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호소 1 (1978년 2월)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
울부짖음은 지난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인천시 동구 만석동)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조종을 받은 깡패 같은 근로자들에게 당한 저희들이 똥물을 뱉으며 하던 말입니다. 고무장갑을 낀 남자들은 똥을 바께스로 들고 와 머리서부터 뒤집어씌우고 손으로 찍어 투표하러 들어오는 저희들의 입속에 쑤셔 넣고 걸레에 묻혀 얼굴에 문대어 똥으로 뒤범벅이 된 눈은 뜰 수가 없었으며 귓구멍에 틀어박힌 똥 때문에 말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무지막지한 깡패들은 저희들의 머리채를 나꿔채 뒤로 젖히고 이빨로 입술을 물어뜯는 등 이리와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이 기막힌 만행은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과 섬유노조 본조, 그리고 회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중략) 1976년 2월 대의원 선거 때부터는 회사와 그 조종을 받은 노동조합 말살계획은 표면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징계와 감시 온갖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인내와 용기,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이 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30도가 넘는 땅볕 아래 물도 마시지 못하며 밤낮없이 단식농성을 만 3일이나 했고 경찰과 사원들의 몽둥이 세례에, 세계의 어떤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벌거벗은 몸으로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7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50여 명이 기절을 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한 근로자는 쇼크로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6개월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큰 희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저희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구둣발에 짓밟혔고 경찰과 바퀴 밑에 드러누웠으며, 몽둥이에 쓰러졌습니다. (중략) 그리고 회사측은 본부 노동조합의 신임을 받고 있는 반도상사(부평 소재) 전 지부장이었던 한순임이라는 사람에게 인천시내에 있는 문화여관 105호실을 무기한 전세 내어 (중략) 근로자들을 강제로 동원 한순임의 말(교육)을 듣게 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되는 질문을 하면 대기하고 있는 깡패들에게 연락하여 머리채를 휘어잡고 강제로 입을 맞추며, 입술을 물어 뜯어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치안유지를 위해 동원된 정복경찰들은 도와달라고 외치는 저희들에게 “야 이 쌍년들아 입 닥쳐! 이따가 말릴 꺼야”하며 욕설만 퍼붓고 구경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입니까? 이렇게 매를 맞고 똥을 뒤집어썼어도 우리는 투표하려고 노조사무실을 들어가려 했으나 깡패 남자들이 점령하여 난투극이 벌어져 우리는 70명이 부상을 당하고 내던지는 유리에 손이 찢겨 7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중략) 무조건 복종이라는 말에 현 노조⋅조합측에 거부를 하였더니 (중략) 사고지부라는 공고를 회사의 게시판에 붙이고 말았습니다. (중략)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100억 불 수출의 도구로 사용된 저희 노동자들은 1,000불 소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똥을 먹어야 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근로자들이 당하고 있는 설움이며 고통입니다. 그러나 정의는 쓰러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 승리할 것입니다.
전국 섬유노동조합 인천 동일방직지부 조합원 일동
전국 섬유노동조합 인천 동일방직지부 조합원 일동,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 『짓밟힌 노동자의 인권』,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