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광복 직후 사회 운동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 창립 선언

전국 노동자 동무들!!

제2차 세계 전쟁의 승리가 민주주의 국가들 소련⋅미국⋅영국⋅중국 등 연합군의 편에 들어왔다는 것이 곧 세계 인류를 위하여 커다란 행복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노동 계급을 위하여 자유와 해방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므로 반파시즘 전쟁에 있어서 세계 노동 계급은 민주주의 진영을 절대 지지하였던 것이며, 특히 소련⋅미국⋅영국 제국 노동 계급은 이 전쟁의 최선두에서 용감히 혈전을 아끼지 아니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 노동 계급은 민주주의 국가의 편에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국제 파시즘을 적대하고 싸우는 마당에 있어서 큰 역사적 공헌을 하였다고 지적하여 둔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있어서 조선의 노동 계급은 일본 제국주의의 살인 강도적 침략전을 계속하는 동안(1931-1945) 군사적 백색 테러단에도 불구하고 전시하의 극도로 악화된 생활 조건을 반대하여 싸워온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항복 후 조선의 노동 계급의 형편은 정치적으로 보면 자유와 민족적 해방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니, 전후 경제적 혼란과 공장 폐쇄로 인한 전반적 실업화와 인플레이션 악화에 의한 물가 폭등과 물자 결핍 등의 현상은 노동 계급으로 하여금 물질적 생활 조건의 일층 악화를 가져오고 말았다. 따라서 실업자는 전 산업 노동자의 과반수나 되는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근간 부대인 공장 노동자이다.

이러한 정세 하에 있어서 노동자의 생활조선의 개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임무를 가진 조직 – 그것은 곧 노동조합이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노동조합 운동을 전국적으로 각 중요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물론 과거 전시 백색 테러 시대부터 계속되어 나오던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이며 이 토대 위에서 합법적 대중적 노동 운동은 활발히 전개시켜야 된다. 8월 15일 후 널리 전국을 통하여 경성⋅인천⋅함흥⋅원산⋅부산⋅대구⋅평양 여러 산업 도시에서 활발히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대중화한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나니 이러한 사태는 전국적 지도 기관으로서의 전국 평의회의 창설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조선 노동조합 운동을 전국적 규모와 통일 밑에 어떠한 진로로 조직 지도할 것인가? 이것은 곧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의 임무가 될 것이다. 8월 15일 후 전국 각종 중요 산업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된 노동 운동은 자연발생적 지역적 수공업적 혼합형 조직체를 벗어나지 못하였나니, 이것을 목적 의식적 지도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정연한 산업별적 조직으로 체계화 강력화시켜야 될 것이다. 예컨대 금속⋅화학⋅섬유⋅교통 등의 산업 부문의 노동자를 전국적으로까지 종적 조직체로 조성시켜 이 여러 전국적 산업별 단일 노동조합이 총집결하여 전국 평의회를 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하 국내 국외의 정세에 비추어 이와 같은 완전한 상향적 조직을 위한 투쟁에 힘쓰는 동시에 우선 중요 산업부문의 단일 노조를 중심으로 전평을 결성하여 그 민주주의적 중앙 집권의 힘으로 다시 하향적으로 자체의 조직 역량을 강화시켜 참으로 대중 위에 토대를 둔 굳센 전국 평의회가 되도록 모든 힘을 집중해야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조직 활동은 각 공장 내의 노동자와 당면한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시켜 그 투쟁 과정을 통하여 더 높은 정치 투쟁에까지 앙양시킴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만일 노동조합 운동을 노동자의 당면한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쟁만으로 만족시켜 정치 투쟁을 무시 억제한다면 이는 곧 조합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그와 반대로 노동자의 일상이익을 위한 투쟁을 무시하고 정치적 투쟁으로만 지도하려는 대중과 유리된 좌익 소아병적 경향과도 싸워야 될 것이다. 특히, 현 단계에 있어서 쎄트적 「극좌적」경향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라면 능히 주저치 않고 참가할 수 있는 광범한 의미에 있어서 대중적인 노동조합 운동을 전개시켜야 될 것이다. 즉 노동자의 당면 일상 이익을 위한 투쟁을 지도 조직하며 이 투쟁을 조선의 자주 독립 문제와 결부시켜 조선 건국초의 경제건설의 추진력이 되어야 하며 노동조합의 생산 관리라는 중대한 책임과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그 관리권의 참여를 확보하여 조선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공헌하여야 된다.

전국 노동자 동무들!!

우리는 일반적 의미에 있어서 전평의 행동 강령을 내걸고 조선 노동조합 운동은 민주주의적 진보적 코스로 걸어 나가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를 앞으로 국제 노동조합 연맹에 가맹하여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성을 강화함으로써 세계 평화 확보를 위하여 세계 노동자와 어깨를 겨누어 전진할 것을 선언한다.

1945. 11. 6.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 결성대회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全國勞動者동무들!!

第二次世界戰爭의 勝利가 民主主義國家群 蘇米英中 等 聯合軍의 便에 들어왔다는 것이 곧 世界人類를 爲하야 커다란 幸福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同時에 우리 勞動階級을 爲하여 自由와 解放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므로 反파시즘 戰爭에 있어서 世界勞動階級은 民主主義 陣營을 絶對 支持하였든 것이며 特히 蘇米英 諸國 勞動階級은 이 戰爭의 最先頭에서 勇敢이 血戰을 아끼지 아니했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全世界勞動階級은 民主主義 國家의 編에서 獨伊日의 國際 파시즘을 敵對하고 싸우는 마당에 있어서 큰 歷史的 貢獻을 하였다고 指摘하여 둔다.

이러한 國際情勢에 있어서 朝鮮의 勞動階級은 日本帝國主義의 殺人强盜的 侵略戰을 繼續하는 동안(一九三一 – 一九四五) 軍事的 白色 테러團에도 不具하고 戰時下의 極度로 惡化된 生活條件을 反對하여 싸워온 것이다.

日本帝國主義가 降伏 후 朝鮮의 勞動階級의 形便은 政治的으로 보면 自由와 民族的 解放의 길을 걷기 始作하였으니 前後 經濟的 混亂과 工場閉鎖로 인한 全般的 失業化와 인플레이션 惡化에 依한 物價暴騰과 物資缺乏 등의 現象은 勞動階級으로 하여금 物質的 生活條件의 一層 惡化를 가져오고 말았다. 따라서 失業者는 全産業勞動者의 過半數나 되는 朝鮮 프롤레타리아의 根幹部隊인 工場勞動者이다.

이러한 情勢下에 있어서 勞動者의 生活條件의 改善을 爲한 鬪爭을 展開하는 任務를 가진 組織 – 그것은 곧 勞動組合이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勞動組合運動을 全國的으로 各重要都市를 中心으로 發展시켜야 한다. 그것은 勿論 過去 戰時 白色테러 時代부터 繼續되어 나오던 勞動組合運動의 發展이며 이 土臺 위에서 合法的 大衆的 勞組運動은 活潑히 展開시켜야 된다. 八月 十五日 後 널리 全國을 通하야 京城⋅仁川⋅咸興⋅元山⋅釜山⋅大邱⋅平壤 여러 産業都市에서 活潑히 勞動組合이 組織되어 大衆化한 鬪爭으로 展開되고 있나니 이러한 事態는 全國的 지도기관으로서의 全國評議會의 創設을 要請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活潑히 展開되고 있는 朝鮮勞動組合運動을 全國的 規模와 統一 밑에 어떠한 進路로 組織指導할 것인가? 이것은 곧 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의 任務가 될 것이다. 八月 十五日 後 全國 各種 重要 産業都市를 中心으로 展開된 勞組運動은 自然發生的 地域的 手工業的 混合型 組織體를 벗어나지 못하였나니 이것을 目的意識的 指導에 依하여 全國的으로 整然한 産業別的 조직으로 體系化 强力化시켜야 될 것이다. 예컨대 金屬⋅化學⋅纖維⋅交通 等의 産業部門의 勞動者를 全國的으로까지 縱的組織體로 組成시켜 이 여러 全國的 産業別 單一勞動組合이 總集結하여 全國評議會를 結成하는 것이다. 그러나 現下 國內國外의 情勢에 비추어 이와 같은 完全한 上向的 組織을 爲한 鬪爭에 힘쓰는 同時에 우선 重要産業部門의 單一勞組를 中心으로 全評을 結成하야 그 民主主義的 中央集權의 힘으로 다시 下向的으로 自體의 組織力量을 强化시켜 참으로 大衆 우에 土臺를 둔 굳센 全國評議會가 되도록 모든 힘을 集中해야 될 것이다.

이와 같은 組織活動은 각 工場內의 勞動者와 當面한 經濟的 利益을 爲하야 不絶한 鬪爭을 展開시켜 그 鬪爭過程을 通하야 더 높은 政治鬪爭에까지 昻揚시킴으로써만 可能할 것이다. 만일 勞動組合運動을 勞動者의 當面한 經濟的 利益을 위한 鬪爭만으로서 滿足시켜 政治鬪爭을 無視 抑制한다면 이는 곧 組合主義의 誤謬를 犯하는 것이며 그와 反對로 勞動者의 日常利益을 爲한 鬪爭을 無視하고 政治的 鬪爭으로만 指導하려는 大衆과 流離된 左翼小兒病的 傾向과도 싸워야 될 것이다. 특히 現 段階에 있어서 쎄트的 「極左的」 傾向의 危險性이 크다는 點을 强調하야 마지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勞動者라면 能히 주저치 않고 參加할 수 있는 廣範한 意味에 있어서 大衆的인 勞動組合運動을 展開시켜야 될 것이다. 즉 勞動者의 當面日常利益을 爲한 鬪爭을 指導組織하며 이 鬪爭을 朝鮮의 自主獨立問題와 結付시켜 朝鮮建國初의 經濟建設의 推進力이 되어야 하며 勞動組合의 生産管理라는 重大한 責任과 役割을 놀지 않으면 안되며 따라서 그 管理權의 參與를 確保하야 朝鮮産業의 健全한 發展에 貢獻하여야 된다.

全國勞動者동무들!!

우리는 一般的 意味에 있어서 全評의 行動綱領을 내걸고 朝鮮勞動組合運動은 民主主義的 進步的 코스로 걸어나가게 만드는 同時에 우리 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를 앞으로 國際 勞動組合聯盟에 加盟하야 勞動者의 國際的 連帶性成 强化함으로써 世界平和確立을 위하야 世界勞動者와 어깨를 겨누어 前進할 것을 宣言한다.

一九四五, 一一, 六

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 結成大會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이 사료는 1945년 11월 6일 조선 공산당 산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이하 전평) 결성 대회 선언문이다.

해방 직후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생존권’ 확보를 위해 공장과 사업장별, 지역별로 노동조합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미군정청 노동부 발표에 의하면, 1946년 11월 30일 현재 남한의 노동조합 수는 1,170개이고, 조합원 수는 304,005명이었다. 전평은 미군정청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조합과 조합원 수를 발표하였다.

미군정하에서 전개된 노동 운동의 특징은 첫째, 산업별 노동조합을 기초로 전국 조직을 만들었고, 둘째,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당 조직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며, 셋째, 경제투쟁뿐 아니라 정치 투쟁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1945년 11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서울 중앙극장에서 전국 13개 도, 50만 조합원을 대표하여 505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평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다. 결성대회에서 박헌영(朴憲永, 1900~1955)⋅김일성(金日成, 1912~1994)⋅세계 노동조합 연맹(약칭 세계노련) 서기장 레온 주오⋅마오쩌둥이 명예 대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훈⋅김득한 등이 임시 집행부로 선출되었으며, 위원장은 허성택이었다.

대회에서 노동자 대표들은 한국 노동 운동사상 최초로 산업별 노조 조직 원칙에 기초하여 자주적이고 전국적인 단일 노조 중앙 조직으로서의 전평을 결성하였다. 이것은 조직 노동자 대중이 종래의 개별 공장과 사업체별⋅산업별⋅지역별 등의 한계 내에서 고립⋅분산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되었던 노동 운동을 지양하고, 전 산업적이고 전국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대중의 공통적인 정치적⋅사회 경제적 요구 등을 획득하기 위하여 국가 권력과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여 동일적이고 목적 의식적으로 투쟁을 조직⋅수행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전평은 미군정기의 정치적⋅사회 경제적 변혁 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6개 산업별 노동조합과 합동노동조합 산하의 1,194개 분회들에 소속된 21만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전평 결성에 참가하였다. 전평은 교통 운수⋅금속⋅화학⋅철도⋅섬유⋅식료⋅광산⋅어업⋅통신⋅전기⋅토건 등 전국적 산별 단일 노조와 그 하부 조직인 산별 지부를 각 산업 도시에 두었고, 지부는 다시 각 공장과 기업에 분회, 직장에 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중요 산업 지대에 지방 평의회를 설치하여 그 지방의 산별 지부를 포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까지 38선 이남에서 서울⋅인천 등 11개 도시에 지방 평의회를 설치하였고, 1947년 6월 무렵 지방 평의회를 산하에 두는 8개의 도 평의회를 설치하였다. 또한 소도시에는 합동노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전평의 목표는 최저 임금제, 8시간 노동제, 유급 휴가제, 완전 고용제, 사회 보험제, 단체 계약권,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파업의 자유, 노동자의 공장 관리, 노농 동맹, 인민 공화국 지지, 자주 독립,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연대였다.

미군정은 우익 청년 단체와 군대, 경찰력을 통해 전평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우익 노동 단체인 대한 독립 촉성 노동 총연맹(약칭 대한 노총)을 조직하였다. 대한 노총은 전평처럼 기존의 전국적 산별 단일 노조를 기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우익 청년 단체와 정당 인사들에 의해 상층 지도부만 먼저 구성된 조직이었다.

1947년 9월 말 미군정의 탄압으로 인해 전평은 거의 와해되어 조합 수는 13개, 조합원 수는 2,465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한 노총은 1947년 9월 말 산하 노동조합 수 221개, 조합원 수 39,786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남로당 연구』, 김남식, 돌베개, 1984.
『미군정시대의 국가와 행정』, 김석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청사, 1986.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안태정, 현장에서 미래로, 2002.
편저
『해방정국과 민족통일전선』, 서울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회, 세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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