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
【지금의 진주(晉州)이다. 또는 강주(剛州), 즉 지금의 순안(順安)이라고도 한다.】
의 선사(善士) 수십 명이 서방(西方)을 구하려는 뜻으로, 그 지역 내에 미타사(彌陁寺)를 세우고 1만 일을 기약하고 계(契)를 만들었다. 그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郁面)이라는 이름의 한 여종이 있었다. ……(중략)…… “『승전(僧傳)』을 살펴보니, ……(중략)…… 아간의 집은 혜숙(惠宿) 법사가 세운 미타사와 거리가 멀지 않았다. .……(중략)……”고 운운하였다.
『삼국유사
'삼국유사' 관련자료
승려 혜숙(惠宿)이 호세랑(好世郞)의 무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호세랑이 이미 화랑도
의 명부[黃卷]에서 이름이 빠지자 혜숙 스님 또한 적선촌(赤善村)
【지금 안강현(安康縣)에 적곡촌(赤谷村)이 있다】
에 숨어 지낸 지가 20여 년이 되었다. 당시 국선(國仙)인 구참공(瞿旵公)이 일찍이 그 부근에 와서 사냥을 하던 어느 날 혜숙이 길가에 나와 고삐를 잡아당기며 청하여 말하기를, “소승 또한 따라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종횡으로 달리며 웃통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자 공이 벌써 기뻐하였다.
'화랑도' 관련자료
피로를 풀고 앉아서 계속 고기를 굽고 삶아 서로 건네었고, 혜숙 또한 더불어 뜯어먹는데 싫은 기색이 거의 없었다. 이윽고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지금 여기에 맛있는 고기가 있으니 더 드리려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좋다.”라고 하였다. 혜숙이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는 그 넓적다리 살을 베어 소반에 담아서 드리니 옷에 피가 젖어 뚝뚝 떨어졌다. 공이 몹시 놀라며 말하기를, “어쩌자고 이리 하였는가?”라고 하였다.
혜숙이 말하였다. “처음 저는 공이 어진 사람이라 능히 자기를 헤아려 만물을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따랐을 뿐입니다. 지금 공이 좋아하는 바를 살펴보니 오직 살육에만 열중하여 남을 해쳐 스스로를 살찌울 따름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나 군자가 할 일이겠습니까? 제가 따를 무리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옷을 털고 가 버렸고, 공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가 먹던 것을 보니 소반 속의 고기가 그대로 있었다. 공은 매우 이상하게 여겨 돌아가서 조정에 아뢰었다.
진평왕(眞平王)
이 그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맞아들이게 하였는데, 혜숙이 여자의 침상에 누워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중사(中使)는 이를 추하다고 생각해 7~8리를 되돌아 가다가 길에서 혜숙 스님을 만났다. 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묻자 혜숙이 말하기를, “도성 안 시주 집[檀越家]의 7일재에 갔다가 자리가 끝나서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중사가 그 말을 임금에게 아뢰니 (왕이) 또 사람을 보내 시주 집을 조사하였는데, 그 일 또한 사실이었다.
'진평왕(眞平王)' 관련자료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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