化)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가 아니냐”(포덕문)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천상’이 아니라 ‘지상’을 지향한 일임을 강조한다.

동학은 이와 같이 각자위심에서 비롯된 사회적 혼란에서 인간을 구제하겠다는 실천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혁명성을 담고 있다. 동학은 이러한 사상적 특징을 기반으로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보국안민’과 널리 백성을 구제한다는 ‘광제창생(廣濟蒼生)’, 온 세상에 덕을 베푼다는 ‘포덕천하(布德天下)’를 내세우고 당시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이러한 현세 지향적 교리는 동학이 19세기의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삼남(三南)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성리학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구실을 맡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용담유사의 근대적 성격」,『근대문학의 형성과정』,정재호,문학과 지성사,1983.
「최제우의 후천개벽 사상」,『한국정치학회보』41-1,차남희,한국정치학회,2007.
저서
『동학사상의 이해』, 신일철, 사회비평사, 1995.
『한국가사문학론』, 정재호, 집문당,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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