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
“농협은 왜 우리를 기만하는가?” “썩은 고구마를 보상하라!” “내 고구마를 사 주시오!” 농협의 창구에서 타들어가는 입술을 깨물며 보상을 요구했던 함평 고구마사건은 두 돌을 몇 달 남겨 두지 않은 채 농민의 목마른 외침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피해농민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억누르면서 농협의 정당한 보상을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농협은 계속 기승을 더해 농민 무시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해 왔다.
이것은 자주적 협동조직을 통해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농협이 평소에 주인인 농민을 전적으로 무시해 온 자세로부터 나온 일면으로서 농협의 반농민적인 속성을 다시 한번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조합장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독버섯을 제정한 지 15년 동안 민주, 자립, 봉사의 사명은 외면한 채 비료도입 부정사건, 강제출자의 의무화, 보유양곡 방출로 농산물값 내리기, 농약강매행위와 농민위에 군림하는 구태의연한 관료적 속성을 더욱 노골화시키면서 관료독점자본의 시녀로서 계속 타락되어 가고 있다.
가장 민주적인 운영을 그 생명으로 하는 협동조합이 관의 조합장 임명과 보호의 한계를 넘어선 지나친 간섭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노골적으로 성행되어 왔다. 함평 고구마사건은 이러한 관료적이고 반농민적인 농협 속성의 대표적인 산물임을 재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은 이러한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이제 농민의 민주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미명 하에 운영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함으로써 총대회의 기능을 대폭 약화시키고 총대 선출의 자격 제한을 통해 이러한 비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반농민적이고 비민주적인 농협의 속성은 농정부재의 산물임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의존도만 증가시켜 온 수출 제일주의로 지칭되는 근대화의 미명 아래 노동자의 저임금을 위한 저곡가정책을 중심으로 한 농민의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농민의 품위와 존엄성은 여지없이 떨어져 농민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풍년기근을 안겨 준 못자리 짓밟은 신품종 강제권장, 영세농의 상환능력을 무시한 획일적인 주택개량사업, 악덕재벌들의 토지투기와 기업체를 비호하는 특권의 토지강점, 수출 대기업의 각종 특혜로 유발된 물가폭등을 막기 위한 농산물 수입 등, 농민의 이익을 무시한 획일적인 지시와 행정명령 일변도에 의한 관료적 횡포로 나타나는 농정은 결국 농민경제를, 농민의 주체성을 압살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참기 어려운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끈질기게 우리의 역사를 보존해 온 역사의 주체자인 농민이 오늘날 가장 비참한 처지로 전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누구보다 농민의 생존권 보호에 앞장서야 될 농협은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채 오히려 함평 고구마 재배농민을 농락하여 회유와 무성의한 답변으로 피해농민의 보상요구를 외면해 왔다.
이러한 농협의 한심스러운 작태에 주인인 농민으로서 뼈저린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함평 피해농민의 정당한 보상과 농협의 건전한 발전 추구를 위해 어떠한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농민들의 결의는 민주 농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적 공동선을 농촌사회에 구현하고자 하는 우리는 함평 고구마 피해농민들의 빼앗긴 피와 땀의 댓가가 보상되고, 농업정책이 진정 농민을 위해 수립, 집행될 수 있는 바탕과 농협이 농민조합원의 기반 위에 자주성 및 민주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뜨거운 심장을 모아 힘찬 실천활동을 계속할 것을 선언한다.
1978년 4월 24일
한국가톨릭농민회
「선언문(78.4.24 농민의 기도회에서), 1978년 4월 24일, 한국카톨릭농민회, 『활동사례집 - 제2집』 1978
결의문
농민을 무시한 농협의 누적된 배신행위와 기만술로 빚어진 함평 고구마 피해농민들의 억울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리스도적 공동선을 농촌사회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농민들의 정당한 활동을 탄압하는 부당한 처사를 규탄하고 당국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우리들은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수매약속 불이행으로 빚어진 함평 고구마 피해농민들의 경제적 손실 및 정신적 고통을 외면하는 농협의 처사는 반농민적, 비민주적 농협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으며 무자비하게 짓밟혔던 농민들의 그 고통의 아픔과 비교될 수 있는 보상을 우리는 찾을 길이 없다.
또한 최근 당국이 노골적으로 본회 활동을 ‘불온’ ‘용공적’ 운운하며 사실을 허위 날조·유포하는가 하면 부당한 사찰, 협박, 폭행, 구금, 구속 등 갖은 방법으로 종교활동마저 탄압하는 몰지각한 만행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반농민적인 농협의 각성을 촉구하고 본회에 대한 당국의 야비한 탄압과 만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아래와 같이 우리의 결의를 밝힌다.
우리의 결의
1. 함평 고구마 피해농가의 피해액을 즉각 보상하라.
1. 함평 군농협조합장은 고구마사건에 관한 책임을 지고 물러가라.
1. 농협 전남 도지부장은 즉시 농민들 앞에 나와 농민들의 요구에 답하라.
1. 감사원은 함평 농협 감사결과를 공개하라.
1. 조합장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철폐하라.
1. 농민의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1. 함평 고구마 피해농가의 피해액을 즉각 보상하라.
1. 함평 군농협조합장은 고구마사건에 관한 책임을 지고 물러가라.
1. 농협 전남 도지부장은 즉시 농민들 앞에 나와 농민들의 요구에 답하라.
1. 감사원은 함평 농협 감사결과를 공개하라.
1. 조합장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철폐하라.
1. 농민의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1978년 4월 24일
한국가톨릭농민회
「결의문(78.4.24 농민의 기도회에서)」, 1978년 4월 24일, 한국카톨릭농민회, 『활동사례집 - 제2집』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