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삼국 시대삼국의 불교 유물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감 명문

정유년(丁酉年, 577년) 2월 15일 백제 왕(百濟王)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 두 매였으나 장례 때 신묘한 조화로 셋이 되었다.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

丁酉年二月十五日, 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 本舍利二枚, 塟時神化爲三.

「王興寺址 捨離器 銘文」

이 사료는 부여 왕흥사(王興寺)의 건립 시기, 사리기의 제작 시기와 사찰의 건립 배경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부여 왕흥사지(王興寺址)는 부소산 서쪽 방면의 백마강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이다. 왕흥사는 『삼국사기』권27 법왕(法王) 2년(600)조에 “왕흥사를 창건하고 30명이 승려가 되는 것을 허가하였다.”라는 기록과 같은 책 무왕(武王) 35년(634)조에 왕흥사가 낙성되었으며 왕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을 통해 볼 때, 법왕(法王, 재위 599~600) 대에 만들기 시작해 무왕(재위 600~641) 대에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무왕 35년조에는 왕흥사의 위치에 대해 전하고 있는데, “절은 강가에 있었으며, 채색 장식이 웅장하고 화려하였다.”라고 하여 현재 왕흥사의 위치와 거의 유사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무왕 대에 준공된 왕흥사가 현재의 왕흥사지에 있었을 것이라는 설에 설득력을 더해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왕흥사의 정확한 축조 연대와 목적, 그리고 발원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확보되었다. 특히 2007년 왕흥사지의 중심부를 발굴하던 중 발견된 목탑에서 출토된 사리 장엄구 중 청동제 사리기에 새겨진 명문에 단편적이나마 목탑의 창건 연대와 목적, 발원자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명문이 바로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王興寺址捨離器銘文)」인데, 여기에는 577년(丁酉年, 위덕왕 24년)에 백제 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을 세웠음을 밝히고 있어, 왕흥사가 최초로 창건된 시점은 기존의 연구에서 주로 이야기되던 법왕 대가 아닌 창왕, 즉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 대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은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위덕왕 대 연구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전 위덕왕 대에 대한 연구는 주로 554년(성왕 32년)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의 패배로 인한 성왕(聖王, 재위 523~554)의 죽음, 이후 위덕왕의 즉위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과 혼란, 그리고 이를 수습하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위덕왕의 대외 정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삼국사기』 등에 전하는 위덕왕 대 자료 대부분이 주로 대중국 관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와 함께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발견되면서 위덕왕 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이에 더해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이 나오면서 위덕왕이 즉위 초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덕왕이 불교를 통해 왕실 세력을 중심으로 결속을 다지고, 이를 기반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왕흥사지 사리기 명문」은 위덕왕 대 백제의 정치 상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백제 위덕왕대의 정치상황과 대외관계」,『한국상고사학보』43,김병남,한국상고사학회,2004.
「백제 위덕왕대 부여 능산리 사원의 창건」,『백제문화』27,김수태,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1998.
「백제의 성씨와 귀족가문의 출자」,『대구사학』89,노중국,대구사학회,2007.
「백제 위덕왕대 왕권의 존재형태와 성격」,『백제연구』21,양기석,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1990.
「백제 위덕왕대 대외관계」,『선사와 고대』19,양기석,한국고대학회,2003.
「백제 위덕왕대 왕흥사의 창건과 배경」,『문화사학』31,양기석,한국문화사학회,2009.
「위덕왕대 혜왕계 정치세력의 성장과 성격에 대하여」,『역사와 현실』80,장미애,한국역사연구회,2011.
저서
『백제 사비시대 정치사연구』, 김주성,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백제정치사연구』, 노중국, 일조각, 1988.
편저
『부여 왕흥사터 발굴 이야기 : 손 끝으로 백제를 만난 사람들』, 김용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진인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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