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농촌 문제와 농민 운동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운동

함평농민회의 결의문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고 공업의 원료를 생산함으로써 국민의 생활과 국가발전에 봉사하고 있는 역군은 다름 아닌 농민이다. 이 나라 국민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이러한 농민이 생산비도 못 미치는 저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빈곤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한 농공 간의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국가의 균형있는 자립경제의 달성은 기대하기 어렵고 농촌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의 유물론적 시대조류로 인하여 농민이 비인간화되어지고 있음은 전체 국민의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또한 의심치 않는다. 더욱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고도로 발전된 오늘날, 농업 및 농민의 경제적인 권익옹호와 사회적인 지위향상을 위해 농협의 역할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비농민적 속성은 더욱 노골화되고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해 가고 있음을 우리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따라서 본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몸소 실천하고 이것을 농촌사회에 조직적으로 실현해 가는 일만이 농촌발전의 지름길임을 다시 확인하면서 농민의 경제 사회적 권익을 쟁취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고양하며, 농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것을 굳게 다짐하며, 오늘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농산물의 적정가 실현과 농촌의 유통질서의 합리화를 위해 전력 투구한다.

농협의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촉구한다.

농협의 부당한 출자 의무화를 철회시킨다.

비료의 완전 자유판매 실현을 촉구한다.

농민의 존엄성과 사회적 지위를 고양시킨다.

1977년 4월 22일

선언문

소위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농민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농민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한 처사를 보고 우리는 실로 분노를 금치 못한다. 전남 함평의 가난한 농민들은 농협당국의 수매 약속을 믿었다가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길가에서 썩히거나 헐값으로 팔지 않을 수 없었던 사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나 농협에 그 보상을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당국은 농민들에게 피해를 보상해 주기는커녕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마하고 억누르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해 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농민을 위한다고 떠들어 온 농협이 어째서 농민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려 드는가.

우리는 농협이 농업 생산력의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그 구성원을 위해 최대의 봉사를 하는 농민의 농협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근대화의 그늘 밑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로지 식량생산에 피땀 흘린 가난하고 선량한 우리 농민이 다름 아닌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고 그 보상 요구마저 묵살되는 사태를 통탄해 마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 농민을 경시하고 농민 위에 군림하려는 농협의 비민주적인 체질의 소산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비민주적 체질은 농협의 건전한 발전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농협에 대한 농민의 신뢰를 잃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농협의 체질 개선은 정부와 농협은 물론 농협을 구성하는 농민 스스로가 과감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농협 자신은 그와 같은 고질적 체질을 극복하지 못한 때 농협의 주인인 농민이 그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농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농협의 수매 약속을 믿었다가 입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함평 농민들의 주장과 행동은 농민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농협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너무나 정당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다. 농협이 진정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이라면 농협의 잘못으로 입힌 농민의 손해는 마땅히 보상해야 할 것이다.

농촌 사회에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함평 농민의 피와 땀이 뒤범벅된 고구마가 노변에 눈비를 맞고 굴러 밟히는 것이 온 농민이 짓밟히는 것으로 보고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가 보상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1977년 4월 22일

한국가톨릭농민회

명동천주교회 편, 『한국가톨릭 인권운동사』, 명동천주교회, 1984

함평농민회의 결의문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고 공업의 원료를 생산함으로써 국민의 생활과 국가발전에 봉사하고 있는 역군은 다름 아닌 농민이다. 이 나라 국민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이러한 농민이 생산비도 못 미치는 저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빈곤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한 농공 간의 빈부격차는 심화되어 국가의 균형있는 자립경제의 달성은 기대하기 어렵고 농촌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의 유물론적 시대조류로 인하여 농민이 비인간화되어지고 있음은 전체 국민의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또한 의심치 않는다. 더욱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고도로 발전된 오늘날, 농업 및 농민의 경제적인 권익옹호와 사회적인 지위향상을 위해 농협의 역할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비농민적 속성은 더욱 노골화되고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해 가고 있음을 우리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따라서 본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몸소 실천하고 이것을 농촌사회에 조직적으로 실현해 가는 일만이 농촌발전의 지름길임을 다시 확인하면서 농민의 경제 사회적 권익을 쟁취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고양하며, 농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것을 굳게 다짐하며, 오늘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농산물의 적정가 실현과 농촌의 유통질서의 합리화를 위해 전력 투구한다.

농협의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촉구한다.

농협의 부당한 출자 의무화를 철회시킨다.

비료의 완전 자유판매 실현을 촉구한다.

농민의 존엄성과 사회적 지위를 고양시킨다.

1977년 4월 22일

선언문

소위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농민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농민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한 처사를 보고 우리는 실로 분노를 금치 못한다. 전남 함평의 가난한 농민들은 농협당국의 수매 약속을 믿었다가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길가에서 썩히거나 헐값으로 팔지 않을 수 없었던 사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나 농협에 그 보상을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당국은 농민들에게 피해를 보상해 주기는커녕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마하고 억누르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해 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농민을 위한다고 떠들어 온 농협이 어째서 농민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려 드는가.

우리는 농협이 농업생산력의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그 구성원을 위해 최대의 봉사를 하는 농민의 농협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근대화의 그늘 밑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로지 식량생산에 피땀 흘린 가난하고 선량한 우리 농민이 다름 아닌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고 그 보상 요구마저 묵살되는 사태를 통탄해 마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 농민을 경시하고 농민 위에 군림하려는 농협의 비민주적인 체질의 소산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비민주적 체질은 농협의 건전한 발전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농협에 대한 농민의 신뢰를 잃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농협의 체질 개선은 정부와 농협은 물론 농협을 구성하는 농민 스스로가 과감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농협 자신은 그와 같은 고질적 체질을 극복하지 못한 때 농협의 주인인 농민이 그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농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농협의 수매 약속을 믿었다가 입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함평 농민들의 주장과 행동은 농민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농협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너무나 정당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다. 농협이 진정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이라면 농협의 잘못으로 입힌 농민의 손해는 마땅히 보상해야 할 것이다.

농촌 사회에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함평 농민의 피와 땀이 뒤범벅된 고구마가 노변에 눈비를 맞고 굴러 밟히는 것이 온 농민이 짓밟히는 것으로 보고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가 보상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1977년 4월 22일

한국가톨릭농민회

명동천주교회 편, 『한국가톨릭 인권운동사』, 명동천주교회, 1984

이 사료는 1976년 11월부터 1978년 5월까지 전라남도 함평군 농민들이 농협과 정부 당국을 상대로 고구마 피해 보상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결의문과 선언문이다.

함평군은 전라남도에서 해남군⋅무안군과 함께 고구마 주산지로 매년 약 2만여 톤의 고구마를 생산하였다. 1976년 당시 고구마 값이 30%나 오르자 농민들은 고구마 재배 면적을 늘려 예년보다 많은 약 25,000톤을 생산하였다. 1975년에 비해 5,000톤가량 과잉 생산된 것이다.

그런데 농업협동조합(이하 농협)은 고구마를 전량 수매한다고 선전만 해 놓고 소량만 수매한 채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고, 농민들의 항의에 무책임하게 대응하였다. 농협의 안이한 대책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마가 썩어 가자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976년 11월 17일 ‘함평고구마피해보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결의문을 채택하고 피해액을 조사하였다. 1977년 1월 31일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가 대책을 협의하였고, 2월 24일 지구연합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전라남도경찰국은 농민회 총회 석상에서 3월 10일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농협 함평군 조합장은 3월 7일 농민들이 관리를 소홀히 하여 고구마가 썩었다는 해명서만 보냈다.

4월 22일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 주최로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을 위한 농민을 위한 기도회’가 개최되었고, 이때 결의문과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농민들은 기도회가 끝난 뒤 농협 도지부장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으며,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4월 27일 농수산부와 농협중앙회에서 파견된 ‘현지피해상황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위해 내려왔다. 조사 결과 피해보상대책위원회가 조사한 것보다 피해액이 더 컸고, 농협 도지부장이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전량 수매를 약속한 사실도 입증되었다. 농민들은 피해 보상액이 지급되리라 기대했지만 조사 결과를 받지도 못했다.

1978년 4월 24일, 광주 북동 천주교회에서 전국 각지의 회원과 신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규모의 가톨릭농민기도회가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서 농민들은 선언문과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 뒤 농민들은 성당에서 피해 보상과 구속 회원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시작하였다. 각계 인사들은 단식 현장을 방문하여 단식 중인 농민들을 격려하였다.

단식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4월 29일 농민 5명이 쓰러졌다. 그러나 단식 농민들은 고구마 피해를 보상하고 구금 중인 두 회원을 석방하며 농민회 탄압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하기 전까지는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굳혔다. 그날 도지부 판매과장과 기관원이 현금 309만 원을 단식 현장에 가져왔고, 이로써 1976년 11월 17일부터 시작된 피해 보상 운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단식 중에 끌려갔던 두 회원이 즉각 석방되지 않아 단식 농성은 계속되었고, 5월 2일 구금 중인 두 회원의 석방 소식이 들린 뒤에야 단식 농성이 끝났다.

1978년 5월 6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농협 고구마 수매 자금 80억 유용’, ‘조합원 짓밟은 농협 고구마 수매’, ‘농협 주정회사와 상인과 결탁’, ‘농협 임직원 659명 무더기 징계’ 등의 기사로 신문에 발표되었다. 농협의 범죄가 보도되고 관련자가 처벌되는 가운데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는 5월 24일부터 보상금 309만 원을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땅의 아들』1, 노금노, 돌베개, 1986.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편저
『민족⋅민주⋅민중선언』, 김삼웅 편, 일월서각, 1984.
『한국가톨릭인권운동사』, 명동천주교회 편, 명동천주교회, 1984.
『민주화운동관련사건⋅단체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87.

관련 사이트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