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삼국 시대삼국의 교육 제도

고구려의 경당

(고구려의) 습속은 서적을 매우 좋아하여 보잘것없는 집에 이르기까지 각기 거리마다 큰 집을 짓고 이를 경당(扃堂)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혼인하지 않은 자제는 이곳에서 밤낮으로 독서하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당서』권199상, 「열전」149상 동이열전 고려

(고구려의) 사람들은 학문을 좋아하여 마을 궁벽한 곳의 보잘것없는 집에 이르기까지 또한 (학문에) 부지런히 힘써서 거리 모서리마다 큰 집을 짓고 경당(局堂)이라고 부르는데, 자제로 미혼(未婚)인 자를 무리 지어 살도록 하고, 경전을 읽으며 활쏘기를 연습한다.

『신당서』권220, 「열전」145 동이열전 고려전

俗愛書籍, 至於衡門廝養之家, 各於街衢造大屋, 謂之扃堂, 子弟未婚之前, 晝夜於此讀書習射.

『舊唐書』卷199上, 「列傳」149上 東夷列傳 高麗

人喜學, 至窮里廝家, 亦相矜勉, 衢側悉構嚴屋, 號扃堂, 子弟未婚者曹處, 誦經習射.

『新唐書』卷220, 「列傳」145 東夷列傳 高麗傳

이 사료는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관한 것으로 삼국 시대 교육기관의 한 양상을 보여 준다. 해당 기사를 전하는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서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경당의 교육 대상은 미혼 자제였다. 미성년이 무리지어 거주하도록 하고 그들을 교육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신라의 화랑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모두 미성년 집회 풍속이 후대까지 남아 있었다고 생각된다. 경당에서는 독서, 즉 경전을 읽었고 활쏘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경전은 유교 경전을 가리키므로, 경당은 유교적 교육기관의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활쏘기 연습은 온달(溫達)처럼 군사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경당은 군사적 교육기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흔히 경당의 교육 대상은 지방의 평민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당서』에서 마을의 궁벽한 곳이라 한 점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즉 지방의 촌락까지 경당이 설치되었다고 본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고구려의 경당은 당시의 서당에 비견되었다. 중앙의 태학과 아울러 지방에는 경당이 있어 교육을 담당하였다고 본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고대사회의 군사와 정치』, 김영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2.
『한국고대사회연구』, 김철준, 지식산업사, 1975.
『한국고대정치사회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1996.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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