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천주성교(天主聖敎)를 금지하는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처음부터 의리의 여하를 불문하고 지극히 원통하게도 사도(邪道)라고 몰아붙여 사형죄로 처리하여 신유년(1801, 순조
1) 전후에 걸쳐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그 원류를 조사한 자가 없습니다.
'순조' 관련자료
아아, 이것을 배우면 유학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까? 장차 백성을 어지럽히기 때문입니까? 이 도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쓰고 행하는 도니, 이것을 해가 되고 난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감히 그 도리가 나쁘지 않음을 대략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저 천지의 위에는 스스로 주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증거가 있으니, 첫째는 만물이요, 둘째는 양지요, 셋째는 성경입니다.
무엇을 만물이라고 합니까? 집으로 비유하겠습니다. 집에는 기둥과 초석이 있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으며, 문과 담벼락이 있습니다. 칸칸이 한 치의 실수도 없고, 네모지고 둥근 모양이 각기 규격이 있습니다. 만약 기둥⋅초석⋅들보⋅서까래⋅문⋅담벼락 등이 서로 합해서 스스로 우뚝 섰다고 한다면 미친 사람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천지는 커다란 집입니다. 나는 것, 달리는 것, 동물, 식물 등 기기묘묘한 물체가 어찌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있겠습니까? 만약 자연적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해와 달과 별이 어찌 자리를 어기지 않으며,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어찌 그 순서를 어기지 않겠습니까? 흥하고 폐함과 영원함과 잠깐 동안을 주재하는 자가 누구이며,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화를 주는 것을 주장하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천재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온 세상 사람들은 마치 봉사가 눈을 감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과 같아 자연으로 돌려 버리니, 이것은 유복자가 자기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고는 마침내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상재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