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9년, 990) 9월 병자일에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먼저 근본에 힘써야 하는데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 바로 효도이다. 이는 3황 5제(三皇五帝)의 근본 사업이며 모든 일의 기본 강령이요 모든 선의 중심이다. 이 때문에 한(漢)의 황제는 양인(楊引)
의 지극한 효성을 장려하기 위해 역사에 그 이름을 기록하도록 명령하였다.
'성종' 관련자료
중국 북위 시대 이름난 효자
이 부모를 극진히 모신 것을 기특히 여겨 그 집과 마을에 정문(旌門)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운 붉은 문
을 세워 그의 효성을 표창하였고 진(晉)의 황제는 왕상(王祥)1)
1)
왕상은 일찍이 계모 밑에서 자라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어느 날 계모가 병들어 한겨울에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이를 위해 강물의 얼음을 깨고 뛰어들려 했다. 그런데 그때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과인은 어려서 어버이를 잃고, 나이가 들어서는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외람되이 선대 임금의 뒤를 이어 국사를 맡게 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니 세월의 덧없음이 슬프며, 매양 형제들의 지난 일을 생각하니 동기간의 간절한 정이 더욱 간절하다. 그래서 6경(六經)
유교의 핵심 경전인『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
의 대의를 본받고 삼례(三禮)
『예기』⋅『주례』⋅『의례』
의 규범에 의거해 나라 안의 풍속이 모두 다섯 종류의 효도[五孝]
천자⋅제후⋅경대부⋅선비⋅서민 다섯 신분의 효도
의 모범을 따르도록 하려고 한다. 요사이 사자를 6도에 파견하여 법규의 조목[敎條]를 반포하고 흉년으로 인해 떠도는 노약자들을 구제하고 궁핍한 홀아비와 고아들을 구휼했으며, 효자⋅순손(順孫)
조부모를 잘 받드는 손자
⋅의부(義夫)
아내가 죽은 뒤 재가하지 않은 남편
⋅절부(節婦)
절개를 지킨 부인
를 널리 찾도록 하였다. …… 함부(咸富) 등 남녀 7인에게는 모두 정문을 세우고 요역을 면제하여 주라. 차달(車達) 형제 등 4인은 역참(驛站)과 섬에서 해방시켜 그 소원에 따라 다른 주현의 호적에 편입하도록 할 것이며, 순흥(順興) 등 5인에게는 관직과 품계를 주어 그 효도를 널리 알리도록 하라. 지금 기거랑(起居郞) 김심언(金審言, ?~1018) 등을 그들에게 파견하여 한 사람마다 곡식 100석, 은 주발 2벌, 채색 비단과 베 68필씩을 내려 주고, 조영(趙英)에게는 품계 10등급을 올려 은청광록대부⋅검교시어⋅사헌좌무후⋅위익부낭장(銀靑光祿大夫⋅檢校侍御⋅司憲左武候⋅衛翊府郞將)을 수여하고 또 공복 1벌, 은 30냥, 채색 비단 20필을 내려 주도록 하라!”
아아! 임금은 만백성의 우두머리요 만백성은 임금의 심복이니, 백성들이 착한 일을 하면 그것은 동시에 나의 복이요, 악한 일을 하면 그것은 역시 나의 걱정이다. 부모 봉양을 잘하는 행실과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는 마음을 널리 드러내고 표창하는 바이다. 시골의 어리석은 백성들까지도 오히려 효도를 하는데 하물며 진신군자(搢紳君子)
관복에 홀을 허리띠에 꽂은 군자들, 즉 벼슬아치의 총칭
로서 선대를 받드는 것을 게을리할 수 있겠는가! 자기 집에서 효자가 될 수 있다면 반드시 나라에 충신이 될 것이니, 모든 관리와 평민들은 나의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고려사』권3, 「세가」3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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