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노동 문제와 노동 운동

YH 무역 근로자의 신민당사 농성

해결이 안 되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께 저희들의 애타는 마음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거리에 내쫓긴 저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배고픔과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 전에도 몇 부의 호소문이 나간 바와 같이 경영진의 경영부실로 인하여 많은 근로자들이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게 되고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1969년에 왕십리에서 10여 명의 종업원들로 시작하여 1970년에는 4천여 명의 종업원들로 늘어 국가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하여왔고 수출실적이 많아 석탑산업훈장까지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해 온 대가가 지금에 와서는 먹을 것은 물론 잠자리마저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진다면 그 누가 마음 놓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겠습니까?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로서 일찍이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냉대한 사회에 뛰어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배우지 못했다고 사회의 천대를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못 배운 저희들만 원망하며 저희 동생들이 나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의 월급이나마 용돈을 줄여가며 저축하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고 또 부모님의 생계와 약값을 보태준다는 뿌듯한 기쁨으로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 왔습니다.

수출실적이 높으면 나라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다는 국민학교 시절의 배운 것을 더듬으며 우리는 더욱 더 잘사는 나라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만 뜻하지 않은 지난 3월 30일 폐업공고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니만큼 끈질긴 투쟁에 폐업철회는 되었지마는 정상화는 되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 속에서도 회사를 살리고 저희들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정상화는 말도 비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죽음보다 더한 두 번째의 폐업공고가 붙은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저희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살란 말입니까?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화 아니면 죽음이다”라는 동지들의 피맺힌 구호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부당한 것을 탐하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만 주시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더 바랄 것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지금은 다른 기업들도 불황으로 인하여 문 닫는 회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그 이유와는 다른 전혀 불황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회장인 장용호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1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외화 도피시킴으로써 일어난 문제를 어찌 불황이라고 하겠습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점점 심각하게 되어가고 문 닫는 회사들과 많은 실직자가 생기는 지금에 저희 3백 20명마저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약하고 먹을 것 없는 저희들은 죽으란 말입니까.

어디 가서 살길을 찾으란 말입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 근로자들이 신민당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 노동청, 은행이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기에 오갈 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덕한 기업주는 기숙사를 철폐하고 밥은 물론 전기, 수돗물마저 먹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6일 새벽 4시경 여자들만 잠자고 있는 기숙사 문을 부수고 우리 근로자를 끌어내려 했습니다.

이렇게 약자만이 당해야 하는 건가요. 저희들의 회사가 정상화되어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들이 바라는 이 나라의 산업역군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저희들의 근본문제 해결은 조흥은행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YH무역(주)의 모든 주식 및 공장을 압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들의 이 호소가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1979년 8월 10일

Y.H.무역 근로자 일동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해결이 안 되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께 저희들의 애타는 마음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거리에 내쫓긴 저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배고픔과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 전에도 몇 부의 호소문이 나간 바와 같이 경영진의 경영부실로 인하여 많은 근로자들이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게 되고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1969년에 왕십리에서 10여 명의 종업원들로 시작하여 1970년에는 4천여 명의 종업원들로 늘어 국가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하여왔고 수출실적이 많아 석탑산업훈장까지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해 온 대가가 지금에 와서는 먹을 것은 물론 잠자리마저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진다면 그 누가 마음 놓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겠습니까?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로서 일찍이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냉대한 사회에 뛰어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배우지 못했다고 사회의 천대를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못 배운 저희들만 원망하며 저희 동생들이 나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의 월급이나마 용돈을 줄여가며 저축하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고 또 부모님의 생계와 약값을 보태준다는 뿌듯한 기쁨으로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 왔습니다.

수출실적이 높으면 나라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다는 국민학교 시절의 배운 것을 더듬으며 우리는 더욱 더 잘사는 나라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만 뜻하지 않은 지난 3월 30일 폐업공고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니만큼 끈질긴 투쟁에 폐업철회는 되었지마는 정상화는 되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 속에서도 회사를 살리고 저희들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정상화는 말도 비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죽음보다 더한 두 번째의 폐업공고가 붙은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저희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살란 말입니까?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화 아니면 죽음이다”라는 동지들의 피맺힌 구호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부당한 것을 탐하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만 주시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더 바랄 것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지금은 다른 기업들도 불황으로 인하여 문 닫는 회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그 이유와는 다른 전혀 불황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회장인 장용호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1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외화 도피시킴으로써 일어난 문제를 어찌 불황이라고 하겠습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점점 심각하게 되어가고 문 닫는 회사들과 많은 실직자가 생기는 지금에 저희 3백 20명마저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약하고 먹을 것 없는 저희들은 죽으란 말입니까.

어디 가서 살길을 찾으란 말입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 근로자들이 신민당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 노동청, 은행이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기에 오갈 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덕한 기업주는 기숙사를 철폐하고 밥은 물론 전기, 수돗물마저 먹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6일 새벽 4시경 여자들만 잠자고 있는 기숙사 문을 부수고 우리 근로자를 끌어내려 했습니다.

이렇게 약자만이 당해야 하는 건가요. 저희들의 회사가 정상화되어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들이 바라는 이 나라의 산업역군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저희들의 근본문제 해결은 조흥은행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YH무역(주)의 모든 주식 및 공장을 압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들의 이 호소가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1979년 8월 10일

Y.H.무역 근로자 일동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이 사료는 1979년 8월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공고에 맞서 농성 중인 YH무역 근로자들이 각계 각층의 인사들에게 보낸 호소문이다. YH무역은 1966년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하여 1970년대 들어 수출 실적 100만 불, 종업원 수 4,000명, 수출 순위 15위인 국내 최대 가발업체로 급성장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사장이 이익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가발 경기가 쇠퇴하여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회사는 종업원 수를 줄이고 하청을 주어 경영압박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YH무역 노동조합은 1978년 5월 9일 회사 정상화와 하청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여 회사 측의 동의를 받아 냈지만, 다음 해인 1979년 3월 30일 회사 측은 폐업 공고를 냈다. 이에 4월 6일 노동자들은 긴급 대의원 대회를 개최하여 회사 정상 조업을 위한 대책과 사업장을 폐쇄할 경우 타 업체의 인수 및 고용 승계 등을 협의하였다. 회사 측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노동자들은 7월 25일 긴급 대의원 대회를 열고 7월 30일까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조합원 총회를 열기로 결의하였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여전히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고, 결국 노동자들은 7월 30일부터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며 야간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8월 6일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내고, 다음 날 기숙사와 식당을 폐쇄하였다. 이와 함께 회사 측은 8월 10일까지 퇴직금과 해고수당을 수령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공고하였다. 187명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다는 판단하에 8월 9일 신민당사에서 회사 정상화와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하였다. 8월 10일 노동자들은 긴급 결사 총회를 열어 YH무역을 은행관리 기업으로 인수할 것과 장용호 회장을 소환할 것, 기업 정상화와 생계 대책을 강구할 것 등을 결의하고 이와 관련한 호소문을 작성하여 각계각층에 보냈다.

그런데 8월 11일 새벽 2시경 경찰이 신민당사의 정문을 부수고 사다리로 창문에 올라가 농성 중인 여성 노동자들을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조 집행위원 김경숙이 사망하고, 신민당 의원과 당원, 기자들이 경찰에 구타당하여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경찰은 노조지부장 최순영 등 여공 172명과 신민당 당원 26명을 연행하였다. 또 정부는 YH무역 노조의 신민당 농성을 배후 조종했다는 이유로 인명진⋅문동환 목사, 이문영 전 고려대학교 교수, 시인 고은 등 8명을 구속하였다. 이를 ‘YH사건’, 또는 ‘YH무역 여공농성사건’이라 부른다.

신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유신 정권의 노동 탄압과 야당 파괴 공작을 비난하였고, 김경숙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사건 발발 직후 종교계, 언론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해직교수협의회, 민주청년협의회 등 각계 각층의 민주화 세력이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반유신 투쟁에 나섰다. 이에 김영삼의 의원직이 박탈되었고, 이를 계기로 1979년 10월 16일부터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나자 정부는 비상계엄과 위수령을 선포하였다. 그 뒤 10월 26일 박정희(朴正熙, 1917~1979)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살해당하면서 18년 동안의 독재 정권은 막을 내렸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한국노동운동사 5: 경제개발기의 노동운동1961~1987』, 이원보(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지식마당, 2004.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 전상봉, 두리미디어, 2004.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조희연, 역사비평사, 2007.
편저
『민족⋅민주⋅민중선언』, 김삼웅 편, 일월서각,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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