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명왕(瑠璃明王, 재위 기원전 19~기원 18) 3년(기원전 17년))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松氏)가 죽었다. 왕이 다시 두 여인에게 장가들어 후실로 삼았다. 하나는 화희(禾姬)라고 하는데 골천(鶻川) 사람의 딸이었고, 또 하나는 치희(稚姬)라 하는데 한인(漢人)의 딸이었다. 두 여인이 총애를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않으므로 왕은 양곡(涼谷)에 동⋅서 2궁을 지어 그들을 각기 두었다.
이후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가 다투었다.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인(漢人) 집의 비첩(婢妾)에 불과한데, 어찌해서 무례함이 심한가?”라고 욕하였다. 치희가 부끄럽고 분하여 도망쳐 돌아갔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이를 따라갔으나 치희는 화가 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꾀꼬리[黃鳥]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이에 감상에 젖어 노래하였다. “훨훨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의지하는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 것인가?”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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