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고려 시대도교와 풍수지리설

신륵사 대장각 건립기

여흥군 신륵사대장각기

판삼사사(判三司事) 한산(韓山) 목은선생(牧隱先生)이 이숭인(1347~1392)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대덕(大德) 경술년(1310, 충선왕 2) 7월 초 3일에 나의 조부 정읍부군(井邑府君)께서 병으로 돌아가셨다. 선군(先君)이신 가정문효공(稼亭文孝公)께서 당시 13세셨지만 초상과 장례를 잘 치르셨다. 지정(至正) 경인년(1350, 충정왕 2) 10월 2일에 할머니께서 병으로 돌아가시자 선군께서는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승려를 청해 시골의 절에서 불경을 읽었다. 선군께서 매번 탄식하시기를 ‘나는 이제부터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하셨는데, 좌올남산총공(坐兀南山聰公)이 선군께 말하기를 ‘공이 지금 진실로 우리 불법으로써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면, 어찌 장교(藏敎) 한 부를 간행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불법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였다. 선군께서는 즉시 부처의 초상을 향하여 서원(誓願)을 세웠다. ……(중략)……”

이숭인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곧 기문을 써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의 도(道)가 청정(淸淨)하고 고묘(高妙)하여 한 점의 티끌도 묻지 않고 만물에 초연하게 뛰어났으므로, 현자와 지자들은 본래부터 이를 즐거워하였다. 그 말에는 또 이른바 복전이익(福田利益)이라는 설(說)이 있으니, 충신이나 효자로서 임금이나 어버이의 은혜를 갚으려는 자라면 그 극진한 방법을 쓰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에 귀의(歸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서(佛書)가 세상에 크게 전파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정(稼亭) 선생께서 이미 일으키시고 목은 선생께서 계승하셔서 마침내 이 법보(法寶)를 이루었다. 임금과 어버이에게 복(福)을 받드는 이것이 곧 충신과 효자가 임금이나 어버이를 위하여 극진함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누가 신하가 아니며, 아들이 아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천만세에 이르기까지, 그 하늘같이 존경하는 분에 대하여 사모하고 발원(發願)하려는 자는 반드시 여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으니, 내가 감히 즐겁게 글을 쓰지 않겠는가.사중(四衆) 중 재물을 바쳐 힘을 보탠 자에 대해서는 그의 성명을 모두 비석의 뒷면에 적어 둔다.”

『동문선』권76 「기」 여흥군 신륵사 대장각기

驪興郡神勒寺大藏閣記

判三司事韓山牧隱先生, 命崇仁曰. 大德庚戌七月初三日, 吾祖井邑府君病歿, 先君稼亭文孝公年十三, 喪葬無憾. 至正庚寅十月二十日, 祖母病歿, 先君襄事以禮, 閒請浮屠, 轉經于鄕之僧舍. 先君每嘆, 吾今而後何怙何恃, 座兀南山聦公謂先君曰, 公今苟欲以吾法, 資考妣冥福, 盍成一部藏敎乎. 吾法盡在是矣. 先君卽向金仙肖像而立願焉. ……(中略)……

崇仁不敢辭, 乃言曰. 佛氏之道, 淸淨高妙, 不霑一塵, 超出萬物, 賢智者固已樂之矣. 其言又有所謂福田利益者, 於是忠臣孝子所以報君親之至恩, 無所不用其極者, 不得不歸焉. 其書之盛傳於世宜也.

稼亭先生旣作之, 牧隱先生又述之, 卒能成此法寶. 奉福利於君親, 斯乃忠臣孝子之無所不用其極者歟. 嗚呼, 孰非臣子哉. 自今至于千萬世, 其有所感發於所天者, 必於此而得之也無疑矣, 崇仁敢不樂爲之書. 若夫四衆之岀財力以相助者, 其名氏具列於碑之陰云.

『東文選』卷76 「記」 驪興郡神勒寺大藏閣記

이 사료는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이 스승인 이색(李穡, 1328~1396)의 뜻을 받들어 신륵사에 불경을 인출 보관하는 대장각(大藏閣)을 세우게 된 경위를 정리한 글이다. 고려 말 성리학을 공부했지만 신앙의 차원에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복을 비는 당시의 풍조를 보여 준다.

이숭인은 호가 도은(陶隱)으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지며 특히 문장을 잘 지었다. 스승 이색이 그의 문장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이라 하였고, 명 태조도 그가 찬한 표문에 대해 문장이 절실하다 하였으며, 중국의 사대부도 그 저술을 보고 모두 탄복할 만큼 명 문장가였다. 평소 이숭인의 문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색은 그에게 신륵사 대장각기를 쓸 것을 부탁한 것이다.

신륵사 대장각 건립 경위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색은 아버지 이곡(李穀, 1298~1351)이 부모상을 당해 예를 다해 장사한 뒤 승려를 청해 불경을 읽어 명복을 빈 바 있다 하였다.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이곡에게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판각 인출하는 불사 기원을 할 것을 조언하여 즉시 발원하였으나, 이곡이 1351년에 죽으면서 지연되었다. 후에 나옹은 이색에게 편지를 보내 이곡이 소원으로 삼은 일을 행하여야 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1371년(공민왕 20년) 어머니 김씨가 사망하고,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이 1374년 승하하면서 계속 지연되었다. 그 뒤 1379년(우왕 5년) 우연히 나옹과 만난 이색은 ‘위로는 선왕의 명복을 빌고, 아래로는 선고(先考)의 뜻을 계승하는 일이 여기에 있다’면서 뜻을 굳혔다.

무급(無及)⋅수봉(琇峯) 두 승려가 이를 격려하자, 마침내 1380년(우왕 6년) 2월부터 희사(喜捨)를 모았다. 이때 활동한 내용을 보면 각참(覺旵)은 순흥(順興)에서, 각잠(覺岑)은 안동에서, 각홍(覺洪)은 영해(寧海)에서, 도혜(道惠)는 청주에서, 각연(覺連)은 충주에서, 각운(覺雲)은 평양에서, 범웅(梵雄)은 봉주(鳳州)에서, 지보(志寶)는 아주(牙州)에서 선행을 권장하였다. 마침내 1381년(우왕 7년) 『경률론(經律論)』 인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30여 년의 오랜 발원이 비로소 이루어진 것을 경축하고 국왕의 장수와 나라의 복을 비는 데 바치는 비석을 세우면서 이색은 이숭인에게 기문을 쓸 것을 부탁한 것이다. 즉 이색은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나옹과 그 제자들과 함께 대장각을 조성하는 소원을 이룬 셈이다.

이숭인이 정리한 신륵사 대장각기를 보면 당시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직접적으로는 이곡⋅이색 부자와 나옹선사의 교류 사실이 나와 당시 유불 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 충신⋅효자로서 임금과 부모를 위해 발원을 해서 희사를 모으고, 불경을 전경(傳經)하는 과정, 여기에 국신리(國贐里)에 사는 노파 묘안(妙安)의 정성, 절 남쪽에 2층 대장각 건립, 이러한 모든 과정을 담은 비문 작성 및 비석 건립 등이 모두 나온다. 현재 신륵사에는 대장각이 없지만, 그 옆에 높이 1.33m에 달하는 대장각기비가 세워져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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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목은 이색의 생애와 사상』, 목은연구회,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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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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