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사회현대언론의 시련과 발달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제 보도지침

보도 지침 전문(全文)

1985년

10월 19일

▲ 최근 연행, 억압사건에 관한 건→

① 김영삼, 이민우 민추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② 이 회견에 합류하려던 김대중, 문익환, 송건호 씨 등 재야 인사, 가택연금.

③ 이 회견과 관련한 미국무성 논평

이상 3건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 국회관계

① 김한수의원(신민) 질문 중 △ 김근태(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의장), 허인회(고대 총학생회장) 등 고문행위 △ 광주의 홍기일에 이어 경원대의 송광영군 분신자살, 서울대 오정근의 의문의 자살 △ 올들어 농민 연 32회, 15,000명 시위 이는 동학란 이래 최대의 농민저항 △국민의 95%가 군부통치 아닌 문민통치 희망

이상의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② 신민선의원(국민) 질문 중 △ 농촌 파멸 직전, 매년 60만 명이 이농 △ “정부가 광부들을 살인하고 있다” 등의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10월 29일

▲ 검찰이 발표한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이 아닌 민추위) 이적행위 관계→

① 꼭 1면 톱기사로 써 줄 것(부탁).

② 주모자인 김근태 가족의 월북상황, 출신배경 등 신상에 관한 기사가 연합통신 기사로 자세하게 나올 것이니 꼭 박스기사로 취급할 것.

③ 해설기사도 요망

11월 1일

▲ 서울대 학생시위기사 →

① 비판적 시작으로 다뤄줄 것.

② 교수회의 사진은 1면에 싣지 말 것.

③ 학생데모 기사 중 사회대 등 일부 학생의 수업 거부 움직임 등은 제목이나 기사에 쓰지 않도록 (학생자극 우려)

▲ 오늘 있은 김대중, 김영삼, 이민우 등 3자회동한 사진은 싣지 말도록.

11월 4일

▲ 대학생들, 조선호텔 내 주한 미상공회의소 점거. 오후 1시 8분에 경찰에 모두 연행. →

① 사회면 톱기사로 쓰지 말 것.

② 사진 쓰지 않도록.

③ 제목에 ‘서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소속이라고 쓰지 않도록.

▲ 기사 제목에 ‘호헌’, ‘개헌’이란 말은 일체 쓰지 말 것.→

▲ NCC 고문대책위 구성, 보도하지 말 것.→

11월 18일

▲ 대학생 민정당사 난입사건을 사회면에서 다루되 비판적 시각으로 할 것. 구호나 격렬한 플랜카드 사진 피할 것

12월 2일

▲ 김근태 첫 공판 스케치 기사나 사진 쓰지 말고 공판 사실만 1단으로 쓸 것

1986년

1월 15일

▲ 민정당 창당대회 대통령 치사 1면 톱기사로

3월 31일

▲ 고려대 교수들 개헌지지 성명 사회면 1단으로. "김영삼, 김대중 야욕 버려야" 발언은 눈에 띄게

7월17일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에 맡김) △검찰 발표문 전문은 꼭 실어줄 것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 하지 말고 성모욕 행위로 할 것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 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이수기, 『보도 지침과 신문의 이해』, 2002, 금호출판사

보도 지침 전문(全文)

1985년

10월 19일

▲ 최근 연행, 억압사건에 관한 건→

  ① 김영삼, 이민우 민추협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② 이 회견에 합류하려던 김대중, 문익환, 송건호 씨 등 재야 인사, 가택연금.

  ③ 이 회견과 관련한 미국무성 논평

이상 3건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 국회관계

  ① 김한수의원(신민) 질문 중 △ 김근태(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전의장), 허인회(고대 총학생회장) 등 고문행위 △ 광주의 홍기일에 이어 경원대의 송광영군 분신자살, 서울대 오정근의 의문의 자살 △ 올들어 농민 연 32회, 15,000명 시위 이는 동학란 이래 최대의 농민저항 △국민의 95%가 군부통치 아닌 문민통치 희망

이상의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② 신민선의원(국민) 질문 중 △ 농촌 파멸 직전, 매년 60만 명이 이농 △ “정부가 광부들을 살인하고 있다” 등의 내용은 보도하지 말 것.

10월 29일

▲ 검찰이 발표한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이 아닌 민추위) 이적행위 관계→

  ① 꼭 1면 톱기사로 써 줄 것(부탁).

  ② 주모자인 김근태 가족의 월북상황, 출신배경 등 신상에 관한 기사가 연합통신 기사로 자세하게 나올 것이니 꼭 박스기사로 취급할 것.

  ③ 해설기사도 요망

11월 1일

▲ 서울대 학생시위기사 →

① 비판적 시작으로 다뤄줄 것.

② 교수회의 사진은 1면에 싣지 말 것.

③ 학생데모 기사 중 사회대 등 일부 학생의 수업 거부 움직임 등은 제목이나 기사에 쓰지 않도록 (학생자극 우려)

▲ 오늘 있은 김대중, 김영삼, 이민우 등 3자회동한 사진은 싣지 말도록.

11월 4일

▲ 대학생들, 조선호텔 내 주한 미상공회의소 점거. 오후 1시 8분에 경찰에 모두 연행. →

① 사회면 톱기사로 쓰지 말 것.

② 사진 쓰지 않도록.

③ 제목에 ‘서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소속이라고 쓰지 않도록.

▲ 기사 제목에 ‘호헌’, ‘개헌’이란 말은 일체 쓰지 말 것.→

▲ NCC 고문대책위 구성, 보도하지 말 것.→

11월 18일

▲ 대학생 민정당사 난입사건을 사회면에서 다루되 비판적 시각으로 할 것. 구호나 격렬한 플랜카드 사진 피할 것

12 월 2일

▲ 김근태 첫 공판 스케치 기사나 사진 쓰지 말고 공판 사실만 1단으로 쓸 것

1986년

1월 15일

▲ 민정당 창당대회 대통령 치사 1면 톱기사로

3월 31일

▲ 고려대 교수들 개헌지지 성명 사회면 1단으로. "김영삼, 김대중 야욕 버려야" 발언은 눈에 띄게

7월17일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에 맡김) △검찰 발표문 전문은 꼭 실어줄 것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 하지 말고 성모욕 행위로 할 것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 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이수기, 『보도 지침과 신문의 이해』, 2002, 금호출판사

이 사료는 5공화국 정권에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작성한 보도 지침이다. 1980년 11월 신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을 통폐합하고, 같은 해 12월 언론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문화공보부 산하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하였다. 거의 매일 홍보조정실에서 각 언론사에 기사 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 지침을 작성⋅시달하였다.

보도 지침에 따라 사건을 보도하는가 여부, 보도 방향, 보도의 내용과 형식이 결정되었다. 보도 지침은 어떤 기사를 어떤 내용으로 어느 면 어느 위치에 몇 단으로 싣고, 제목은 어떻게 정하며, 사진을 사용하거나 또는 사용하지 않으며, 당국의 분석 자료를 어떻게 처리하라는 등 세부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1985년 6월 해직 기자들로 구성된 민주언론협의회의 기관지로 창간된 『말』지를 통해 보도 지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은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시달된 584개 항의 보도 지침 내용을 〈한국일보〉가 보관 중이던 자료철에서 복사해 『말』지에 넘겨주었다. 『말』지는 1986년 9월 6일 특집호 「보도 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를 발간하였고, 9월 9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보도 지침 자료 공개 기자회견을 하면서」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말』지는 「권력과 언론의 ‘여론 조작’ 합주곡」이란 권두 보도에서 “한마디로 뚝 잘라 말한다면 언론은 이제 정치 권력으로부터 일방적인 핍박을 받는 쪽이 아니라 현 정권과 손을 잡고 ‘홍보’ 임무를 떠맡음으로써 억압적 통치 기능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보도 지침은 계속 시달되고 그 내용은 지면에 충실하게 반영되며 그 연결 속에서 온갖 은폐와 왜곡은 춤을 춘다”고 비판하였다.

정부는 ‘보도 지침’이 『말』지를 통해 드러나자 탄압에 나섰다. 1986년 12월 10일 보도 지침 폭로 기사와 관련하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 김태홍, 그리고 이틀 뒤인 12월 12일 실행위원 신홍범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구속되었다. 12월 15일에는 보도 지침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제공한 혐의로 김주언 기자를 구속하였다. 검찰은 세 언론인을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 누설, 국가 모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종교 단체와 민주 단체 등은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구속된 세 언론인의 석방 운동을 벌였다. 영국의 인권 단체 엠네스티와 미국의 언론 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도 정부에 서한을 보내고 석방을 요구하였다. 1987년 6월 3일 선고 공판에서 김태홍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신홍범은 선고유예, 김주언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현대사 산책 1980년대』,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3.
『작은 만족이 아름답다』, 김태홍, 인동, 1999.
편저
『보도지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편, 두레, 1988.
『말』(1986년 9월 특집호), 월간 말 편집부, 월간 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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