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는 현광(玄光)⋅의통(義通)⋅체관(諦觀)⋅덕선(德善)⋅지종(智宗)⋅의천(義天)
과 같은 분이 바다를 건너 교리를 물었다. (이들이) 천태종(天台宗)의 삼관(三觀)의 뜻을 배워서 국내에 전하여 우리나라를 복되게 한 것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다. 하지만 보현도량(普賢道場)을 열고 널리 불경을 읽도록 권하기까지는 한 일이 없었다. 오직 대사가 종교가 쇠해 가려던 때를 당하여 크게 법당(法幢)을 세워, 법을 듣지 못하던 세속을 놀라게 하여 뿌리 없던 신심(信心)을 서게 하여, 조사(祖師)의 교리가 다시 일어나 천하에 널리 미치게 하니, 본원력(本願力)
'의천(義天)' 관련자료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고 세운 큰 맹세의 힘
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면 말세에 태어나서 여래(如來)의 시킨 바 되어 여래의 일을 행하기를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중략)…… 처음 영동산(靈洞山) 장연사(長淵寺)에 머물러 법당을 열고, 후진을 애써 가르치는 데 부지런히 하니 가르침을 청하는 이가 많았다. 때마침 조계(曺溪)의 목우자(牧牛子)
지눌의 호
가 공산회불갑(公山會佛岬)에 있다가 그 풍화를 듣고 마음으로 뜻이 통하여, 게(偈)를 대사에게 보내 선법(禪法)을 닦으라고 권하였다. 게에 이르기를, 물결이 어지러우니 달 드러나기 어렵고
방이 깊으니 등불 더욱 빛난다.
권하노니 그대는 마음 그릇을 바로 놓아
감로장이 쏟아지게 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가 보고 마음에 맞아 빨리 그를 좇아 법우(法友)가 되어 도의 교화를 도왔다. 수년 있다가 목우자가 강남으로 옮겨갔는데 대사도 따라갔다. ……(중략)……
무자년(1228년) 여름 5월 유생 여러 명이 개경
에서 내려와 뵈니 대사가 제자로 받아들여 머리를 깎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가르쳐 통달하게 하였다. 이후 주위에서 높은 소문을 듣고 신행(信行)이 있는 자들이 자주 찾아와 점점 큰 모임이 되었다.
'개경' 관련자료
임진년(1232년) 여름 4월 8일 처음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결성하고 법화삼매(法華三昧)1)
를 수행하여,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기를 구하였는데, 모두 천태삼매의(天台三昧儀)를 그대로 따랐다. 오랫동안 법화참(法華懺)을 수행하고 전후에 권하여 발심(發心)시켜 이 경을 외우도록 하여 외운 자가 1000여 명이나 되었다.사중(四衆)
1)
『법화경(法華經)』을 통해 진리에 들어가는 수양법. 죄업을 참회하는 수행법으로 하루 여섯 번 참회(懺悔)⋅권청(勸請)⋅수희(隨喜)⋅회향(廻向)⋅발원(發願)의 다섯 가지 참회를 수행하도록 하여 삼매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불문(佛門)의 네 가지 제자(弟子)인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 우바니의 통칭
의 청을 받아 교화시켜 인연을 지어 준 지 30년에 묘수(妙手)로 제자를 만든 것이 38명이나 되었으며, 절을 지은 것이 다섯 곳이며, 왕공대인(王公大人) 목백현재(牧伯縣宰)
여러 지방 고을의 수령
들과 높고 낮은 사중들이 이름을 써서 사(社)에 들어온 자들이 300여 명이나 되었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서로 가르침을 전하여 한 귀(句) 한 게(偈)를 듣고 멀리 좋은 인연을 맺은 자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동문선』권117 만덕산백련사원묘국사
'국사'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