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삼국 시대삼국의 예술과 문화

쇼토쿠 태자의 스승 혜자

[추고천황(推古天皇) 1년(593)] 여름 4월 경오삭(庚午朔) 기묘(己卯)일, 구호풍총이(廐戶豊聰耳, 우마야도노 도요토미미) 황자(皇子)를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았고, 이에 더하여 섭정(攝政)을 맡겨 각종 정무를 모두 위임하였다.1) ……(중략)…… 또한 고구려의 승려 혜자(慧慈)로부터 불교[內敎]를 익히고, 박사(博士) 각가(覺哿)로부터 불교 이외의 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아울러 모두 통달하였다.

『일본서기』권22, 「추고천황」 1년

1)일본 최초의 여황제인 33대 왜황 추고(推古, 스이코)는 아들이 없어 조카 구호풍총이를 태자로 삼아 섭정하게 하였다.

[推古天皇 1年] 夏四月庚午朔己卯, 立廐戶豊聰耳皇子爲皇太子, 仍錄攝政, 以萬機悉委焉. ……(中略)…… 且習內敎於高麗僧慧慈, 學外典於博士覺哿, 並悉達矣.

『日本書紀』卷22, 「推古天皇」 1年

이 사료는 추고천황(推古天皇, 재위 593~628)이 구호풍총이(廐戶豊聰耳) 황자(皇子)를 황태자로 삼고 섭정을 맡겼음을 전한다. 구호풍총이는 곧 쇼토쿠태자[聖德太子, ?~622]로, 이는 그의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사료에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으로 나오는 고구려 승려 혜자(慧慈, ?~622)와 박사(博士) 각가(覺哿)가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혜자가 왜(倭)로 건너간 것은 영양왕(嬰陽王, 재위 590~618)의 뜻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그는 고구려의 대왜(對倭) 외교를 상징하는 인물로 관심을 모은다. 고구려는 570년(평원왕 12년) 왜에 사절을 파견해 그 동안의 비우호적 관계를 청산하고 공적 외교 교섭의 통로를 열었다. 6세기 중반 이후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다원적인 국제질서가 재편의 조짐을 보이며 왜와의 우호 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590년대 고구려는 서방의 수(隋)나라와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었다. 590년 수 문제(文帝, 재위 581~604)의 새서(璽書)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580년대 중⋅후반부터 수나라가 요서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며 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고구려에서는 수나라 혹은 그와 연계된 신라를 견제할 세력으로 왜를 주목하였고, 이러한 외교적 요구 속에서 혜자가 파견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 시기 왜에서는 쇼토쿠태자가 섭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지향하였다. 이를 위해 친백제계의 소가씨[蘇我氏] 세력을 견제하였고, 나아가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와 다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또한 왕권의 안정을 위해 불교를 중시하였는데, 이에 따라 외교 관계는 대체로 불교를 매개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쇼토쿠태자의 불교 학습이 혜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 사실이 눈길을 끄는데, 그의 각종 정책에는 혜자가 중요한 자문을 담당하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이 사료에서 각가의 출신은 분명치 않지만 혜자처럼 고구려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흠명천황(欽明天皇, 재위 539~571) 대 여러 박사가 백제에서 와서 순번 근무하였고, 사료에 보이는 각종 박사 역시 백제 출신이 다수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와 같이 짐작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각가는 고구려의 국자박사(國子博士) 내지 태학박사(太學博士)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 역시 혜자처럼 쇼토쿠태자의 각종 정책 수립과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593년(영양왕 4년) 혜자의 왜 파견은 6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 재편과 고구려 대외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며,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후 왜와 고구려와의 대외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문화적인 교류가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630년 이후부터는 정치⋅군사적인 동맹이 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혜자와 각가의 활동은 비단 사상⋅문화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7세기 고구려 대외 관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7세기 고구려 대왜 관계의 변화-630년을 기점으로-」,『역사와 현실』57,김지영,한국역사연구회,2005.
저서
『고대한일관계사』, 연민수, 혜안, 1998.
『고구려 불교사 연구』, 정선여, 서경문화사, 2007.
『고대 한일 정치교섭사 연구』, 정효운, 학연문화사, 1995.
편저
『동아시아 속에서의 고구려와 왜』, 한일관계사학회 편, 경인문화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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