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노동 문제와 노동 운동

노동자 인권 선언서

노동자 인권 선언서(1977. 3. 10)

노동자의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인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엄연히 존재한 노동법을 위반함으로 노동자에게 반인도적 고통을 가하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은 심히 유감된 일이며,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간주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업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노동시간과 생산량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비민주적 봉건적 노사관계를 배격하고 자유인으로서 대등한 노사관계를 요구한다.

노동자에게는 스스로의 권익을 위하여 단결할 권리가 있고 기업주와 교섭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노동력 제공을 단체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 노동자 인권을 위한 신⋅구교 연합미사에 참석한 우리 노동자와 신도들은 국가의 장래와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동인권을 선언한다.

1. 노동3권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1. 노사간의 자율적인 교섭을 인정하고 그 결정권을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 수출이라는 미명하에 1일 8시간 노동제를 무시하고 12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의 불법적이며 비인도적 처사를 배격한다.

1.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노동시간, 휴식시간, 주휴, 월차휴가, 연차휴가, 생리휴가를 엄격히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을 배격한다.

1. 우리는 기업주와 동조하여 기업의 불법행위를 동조하거나 묵인함으로서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 노동조합 간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라는 미명으로 노동자에게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여 자기 이익을 꾀하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제정하여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여야 한다.

1. 우리는 월 3만원(1일 8시간 기준) 이하의 노동임금을 기아임금으로 간주하며 조속한 인상을 요구한다.

1. 우리는 임시공, 도급공이라는 이유로 잔업수당, 특근수당, 야간수당, 상여금, 산재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우리는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공갈을 자행하는 기업주와 경영인을 강력히 배격한다. 정부는 외자업체의 횡포를 철저히 감독하여야 한다.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노동자 인권 선언서(1977. 3. 10)

노동자의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인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엄연히 존재한 노동법을 위반함으로 노동자에게 반인도적 고통을 가하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은 심히 유감된 일이며,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간주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업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노동시간과 생산량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비민주적 봉건적 노사관계를 배격하고 자유인으로서 대등한 노사관계를 요구한다.

노동자에게는 스스로의 권익을 위하여 단결할 권리가 있고 기업주와 교섭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노동력 제공을 단체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 노동자 인권을 위한 신⋅구교 연합미사에 참석한 우리 노동자와 신도들은 국가의 장래와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동인권을 선언한다.

1. 노동3권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1. 노사간의 자율적인 교섭을 인정하고 그 결정권을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 수출이라는 미명하에 1일 8시간 노동제를 무시하고 12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의 불법적이며 비인도적 처사를 배격한다.

1.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노동시간, 휴식시간, 주휴, 월차휴가, 연차휴가, 생리휴가를 엄격히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을 배격한다.

1. 우리는 기업주와 동조하여 기업의 불법행위를 동조하거나 묵인함으로서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 노동조합 간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라는 미명으로 노동자에게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여 자기 이익을 꾀하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제정하여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여야 한다.

1. 우리는 월 3만원(1일 8시간 기준) 이하의 노동임금을 기아임금으로 간주하며 조속한 인상을 요구한다.

1. 우리는 임시공, 도급공이라는 이유로 잔업수당, 특근수당, 야간수당, 상여금, 산재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1. 우리는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공갈을 자행하는 기업주와 경영인을 강력히 배격한다. 정부는 외자업체의 횡포를 철저히 감독하여야 한다.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이 사료는 1977년 5월 노동절에 신구교 연합 특별미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발표한 「노동자 인권 선언서」이다.

1960년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남한은 고도성장과 경제개발을 이루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의 「근로기준법」은 지금과 비교하면 그 내용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것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분신자살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고 외쳤다. 전태일의 죽음은 결코 한 노동자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1970년대 노동운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정권은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1972년 「유신헌법」으로 군사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을 적극 탄압하였다. 이 시기 제정된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은 외국자본의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외국자본 기업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쟁의하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었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노동 3권 가운데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을 모두 부정하는 내용의 법이었다.

더욱이 1973년에 개정된 「노동법」은 ①노사협의회를 노동조합의 기능과 분리시켜 노사 협조주의를 유도했고, ②산업별 노조 체제를 부정하고 기업별 단위로 전환시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약화시켰으며, ③공익사업의 범위를 넓혀 노동 3권의 제한을 강화하고 노동쟁의 조정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을 규정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하였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노총을 완전히 어용화하여 노동조직을 장악하고 노동운동을 철저히 금지하는 정책을 취했다. 동시에 “근로자를 내 가족처럼 회사 일을 내 일처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들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은 채 노사 협조와 가족주의적인 노사 관계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탄압 정책을 취해도 노동운동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학생⋅종교인⋅지식인들도 유신 체제에 저항하였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9호」와 「사회안전법」 등으로 정권 연장을 기도하였다.

1970년대 480만 명이었던 노동자 수는 1977년도에 77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은 점점 더 나빠졌다. 1977년도 최저생계비는 137,572원이었는데, 전체 근로자의 74.9%가 3만 원 미만의 저임금을 받았다. 이런 저임금마저도 제대로 지불되지 않아 1978년 4월부터 1979년 4월까지의 체불 임금이 117억 원에 달했다.

1970년대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조직적이며 민주적인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노동자들이 민주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학생⋅종교인⋅지식인들은 전태일이 분신한 뒤 노동 현실을 직시하여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노동자들과 함께 민주 노조운동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 결성된 대표적인 민주 노조가 바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이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전태일이 분신한 직후인 1970년 11월 27일에 결성되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전태일이 사망하기 한 달 전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이 평화시장 업주들에게 요구한 근로조건 개선, 노조 결성 등 8개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주장하였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노동청장 이승택은 노조 결성 지원을 약속하였다. 1970년 11월 20일 이소선과 삼동회 회원들은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가칭) 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 뒤 평화시장 옥상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마침내 11월 27일 조합원 560명을 대표하는 대의원 56명이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 결성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민주 노조를 출발시켰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한국노동운동사』5권(경제개발기의 노동운동 : 1961~1987), 이원보,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2004.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 전상봉, 두리미디어, 2004.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조희연, 역사비평사, 2007.
편저
『민족⋅민주⋅민중선언』, 김삼웅 편, 일월서각, 1984.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1970년대)보고서』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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