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찍이 동중서(董仲舒, B.C. 179~B.C. 104)의 책문(策文)을 살펴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도리를 잃고 장차 패망하려 하면 하늘이 먼저 재앙과 이변을 나타내어 경고하게 되고 그래도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면 또 괴이한 징조를 보여 두려워하게 하며, 그래도 오히려 고칠 줄 모르면 손상과 패망이 비로소 닥쳐 온다. 이는 하늘이 임금을 사랑하는 까닭에 그 어지러움을 멈추게 하려는 마음을 보이시는 것이니, 스스로 크게 무도(無道)한 세상이 아니면 하늘은 그 나라를 도와 온전하고 편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위로 하늘의 꾸짖음에 답하려면 반드시 힘써 노력해 진실로 응답해야만 한다.”
전(傳)에 이르기를 “하늘에 응답할 때는 진실로써 응답해야지, 형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진실이란 덕(德)을 말함이요, 형식이란 요즘 사원이나 도관
에서 올리는 도량(道場)
'도관' 관련자료
불교 법회
, 재초(齋醮)
도교의 제사 의식
와 같은 것입니다. 임금이 덕을 닦아 하늘에 응답하면 복을 기다리지 않아도 복은 저절로 올 것입니다. 만약 덕을 닦지 않고 다만 헛되이 형식에만 매달린다면 무익할 뿐 아니라 하늘을 모독할 따름입니다. 『서경(書經)』에는 “하늘은 사사로이 친함이 없고 오직 덕 있는 자만 돕는다”고 하였으며, 또 “서직(黍稷)
제사에 쓰는 기장
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明德)만이 향기로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덕(德)이란 것을 어찌 다른 곳에서 찾겠습니까? 그것은 임금 자신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에서 찾아야 할 뿐입니다. 마음을 선하게 쓰고 그것이 모든 행동으로 나타난 임금들이 요(堯)⋅순(舜)⋅우(禹)⋅탕(湯)⋅주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다 천심(天心)에 부합되어서 능히 무궁한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선하지 못하고 그것이 모든 행동으로 나타난 임금들은 걸(桀)⋅주(紂)⋅주나라 유왕(幽王)⋅여왕(厲王)⋅진시황(秦始皇)입니다. 그들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다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서 구차한 자기 한 몸조차도 지킬 수 없었으니, 또한 어찌 천하의 국가를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하늘과 인간 사이는 아득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말로 통할 수는 없으나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가 울리는 것과도 같이 빠릅니다. 근년 들어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고 흉년이 겹쳤으며, 얼마 전에는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고 정월에 벼락과 천둥이 특이하게 쳤으니, 이는 가까운 과거에는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진실이 아닌 형식으로만 하늘에 응답하신 것은 아니십니까?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잦은데도 이변은 어찌 이리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늘이 꾸짖어 경고하심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폐하를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심이 마치 부모가 그 자식을 꾸짖어 경고하는 것처럼 곁에서 도와주어 안전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폐하께서 진실된 마음으로써 응답하는 데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진실됨으로써 힘써 응답하려면 지금의 폐해를 혁파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태조
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따르고 문종
의 옛 법전을 실행해야 할 뿐입니다.
'태조' 관련자료
'문종' 관련자료
『고려사』권98, 「열전」11 [제신] 임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