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고려 시대도교와 풍수지리설

도교 사원의 모습-복원관

복원관(福源觀)은 왕부(王府) 북쪽 태화문(太和門) 안에 있는데 정화(政和) 연간에 세워진 것이다. 앞방은 ‘부석지문(敷錫之門)’이라 하였고 다음 방은 ‘복원지관(福源之觀)’이라 하였다.

들은 바에 따르면 전내(殿內)삼청상(三淸像)을 그렸는데 혼원황제(混元皇帝)의 수염과 머리털이 다 감색(紺色)이어서 우연히 성조(聖朝)께서 진성(眞聖)의 모습을 그리신 뜻과 합치하니 또한 가상하다. 예전에는 나라 사람들이 허정(虛靜)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사람마다 다 귀의하여 믿는다고 한다.

선화봉사고려도경』권17, 사우

福源觀, 在王府之北大和門內, 建於政和間. 前榜曰敷錫之門, 次榜曰福源之觀.

甞聞殿內繪三淸像, 而混元皇帝鬚髮皆紺色, 偶合聖朝圖繪真聖㒵像之意, 亦可嘉也. 前此國俗, 未聞虛靜之敎, 今則人人, 咸知歸仰云.

『宣和奉使高麗圖經』卷17, 祠宇

이 사료는 1123년(인종 1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실린 내용으로, 고려 예종(睿宗, 재위 1105~1122) 때 건립된 최초의 도교 사원인 복원관(福源觀)의 위치와 구성, 고려인들의 신앙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복원관은 예종이 이중약(李仲若, ?~1122)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은 곳이다. 이중약은 경주 출신으로 청하자(靑霞子)를 호를 삼았는데, 유학과 함께 도풍(道風)을 익힌 인물이었다. 월출산에 일재(逸齋)를 짓고, 『황정경(黃庭經)』을 보면서 연단수련(鍊丹修鍊)을 하는 등 도교 의술(道敎醫術)에 밝아 명성을 얻었다. 궁중에서 태자를 모시다가 예종이 즉위함에 따라 조정에 등용되었다. 이중약은 예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도교 정책을 추진하다가 예종이 죽자 1122년(인종 즉위년) 이자겸(李資謙) 세력이 인종 즉위를 위해 대방공(帶方公) 보(俌, ?~1128)와 한안인(韓安仁, ?~1122) 일파를 축출할 때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를 죽일 때 그의 의술이 능함을 알고 뒤에 사람을 보내 물에 던져 죽였다고 한다.

복원관의 건립 과정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경사편2 도장총설이 보다 상세하다. 즉, 이중약이 선학(禪學)을 좋아하여 송나라에 들어가서 황대충(黃大忠)을 만나 도교 요체를 전수 받은 뒤 본국에 돌아와 현관(玄觀)을 설치하여 국가의 재초(齋醮)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그곳이 복원궁(福源宮)이었다는 것이다. 『송사(宋史)』에는 “휘종(徽宗)의 대관(大觀) 연간 조정에서 도사 2명을 보내 고려에 가서 마침내 복원궁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때 도사 70여 명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중약이 복원궁에서 도교 이치를 강론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한다. 예종은 복원궁에서 몸소 초제(醮祭)와 태일(太一)⋅수성(壽星)⋅탄일초(誕日醮) 등을 지낸 것이 확인된다. 특히 태일초가 집중적으로 올려졌는데, 풍우⋅한발⋅기근⋅질병 등을 다스리고 수복강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복원궁의 모습은 위의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궁궐 북쪽 태화문(太和門) 안에 복원궁이 있고, 정면의 전방(前榜)에는 ‘부석지문(敷錫之門)’, 다음 방에는 ‘복원지관(福源之觀)’이라고 한 것이다. 전각 안에는 삼청상(三淸像)을 그려 모셨음이 확인된다. 이를 삼청전이라 하기도 하였다. 복원궁에는 재궁(齋宮)이 있어 도사 10여 명이 낮에 거처하면서 도교의 초례를 집행하고, 저녁에는 사실(私室)로 돌아가곤 하였다. 이들의 복장은 우의(羽衣)를 사용하지 않고, 백포(白布)로 만들고 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갖옷에 조건(皁巾)사대(四帶)를 입었다.

이 사료를 통해 도교가 이중약을 중심으로 예종 대에 본격적으로 고려에 소개되고 궁궐 내의 복원궁 등을 통해 숭앙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종 대 전개되었던 도교 세력은 예종의 죽음과 이중약 등 도교 중심인물이 제거되면서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 예종대 도교 진흥의 배경과 추진세력」,『전남사학』20,김병인,전남사학회,2003.
「고려중기 도교의 성행과 그 성격」,『사학지』28,김철웅,단국대학교 사학회,1995.
「고려시대의 도교와 민간신앙」,『철학사상의 제문제 4』,박경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6.
「고려의 구요신앙과 그 사상원류」,『가산이지관스님화갑기념논총 한국불교문화사상사』(권상),서윤길,논총간행위원회,1992.
「복원궁 건립의 역사적 의의」,『도교와 한국문학』,양은용,아세아문화사,1988.
「고려도교의 역사자료」,『한국종교』10,양은용,원광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1985.
「고려도교의 정사색고」,『한국종교』7,양은용,원광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1982.
「고려시대의 도교와 불교」,『한국종교』8,양은용,원광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1983.
「고려시대 전염병과 치병의례」,『이화사학연구』34,이정숙,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2007.
「고려중기 도교의 종합적 연구」,『한국학논집』15,이종은⋅양은용⋅김낙필,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1989.
「고려 예종대 도가사상⋅도교 흥기의 정치적 성격」,『한국사연구』142,채웅석,한국사연구회,2008.
저서
『한국도교사』, 이능화, 동국대학교, 1957.
『조선도교사』, 이종은, 보성문화사, 1977.
『한국의 도교사상』, 차주환, 동화출판공사, 198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