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삼국 시대도교 사상의 전파

신라의 도교 수용

백결선생(百結先生)은 어떠한 사람인지 내력을 알지 못한다. 낭산(狼山)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옷을 100번이나 기워서 입어 마치 메추라기를 매단 것과 같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고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기쁨 그리고 마음에 못마땅한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표현하였다.

어느 해가 저물려고 할 때 이웃 동네에서 곡식을 찧었다. 그의 아내가 절구공이 소리를 듣고는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그것을 찧는데, 우리만 없으니 어떻게 한 해를 넘길까?”라고 하였다.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대저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 그것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좇을 수 없는데, 당신은 어찌 (마음) 아파하시오? 내가 당신을 위하여 절구공이 소리를 내어서 위로해 주리다.”라고 하였다. 이에 거문고를 연주하여 절구공이 찧는 소리를 내었다.

삼국사기』권48, 「열전」8 백결선생

김후직(金后稷)은 지증왕(智證王)의 증손이다. (그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을 섬겨 이찬(伊湌)이 되었고 병부령(兵部令)의 임무를 맡았다. 진평대왕이 사냥을 매우 좋아하므로 김후직이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옛날에 임금 된 자는 반드시 하루에도 1만 가지 정사를 보살피는데 깊고 멀리 생각하고, 좌우에 있는 바른 선비들의 직간(直諫)을 받아들여 부지런히 힘쓰고 부지런히 일하여, 감히 편안하게 즐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후에 덕스러운 정치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져 국가를 보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미친 사냥꾼과 더불어 매와 개를 풀어 꿩과 토끼들을 쫓아 산과 들을 빨리 달리기를 스스로 그치시지 못합니다. 노자(老子)는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라고 하였고, 『서경(書經)』에는 ‘안으로 여색을 일삼든지 밖으로 사냥을 일삼든지, 이 중에 하나만 있어도 망하지 아니함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그것을 보면, 안으로 마음을 방탕히 하면 밖으로는 나라가 망하게 되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생각하십시오.”

삼국사기』권45, 「열전」5 김후직

김인문(金仁問)의 자(字)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太宗大王)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에 나아가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설(說)도 널리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을 잘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익숙하였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삼국사기』권44, 「열전」4 김인문

百結先生, 不知何許人. 居狼山下, 家極貧, 衣百結若懸鶉. 時人號爲東里百結先生. 甞慕榮啓期之爲人, 以琴自随, 凡喜怒悲歡不平之事, 皆以琴宣之.

歳將暮, 鄰里舂粟. 其妻聞杵聲曰, 人皆有粟舂之, 我獨無焉, 何以卒歳. 先生仰天嘆曰, 夫死生有命, 冨貴在天, 其來也不可拒, 其徃也不可追, 汝何傷乎 吾爲汝, 作杵聲以慰之. 乃皷琴作杵聲.

『三國史記』卷48, 「列傳」8 百結先生

金后稷, 智證王之曾孫. 事眞平大王爲伊湌, 轉兵部令. 大王頗好田獵, 后稷諌曰 古之王者, 必一日萬機, 深思逺慮, 左右正士, 容受直諌, 孳孳矻矻, 不敢逸豫. 然後德政醇美, 國家可保. 今殿下日與狂夫獵士, 放鷹犬, 逐雉兎, 奔馳山野, 不能自止. 老子曰, 馳騁田獵, 令人心狂, 書曰, 內作色荒, 外作禽荒, 有一于此, 未或不亡. 由是觀之, 內則蕩心, 外則亡國, 不可不省也. 殿下其念之.

『三國史記』卷45, 「列傳」5 金后稷

金仁問, 字仁壽, 太宗大王第二子也. 㓜而就學多讀儒家之書, 兼渉莊⋅老⋅浮屠之說. 又善隷書射御郷樂, 行藝純熟, 識量宏弘, 時人推許.

『三國史記』卷44, 「列傳」4 金仁問

이 사료는 신라의 도교 수용을 살펴볼 수 있는 희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구려에서 도교가 성행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고,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과 그 왕비의 지석(誌石)이나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 대향로에 도교 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에서도 도교가 제법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경우 도교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관련 자료가 많지 않은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렇지만 『삼국사기』 「열전」에는 신라에서 도교를 수용하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만큼, 이를 검토해 보면 신라 사회에서 도교가 차지하던 비중을 어느 정도나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삼국사기』권48에 실려 있는 백결선생(百結先生) 이야기다. 이에 의하면 백결선생은 가난하여 옷을 100번이나 기워 입을 정도였는데, 어느 날 아내가 이웃 동네에서 곡식 찧는 소리를 듣고는 가난한 집안 형편을 걱정하자 거문고를 켜 절구 찧는 소리를 내어 아내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백결선생이 아내를 위로하면서 “대저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 그것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좇을 수 없는데, 당신은 어찌 (마음) 아파하시오?”라고 한 대목이다. 이는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실려 있는 영계기(榮啓期)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열자』는 『노자(老子)』⋅『장자(莊子)』 등과 함께 도가의 대표적 고전 중 하나이다. 아울러 사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는 일찍이 영계기의 사람됨을 사모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적어도 백결선생은 『열자』를 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장 사상에 흠뻑 빠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김후직(金后稷)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이 사냥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간언을 하는데, 그 중에는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이 언급되어 있다. 나아가 그는 “안으로 여색을 일삼든지 밖으로 사냥을 일삼든지, 이 중에 하나가 있어도 혹 망하지 아니함이 없다”라는 『서경(書經)』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간언 중에 언급된 노자의 말은 감각적 욕망의 절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도덕경(道德經)』 12장에 실려 있다. 김후직이 『도덕경』에 담긴 구절을 인용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노자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경』까지 읽어 보았음을 알 수 있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 629~694) 역시 어려서부터 유가(儒家)의 책은 물론이고 장자와 노자의 설까지 널리 읽은 것으로 전한다.

이러한 사례는 늦어도 7세기에는 신라 사회에 도교의 주요 경전이 유입되었음을 말해 준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옷을 여러 차례 기워 입을 정도였던 백결선생이 『열자』를 접하였던 사실은 그만큼 노장 사상과 도교의 경전이 신라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백결선생은 자비왕(慈悲王, 재위 458~479) 대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신라에 도교가 수용된 시점이 5세기 중반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백결선생의 열전에서조차 그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고 밝힐 정도였던 만큼, 그가 자비왕 대의 인물이 맞는지는 앞으로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신라에 도교가 수용된 시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자료상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진평왕 대에 활동하였던 김후직이 지증왕(智證王, 재위 500~514)의 증손이라는 점, 그리고 김인문이 태종무열왕의 아들이라는 점, 나아가 이러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도교의 경전을 공부하였다는 점 정도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7세기 전반 무렵에는 왕족 등 고위 귀족층에서 도교의 경전을 익히는 한편, 임금에게 간언하면서 노자의 언급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이들 사이에서는 도교가 비교적 폭넓게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삼국시대 도교의 연구」,『국사관논총』21,정경희,국사편찬위원회,1991.
편저
「도교」, 양은용, 국사편찬위원회, 2003.
「통일신라시대의 도교사상과 풍류도」, 양은용, 한국도교사상연구회 편, 아세아문화사, 1994.
「유교와 도교」, 이기백, 김원룡 외 공저, 열화당, 1984.
「통일신라시대의 도가사상」, 차주환, 한국철학회 편, 동명사, 1978.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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