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근대개항 후 생활 모습의 변화

조선 땅에 들어온 서양 상품들

주지 회사 : 서울 정동. 외국의 각종 상등 물건을 파는데,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각종 담배와 다른 물건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민필지(士民必知)』 : 세계 지리서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인데 사람들이 볼만한 책이니 학문에 뜻을 가진 사람은 이 책을 종로 책방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값은 8냥.

가메야 회사 : 서울 정동. 외국 상등 물건을 파는데, 물건이 모두 좋고 값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안창 회사 : 서울 정동. 서양 물건과 청국 물건을 파는데, 상등의 서양 술과 각종 담배가 많이 있습니다.

『한영 자전』, 『한영 문법』 : 조선 사람이 영국 말을 배우려면 이 두 책보다 더 유용한 것이 없습니다. 이 두 책은 미국인 언더우드가 만든 것이니 『한영 자전』은 영국 말과 언문, 한문을 합하여 만든 책이고, 『한영 문법』은 영국 문법과 조선 문법을 서로 대조해 놓아 말이 간단하여 영국 말을 자세히 배우려면 이 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값은 한영 자전 4원, 한영 문법 3원. 배재 학당 한미화 활판소에 와서 사시기 바랍니다.

독립신문〉, 1896년 4월 7일 광고

주지회샤 셔울 졍동 각외국 샹등물건을 파 갑도 빗지 아니 더라 각 담와 다른 물건이 만이 잇더라

민필지 셰게 지리 셔를 한문으로 번역거신 사마다 볼만 이니 학문샹에 유의 이 이을 죵노 젼에셔 사시 갑슨 여덜냥

가메야회샤 셔울 졍동 외국 샹등 물건을 파 물건이 다 죠코 갑도 외누리 업더라

안창회샤 셔울 졍동 셔양 물건과 쳥국 물건을 파 샹등 셔양 슐과 각 담가 만히 잇더라

한영자뎐 한영문법 죠션 사이 영국 말을 호랴면 이 두 보다 더 긴 거시 업지라 이 두이 미국인 원두우  거시니 한영뎐은 영국 말과 언문과 한문을 합야  이오 한영문법은 영국문법과 죠션 문법을 서로 견주 엇시니 말이 간단야 영국말을 셰히 호랴면 이이 잇서야 거시니라 갑 한영뎐 원 한영문법 삼원 학당 한미화활판소에 와사라

〈獨立新聞〉, 1896年 4月 7日 廣告

이 사료들은 청일 전쟁 이후 서양 각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조선인들의 일상 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소비 제품에 대한 광고 문안이다. 당시 서양 문명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문물을 소개하는 책과 그들의 언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선교사들이 번역한 서적은 학생과 지식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기 서양 문물의 수입과 소비 행위는 아직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때문에 수입상은 모두 덕수궁 근처인 정동에 위치해 있었다.

먼저 번역 서적에 대한 광고를 살펴보자. 19세기에는 많은 서적이 수입, 번역, 인쇄, 출판되어 서양의 근대 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였다. 그 과정에서 책전, 즉 서점도 증가하였다. 서점은 당시 서포(書鋪)라고도 불렸다. 이 시기의 출판은 국민 교육과 계몽, 종교적 목적이 강하였다. 따라서 서점은 경제적 동기와 함께 문명 개화의 일환으로 인식되었다. 한미화 활판소는 삼문 출판사의 다른 이름으로, 이곳에서『독립신문』을 간행 하였다. 1885년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한 감리교 선교부는 국문, 한문, 영문 세 활자를 갖추고 삼문 출판사를 설립, 기독교 서적을 인쇄하였다. 1891년경 삼문 출판사는 인쇄기, 활자, 제본기 등 제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사민필지(士民必知)』는 『만국지지(萬國地誌)』와 함께 근대 초기를 대표하는 외국 지리서이다. 육영 공원의 교사로 있던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訖法, 紇法, 轄甫, 1863~1949)가 각국의 역사와 지리를 순국문과 한문으로 집필한 역사 지리서이다. 『한영 사전』과 『한영 문법』은 장로교 선교사로서 제중원 교사로 있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가 189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한 최초의 영어 사전이다. 『한영 사전』의 1부는 한영부, 2부는 영한부였고, 『한영 문법』은 문법 주석을 단 것이었다. 본래는 앞으로 한국에 오게 될 선교사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이 책이 『독립신문』에 광고된 것으로 보아 한국인 학생들의 수요까지도 기대했던 것 같다. 이처럼 당시 한국인들의 영어 학습에 대한 열기는 상당하였다.

담배의 경우 개항 초기에는 외국에서 제조된 연초가 개항장과 서울을 중심으로 거류 외국인과 일부 상류 계층에서만 소비되어 한국인의 소비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값이 비싸서 소비 계층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오개혁 과정에서 길거리에서 긴 담뱃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즉 당시 조선인들은 긴 담뱃대에 담배 잎을 말아 손으로 다지면서 피웠는데, 길거리에서 긴 담뱃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궐련초가 외국에서 본격 수입되었던 것이다. 수입된 궐련초는 대부분 일본산이었으며, 일본 상인들과 청국 상인들이 수입을 주도했다. 연초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국내 연초 제조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한국인 연초 제조 회사는 자본 규모가 영세하여 외국산 수입품과 일본인이 세운 연초 회사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이 외에도 이 시기에는 석유, 성냥이 수입되어 일상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대한제국시기의 외래상품⋅자본의 침투와 농민층동향」,『학림』6,김도형,연세대학교,1984.
「일제강점기 경성의 출판문화 동향과 문학서적의 근대적 위상 -한성도서주식회사의 활동을 중심으로」,『서울학연구』35,김종수,서울학연구소,2009.
「개항기 조선과 서양의 경제교류」,『민족문화논총』28,송규진,,2003.
「개항기 연초농업의 전개」,『한국사론』18,이영학,,1988.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과 동아시아 설탕무역」,『한국민족운동사연구』75,이은희,,2013.
「술: 집에서 빚어 마시던 술을 상점에서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 시대」,『민족』21,이정희,,2008.
「1882~1910년간 서울시장의 변동」,『서울상업사연구』,이헌창,서울 연구소,1998.
저서
『한국개화기 서적문화연구』, 김봉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9.
『원한경의 삶과 교육사상』, 손인수,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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