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근대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의 달라진 모습들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 담론

앞날을 바라보는 부인 노동자, 정칠성

신년에 신여성의 새로운 신호요? 참 어떻든 신여성이란 이름이 퍽 높이 알려진 모양인가 봐요. 왜 신남성은 없고 하필 신여성인가요. 좌우간 고맙습니다. 훌륭한 신(新)자를 여성에게만 붙여 주다니요. 그런데 내가 보는 신여성이나 새로운 신호는 당신들(신여성 신여성 하는 분들)이 보는 신여성과 좀 다릅니다. 요사이 종로 네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행 화장, 유행 의복을 내세우며 다투어 경쟁하는 신여성분들, 이 중에는 예수님 덕분으로 멀리 미국에서 유학한 분도 계시고, 훌륭한 학교를 마치고 부자이면 첩도 좋다는 분도 있으며, 자본주의 말기의 대표적 표현인 카페와 여러 신여성들, 이들 신여성들은 신년의 새로운 신호에 대해서 거울을 보며 정짜옥(丁字屋), 삼월(三越)을 연상하여 가면서 연구 중일 것입니다.그런데 내가 보는 바 신년에 신호를 울리며 앞날의 거룩한 신생활의 힘찬 신호를 울릴 진정한 신여성은 오직 연초, 제사, 방직 공장 등 흑탄 굴뚝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재촉하는 새벽 5시 고동 소리와 함께 피곤한 다리를 옮겨 놓는 그들! 여기에 그들의 걸음이야말로 앞으로의 신생활을 개척할 행군의 조련이며, 그들의 눈물과 고역의 피와 땀은 앞날의 약속을 신호하는 것입니다. 그밖에 로자 룩셈부르크(Róża Luksemburg, 1871~1919),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Mikhailovna Kollantai, Александра Михайловна Коллонтай,1872~1952,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1857~1933), 사로지니 나이두(Sarojini Naidu, 1879~1949)등 여러 훌륭한 혁명 부인이 걷는 걸음을 따라 걷지 않으면 아니 될 우리 조선 부인들, 한 발 자칫하면 멸망이 올 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목표로 신호를 올려야 될 줄 압니다.

(중략)

혁명은 부엌으로부터, 이경원

결혼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될락 말락 한데 일상 행동에서나 생각에서 벌써 한 사람의 그럴 듯한 주부가 되어 버린 것이 내 자신 우습기도 하고 한편 슬프기도 합니다. 이러다가는 평생 충실한 ‘암탉’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슬픈 동시에 두렵습니다. 행주치마를 입은 채 주방에서 거의 반나절을 허송하게 되니 그 줄어든 시간의 여유로 무슨 일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세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정치적 위기, 그 반면에 발흥하는 근로 계급 운동의 첨예와 치열화, 바야흐로 다사다난해지며 차차 어렵고 바쁜 시절이 닥쳐 옵니다. 이러한 시절에 미미하지만 올바른 의미로서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니, 제1선에 나서서 총부리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음으로 양으로 후위(後衛)로서 성의 있는 노력을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진정한 시기의 파악과 동향의 관찰과 역량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론과 전술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주방의 어멈이 되고 충실한 ‘암탉’으로만 시종(始終)해서야 어느 겨를에 많은 공부를 다 하겠습니까? 이러한 견지에서 부녀 계급은 무엇보다도 〈일부 내용 삭제〉 주방의 질박화(가난한 주방이라고 질박화가 없을 리 없습니다)와 생활의 단순화(가난한 생활이기 때문에 더욱 단순화가 필요할 것입니다)를 도모하여, 많은 시간과 힘을 주로 공부에 기울여서 역량의 준비에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첨예화되어 가는 이 시기에 이것이 가장 뾰족하고 새로운 신호는 못 되더라도 바른 신호나 되었으면 합니다.

악제도의 철폐, 개벽사 송계월

남자 이상으로 노동을 해서 기껏 받는 임금은 남자 노동자의 절반. 그 위에 압제와 착취! 우리는 여기에 절대로 반대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일관한 불합리한 사회 제도를 합리적으로 고치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젊은 여성들 양 어깨에 꽉 메워진 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여성 해방의 열의를 증명하는 한 조건이다.

암흑가에서 갈 길을 못 찾아 이리저리 빈둥거리는 아가씨와 공장 모퉁이에서 허리끈을 졸라매는 그들을 미래의 광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사회 운동의 하나로서 달성해야 할 사명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지 않다. 다만 실제적 견지에서 먼저 다음의 제 정책의 실현이 필요함을 믿고 또한 이것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자는 것이다.

1. 노동 부인 또는 직업 부인에게 완전한 보호법을 제정(중요한 것은 남녀 동일한 임금, 8시간 노동제의 확립, 출산 전후에는 특별한 휴일).

2. 부인 참정권, 부인 결사의 확립.

3. 부인에 대한 교육 기회의 균등(부인 대중의 교양을 높이기 위하여 부인에 대한 교육의 문호 개방을 실행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

4. 인신 매매에 의한 창부제의 금지.

(공창이고 사창이고 간에 인신 매매에 기인된 창부제의 존재는 여성의 치욕이며 고통인 까닭에 끝까지 싸울 것).

5. 부인을 모욕하는 봉건적 제 법률의 폐지.

(지금 실행되고 있는 상속법, 혼인법, 이혼법 등 봉건적 제 법률은 부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니 이러한 봉건적 제 법률이 속히 폐지되도록 싸울 것).

위의 제 조건이 우리에게 실현되는 날까지 우리의 기염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성 해방은 경제로부터, 화신 상회 여사무원 최기영

내가 학창 시절을 떠나 실제 사회를 맛보는 제1보로 상업계[商界]로 나와 첫 출전인 만큼 별 감상은 없습니다만 우리 여성이 불공평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경제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달리 비참한 우리 사회에 태어나 조선인, 더욱이 인습적으로 사회에서 이중 고통을 당하는 우리 여성은 같은 인생으로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가지지 못하고 노예적 생활로 이롭지 못한 경우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첫째 경제적 지식이 없어서 타인에게 의뢰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중 고통의 신음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적 정신을 양성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적 독립적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에 나는 우리 일반 여성이 고통 받는 데서 벗어나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망과 아울러 용기가 북받쳐 오름을 가슴으로 느끼겠습니다. 동시에 일반 여성들에게 “우리 여성이 해방되는 길은 오직 경제적 독립에 있다. 먼저 남자에게 빌붙는 성질을 없애라”하고 외치고 싶습니다. (후략)

동광』제29호, 1932년 1월 신여성의 신년 새 신호

앞날을 바라보는 부인 로동자 丁七星

신년에 신녀성의 신신호요. 참 어떠튼 신녀성이란 이름이 퍽 높이 알려진 모양인가봐요. 왜 신남성은 없고 하필 신녀성인가요. 좌우간 고마웁니다. 훌륭한 신(新)짜를 녀성에게만 부처주니요.

그런데 내가 보는 신녀성이나 신신호는 당신들(신녀성 신녀성하는 분들)이 보는 신녀성과 좀 다릅니다. 요사히 종로네거리에서 보면 류행화장 류행의복을 다토아 경쟁하는 신녀성분들, 이중에는 예수님 덕분으로 멀리 미국 유학한 분도 게시고 훌륭한 학교를 마치고 부자이면 첩도 좋다는 분도 잇으며 자본주의 말기의 대표적 표현인 카페와 여러 신녀성들, 이들 신녀성의 신년의 신신호는 거울을 대하야 정짜옥 삼월을 연상하야 가면서 연구중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는 바 신년에 신호를 울리며 앞날의 거룩한 신생활의 힘찬 신호를 울릴 참말 신녀성은 오직 연초, 제사, 방직공장 등 흑탄연돌 속에서만 볼 수 잇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재촉하는 새벽 다섯시 고동소리와 함께 피곤한 다리를 옴겨 놓는 그들! 여기에 그들의 거름이야말로 이 앞날 신생을 개척할 행군의 조련이며 그들의 눈물과 고역의 피와 땀은 앞날 약속을 신호하는 것입니다. 그밖에 로자, 코론타이, 그라라, 나이두 등 여러 훌륭한 혁명부인의 것는 거름을 것지 않으면 아니될 우리 조선부인들, 한발 자칫하면 멸망이 올 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목료로 신호를 올려야 될 줄 압니다.

(중략)

革命은 부엌으로부터 李敬媛

結婚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될락 말락한데 日常行動에나 생각에 발서 한 사람의 그럴듯한 主婦가 되어 버린 것이 내 自身 우습기도 하고 한편 슲으기도 합니다. 이러다가는 平生 忠實한 「암닭」에 始終하게 되지나 않을가 생각하니 슲은 同時에 두렵습니다. 행주치마를 입은 채 廚房에서 近半日을 虛送하게 되니 그 縮少한 時間의 여유로 무슨 일을 잡을 수 잇겟습니까.

方今 세상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한 큰 危機에 處하고 잇습니다. 資本主義 諸國의 經濟的 政治的 危機, 그 反面에 勃興하는 勤勞階級運動의 尖銳 且 熾烈化, 바야으로 多端多事하야지며 次次 어렵고 바뿐 時節이 닥처옵니다. 이러한 時節에 微微는 하나마 똑바른 意味로서의 도음이 잇어야 할 것이니, 第1線에서 나서 총뿌리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陰으로 陽으로 後衛로서의 誠意잇는 努力은 잇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랴면 먼저 우리는 眞正한 時期의 把握과 動向의 觀察과 力量의 準備가 잇어야 할 것입니다. 卽 理論과 전술을 더 많이 工夫하여야 할 것입니다.

廚房의 어멈이 되고 忠實한 「암닭」으로만 始終하야서야 何暇에 많은 工夫를 다 하겟습니까. 이러한 見地에서 婦女階級은 무엇보다도(以下 2行略).

「革命은 廚房으로부터」 ╴╴(以下 3行略).

廚房의 質朴化(가난한 廚房이라고 質朴化가 없을리 없습니다)와 生活의 單純化(가난한 生活이기 때문에 더욱 單純化가 必要할 것입니다)를 도모하야 많은 時間과 힘을 主로 工夫에 기우려써 力量의 準備에 汲汲하여야 할 것입니다.

刻刻으로 尖銳化하야가는 이 時間에 잇어서 이것이 가장 뾰족하고 새로운 信號는 못되더라도 바른 信號나 되엇으면 합니다.

惡制度의 撤廢 開闢社 宋桂月

男子의 以上가도록 勞動을 하여서 힘껏 받는 賃金은 男子勞動者의 半. 그 우에 壓制와 搾取! 우리는 여기에 絶對로 反對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야 이러한 곱지 못한 것으로 1貫한 不合理한 社會制度를 合理토록 고치기 위하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젊은 女性들 양어깨에 꽉 메워진 짐이다. 그러기 위하야는 不斷의 努力이 필요하다. 이 努力이 끈임없이 뒤를 맛물어 일어나는 것이 女性解放의 熱意를 표증하는 한 개 조건이다.

暗黑街에서 갈 길을 못찾어 이러 버둥 저리 버둥하는 아가씨와 공장 모퉁이에서 허리끈을 졸이는 그들을 未來의 光明의 길로 引導하는 것이 社會運動의 하나로서 達하여야 할 使命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未來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지 않다. 다만 實際的 見地에서 몬저 다음의 諸政策의 實現을 必要로 믿고 또한 이것의 實現에 向하여 鬪爭하자는 것이다.

1. 勞動婦人 또는 職業婦人에게 完全한 保護法을 制定(그 重要한 것은 男女同一한 賃金, 8時間 勞動制의 確立, 産前産後에는 特別한 休日).

2. 婦人參政權, 婦人結社의 確立.

3. 婦人에게 對한 敎育機關의 均等(부인 대중의 교양을 높이기 위하야 부인에게 대한 교육의 문호개방을 실행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

4. 人身賣買에 依한 娼婦制의 禁止.

(公娼이고 私娼이고 간에 人身賣買에 基因되는 娼婦制의 存在存는 女性의 恥辱이며 苦痛인 까닭에 끝까지 싸울 것).

5. 婦人을 侮辱하는 封建的 諸法律의 廢止.

(지금 實行하고 잇는 相續法, 婚姻法, 離婚法의 封建的 諸法律은 婦人의 人格을 侮蔑하는 것이니 이러한 封建的 諸法律은 속히 廢止토록 싸울 것).

右의 諸 條件이 우리에게 實現하는 날까지 우리의 氣焰을 끄치지 않을 것이다.

女性解放은 經濟로부터 和信商會 女事務員 崔埼瑛

내가 學窓을 떠나 實社會味 第1步로 商界에 나와 初陣인 만큼 별 感想은 없습니다마는 우리 女性이 不平한 處地에서 버서 날랴면 爲先 經濟的 知識이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다른 悲慘한 우리社會에 태어나 白衣人 더욱이 因習的으로 社會에 二重苦痛을 當하는 우리 女性은 같은 人生으로 同等한 權利와 地位를 잡지 못하고 奴隷的 生活로 利롭지 못한 境遇를 當한 것은 第1 經濟的 知識이 없어 他人에게 依賴하여 온 原因입니다. 二重苦痛의 呻吟에서 벗서날랴면 經濟的 精神을 養成할 必要가 잇으며 經濟的 獨立的 思想을 가저야 합니다.

새해를 마지할 때에 나의 가슴에는 우리 一般女性이 받는 苦痛에서 버서나 自由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겟다는 慾望과 아울러 勇氣가 북바처 오름을 느끼겟습니다. 同時에 一般女性들에게 「우리女性의 解放의 길은 오직 經濟的 獨立에 잇다. 먼저 男子에게 빌붓는 性質을 없이 하라」하고 웨치고 싶습니다. (후략)

『東光』 제29호, 1932年 1月 「新女性의 新年 新信號」

이 사료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우리 민족의 해방 운동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에 속해 있던 여성 운동 인사들이 신년맞이 인터뷰를 한 내용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 근대 교육을 받으며 출현한 신여성들은 자신의 전통과 사회에 대한 관심 속에서 근대적인 것을 수용하고 식민지라는 현실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식민성과 근대성이 복합되어 있던 근대 교육을 받으며 자기 의식을 획득한 신여성은 가부장적 지배와 근대적 형태의 여성에 대한 억압, 제국주의적 지배와 민족주의적 저항이 뒤엉킨 복잡한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사회주의 여성들은 자유주의 여성들이 추구하는 근대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고 근대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았다.

1920년대 들어 도시 중심의 소비 문화와 유행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는 신여성이 있었다. 근대적 소비 문화는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언론 매체를 통해 전파되었다. 신여성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서구식 화장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채 백화점, 카페, 영화관, 공연장과 같은 도시 소비 공간을 누볐다. 이렇게 소비 문화를 유행시키는 근대 여성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출현은 교육받은 신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직업적 성취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여성들의 소비 행태를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1920년대 중반부터 여성 운동계 내에도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1924년 5월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여성 해방을 이루기 위해 조선 여성 동우회가 설립(정종명, 정칠성, 오수덕)되었고, 1925년 1월에는 주세죽, 허정숙이 중심이 되어 경성 여자 청년 동맹을 조직하였다. 북풍회와 화요회에서는 이에 맞서 박원희, 김수준이 주축이 되어 경성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경성 여자 청년 동맹은 무산 계급 여자 청년의 투쟁적 교양을 배양하고 이들을 조직적으로 훈련시켜 여성 해방을 이룩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공장 방문대를 조직하고 노동 부인 위안 음악회를 개최하며 무산 아동 학원 설립을 계획하는 등 계급적 색채를 뚜렷이 드러냈다. 반면, 경성 여자 청년회는 여성의 직업이나 연애, 자유 결혼과 같이 여성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공통의 쟁점들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여성 해방론에서 탈피하여 사회주의적 여성 해방론으로 전환하였다. 여성의 자각과 실력 양성을 통해 남녀 평등을 이루고자 했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여성의 권리 주장과 남성의 억압에 대한 투쟁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또 교육과 계몽을 통한 여성의 지위 향상으로 이해되던 여성 해방은 무산 계급의 단결과 지도에 의한 투쟁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경제적 독립은 이제 여성이 ‘남자의 노예’ 상태와 ‘노리개’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해방’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해되었으며, 자유주의적 신여성론을 부르주아적 자유 평등 사상에 기초한 여권론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가정 개량론’, ‘현모양처주의’, ‘여성 교육론’, ‘참정권’ 등 체제 개량적 여성 운동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리들은 부르주아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압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임을 우선적으로 강조하였다. 진정한 신여성이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거부하는 강렬한 계급 의식으로 무장한 무산 여성으로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넘치는 새 여성이어야 한다고 이해하였다. 자유주의 계열의 여성들이 봉건적 인습만을 문제 삼고 그것의 근대적 변형들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사회주의 여성들은 전통적 인습과 ‘근대’적 모순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현실에 주목한 것이다. 근대 자체가 봉건적 전통에 오염되어 있으며, 따라서 근대 자체를 부정하는 새로운 질서와 체제의 창조를 통해서만 타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성 운동은 남성 운동과 다르며, 무산 계급의 해방 운동과 일치하면서도 여성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사상의 개혁과 성적 반성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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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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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여성 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회유하다』, 박선미, 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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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이희경⋅김대환, 한겨레신문사, 2005.
『광고로 읽는 여성: 1930년대 잡지광고에 비친 여성의 모습』, 이희복⋅김대환, 한경사, 2007.
『경계의 여성들: 한국 근대 여성사』, 정진성 외, 한울, 2013.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생각의 나무, 2000.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태현숙 외, 여이연, 200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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