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광복 직후 사회 운동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대회 결정서 및 행동 강령

전국농민조합총연맹 대회 결정서

一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동맹을 위시하야 평화 애호국 미⋅영⋅중 연합국은 서에서 파시즘 독일을 타도하고 동에서 군벌 파시스트 일본을 분쇄하야 세계평화와 인류해방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역할을 하였다.

……(중략)……

六 우리 조선은 인구의 7할 이상을 농민이 점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업 국가이다. 그들은 반봉건적 착취 방법과 비경제적 약탈과 전(前) 자본주의적 고리대금업적 착취 하에 갖은 압박과 박해와 고통을 받아왔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조선에 반봉건적 토지 소유 관계와 반농노적 착취 방법을 유지 존속시킴으로서 중세기적 모든 야비성과 모든 고통과 비참을 겸한 생활을 우리 농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七 그러므로 본 대회는 농민 토지 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민족 해방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우리 민족의 진정한 민주주의적 해방은 토지 농민 문제의 해결에 의하여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시 말하면 토지 농민 문제의 해결에 의하여서만 우리나라에서는 봉건적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새로운 사회발전을 위하여 자유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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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 대회는 남북 조선의 현재 정세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북부 조선에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북부 분맹을 특설할 것을 결의한다. 이 북부 분맹은 총연맹의 직속하에 그 특수 사정에 따라 북부 농민 운동을 지도하게 하기로 결정한다. 북부 조선에는 행정권이 사실상 우리 조선인에게 부여되어 있고 현실에 있어서는 모든 시책이 민주주의 원칙하에 실행에 옮겨지고 있으며 노동 문제 토지 농업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원칙적 해결을 보면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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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八 본 대회에서 성립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굳게 제휴하여 민족완전독립과 노동자 농민 근로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 국가건설을 위하여 용감히 투쟁하기를 결의한다.

……(중략)……

행동강령

一 일본 제국주의자 민족반역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빈농에게 분배하자.

二 친일파와 민족반역자가 아닌 조선인 지주의 소작료는 3⋅7제로 하되 원칙적으로는 돈으로 납부함.

三 이모작 이상의 이작⋅간작의 수확물과 짚(藁) 등 일체 기타 부산물은 실 생산자인 농민이 갖자.

四 지세 및 세금 징수 등 일체 공과금은 지주가 부담하고 종자대⋅비료대는 절반 부담으로 하자.

五 작황이 줄거나 없는 토지는 소작료를 감세하고 농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상하자.

사음(舍音) 관리인 등 중간 착취제를 철폐하라.

七 비료⋅농구⋅농민생활필수품의 배급을 급속 실시하라.

八 일본 제국주의자와 민족반역자의 산림⋅하천⋅소택(沼澤) 등은 이를 몰수하여 국유로 하고 농민에게 사용을 공개하라.

九 수리조합은 국가 경영으로 하고 그 관리는 농민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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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一 계급, 신분 및 성에 의한 차별을 철폐하고 일체 봉건적 악습을 일소하자.

二二 단체교섭권과 단체계약권을 획득하자.

二三 남녀 18세 이상은 동등한 선거권 피선거권을 갖게 하자.

二四 농민의 언론⋅출판⋅결사⋅집회⋅신앙의 자유를 획득하자.

二五 농민은 노동자와 굳게 동맹하자.

二六 농민은 전농의 기발 아래로!

二七 조선 완전독립 만세!

二八 조선 인민공화국 만세!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全國農民組合總聯盟 大會 決定書

一 進步的 民主主義 國家 소비에트 同盟을 爲始하야 平和愛護國 米英中 聯合國은 西에서 파시즘 獨逸을 打倒하고 東에서 軍閥파시스트 日本을 粉碎하야 世界平和와 人類解放을 可能하게 한 偉大한 役割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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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 우리 朝鮮은 人口의 七割 以上을 農民이 占하고 있는 典型的인 農業國家이다. 그들은 半封建的 搾取方法과 非經濟的 掠奪과 前資本主義的 高利貸金業的 搾取下에 갖은 壓迫과 迫害와 苦痛을 받아왔다. 日本帝國主義는 우리 朝鮮에 半封建的 土地所有關係와 半農奴的 搾取方法을 維持 存續시키므로서 中世紀的 모든 野鄙性과 모든 苦痛과 悲慘을 兼한 生活을 우리 農民에게 强要하고 있다.

七 그러므로 本 大會는 農民土地問題의 解決이 없이는 眞正한 民主主義的 民族解放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우리 民族의 眞正한 民主主義的 解放은 土地農民問題의 解決에 依하여서만 비로소 可能하다는 것을 認定한다. 다시 말하면 土地農民問題의 解決에 依하여서만 우리나라에서는 封建的 殘滓勢力을 一掃하고 새로운 社會發展을 위하야 自由로운 길이 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十六 大會는 南北朝鮮의 現勢에 懸隔한 差異가 있음을 指摘하고 北部朝鮮에는 全國農民組合總聯盟 北部分盟을 特設할 것을 決議한다. 이 北部分盟은 總聯盟의 直屬下에 그 特殊事情에 따라 北部農民運動을 指導케하기로 決定한다. 北部朝鮮에는 行政權이 사실상 우리 朝鮮人에게 賦與되어 있고 現實에 있어서는 모든 施策이 民主主義原則下에 實行에 옮겨지고 있으며 勞動問題 土地農業問題를 비롯하야 여러 가지 問題가 原則的 解決을 보면서 있기 때문이다.

……(중략)……

十八 本 大會에서 成立된 全國農民組合總聯盟은 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와 굳게 提携하야 民族完全獨立과 勞動者 農民 勤勞大衆을 위한 民主主義 國家建設을 위하야 勇敢히 鬪爭하기를 決議한다.

……(중략)……

行動綱領

一 日本帝國主義者 民族反逆者의 土地를 沒收하야 貧農에게 分配하자.

二 親日派와 民族反逆者가 아닌 朝鮮人 地主의 小作料는 三七制로 하되 原則的으로는 金納으로 함

三 二毛作 以上의 裏作 間作의 收穫物과 집(藁) 等 一切 其他 副産物은 實生産者인 農民이 갖자

四 地稅 及 收稅 一切 公課는 地主가 負擔하고 種子代 肥料代는 折半 負擔으로 하자

五 減作 不作地는 小作料를 減稅하고 農民의 最低生活을 國家가 補償하자

六 舍音 管理人 等 中間搾取制를 撤廢하라

七 肥料 農具 農民生活必需品의 配給을 急速實施하라

八 日本帝國主義者와 民族反逆者의 山林 河川 沼澤 等은 이를 沒收하야 國有로 하고 農民에게 使用을 公開하라

九 水利組合은 國家 經營으로 하고 그 管理는 農民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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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一 階級 身分 及 性에 依한 差別을 撤廢하고 一切 封建的 惡習을 一掃하자

二二 團體交涉權과 團體契約權을 獲得하자

二三  男女十八歲以上은 同等한 選擧權 被選擧權을 갖이자

二四 農民의 言論 出版 結社 集會 信仰의 自由를 獲得하자

二五 農民은 勞動者와 굳게 同盟하자

二六 農民은 全農의 旗발 아래로!

二七 朝鮮完全獨立萬歲!

二八 朝鮮人民共和國萬歲!

민주주의민족전선사무국 편, 『조선해방연보』, 문우인서관, 1946

이 사료는 1945년 11월 8일에 결성된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이하 전농)의 대회 결정서와 행동 강령이다. 전농은 해방 직후 농민 위원회⋅농민 조합⋅농민 동맹 등 여러 형태의 조직체가 결집한 전국 규모의 농민 대중 조직이었다.

1945년 9월 10일 조선 인민 공화국은 시정방침을 발표하여 토지 개혁을 위한 당면 실천 과제로서 ‘일제와 민족 반역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분배하며, 비 몰수 토지의 소작료 3⋅7제 실시’를 제시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결정된 인민 위원회는 대부분 토지 개혁안을 내걸었다. 1945년 10월 3일, 조선 공산당도 「토지는 농민에게 적정 분배 : 공산당의 토지 문제에 대한 결의」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11월 13일 조선 공산당은 임시 조직 요강을 발표하여 빈농과 중농을 중심으로 한 조합 결성의 원칙과 군, 도의 조직 단위를 제시하여 전농 결성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1945년 11월 8일에 전농이 결성되었는데, 3일 동안 개최된 결성 대회에는 각 군 조합에서 대의원 576명이 참석하였고, 위원장과 부위원장, 6개 부장을 선출하였다. 전농은 전국 13개 도 188개 부⋅도⋅군 지부 아래 1,745개 면 지부를 두었으며, 조합원 수는 330만 명에 달하였다.

‘대회 결정서’에는 전농이 근로 농민 이익을 대표해 줄 수 있는 조선 인민 공화국을 지지하고 옹호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시되는 전농의 실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일제와 민족 반역자 및 대지주의 토지 몰수와 빈농에의 토지 분배, 양심적인 조선인 대지주에 대한 3⋅7제 소작료, 일본인 토지 수확물의 3할을 잠정적으로 일정한 기관에 납부할 것, 하천, 산림, 소택(沼澤)의 국유화와 농민의 자주 관리, 소작권 이동 금지, 고리대 채권⋅채무 해결, 정부 조직에 농민 대표 참가, 노동운동과의 동맹에 주력할 것 등.

전농은 결성한 뒤 ‘모스크바 3상안의 총체적 지지’를 표명하는 민주주의 민족 전선(이하 민전)에 참가하였다. 1946년 9월 전농은 경제 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빈농과 중농 중심의 농민 조합을 전 농민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농민 위원회 형태로 변경하겠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농민 위원회는 농민 조합과 달리 ‘무상 몰수, 무상 분배’에 의한 토지 개혁을 직접 실행하는 부락 단위 조직이다.

하지만 미군정이 탄압을 가하거나 개량화 정책을 펴고 우익 세력을 지원하면서 전농은 점점 비합법적인 조직이 되었고, 그 결과 무장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미군정은 전농을 직접 탄압하는 동시에 대한 독립 촉성 농민 총연맹(약칭 대한 농총)이라는 반공 단체의 성격을 띤 농민 조직을 결성하였다. 그 뒤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 운동은 반공 단체인 대한 농총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고, 주도 세력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남로당 연구』, 김남식, 돌베개, 1984.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청사, 1986.
편저
『해방정국과 민족통일전선』, 서울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회, 세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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