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적(閔頔, 1269~1335)의 자는 낙전(樂全)으로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외조부 유천우(兪千遇, 1209~1276)가 그를 보고 신기하게 여겨 “이 아이는 후일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재상을 지낸 이모부 김군(金頵, ?~1299)이 그 말을 듣고 자기 집에서 키웠다.
나라 풍속에 어릴 때는 반드시 승려를 따라가 글을 익혔는데, 면수(面首)
이다. 민적은 열 살 때 절에 가서 글을 배웠는데 천성이 영민하여 한 번 배우면 곧 그 뜻을 환하게 알았다. 눈썹이 그린 것 같았고 풍채가 아름다웠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사랑하였다. 충렬왕(忠烈王, 1274~1308)
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불러 보고는 그를 국선(國仙)으로 임명하였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남자
인 경우 승려든 속세 사람이든 모두 그들을 받들어 선랑(仙郞)이라 불렀다. 따르는 무리들이 때로는 100명이나 1000명에 이르는 때도 있었다. 그 풍속은 신라에서 비롯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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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권108, 「열전」21 [제신] 민종유 부 민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