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佛氏)가 인륜을 버린 데 관한 변[佛氏毁棄人倫之辨]
명도(明道)
중국 북송의 유학자 정호(程顥, 1032~1085)의 호(號)
선생은 “도(道) 밖에 물(物)이 없고 물 바깥에 도가 없으니,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 어디를 가나 도가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親)한 바가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임금과 신하의 엄격한 바가 있고,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각각 도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는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인륜을 허물고 사대(四大)【살펴보자면 사대(四大)는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이다.】를 버리는 것은 도(道)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말과 행위가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건만 실제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에 벗어나 있다” 하였으니, 선생의 판단이 매우 옳다. 불씨의 화와 복에 대한 변[佛氏禍福之辨]
……(중략)…… 저 불씨는 사람이 사악한지 정의로운지 올바른지 그른지는 가리지 않고 말하기를, “우리 부처에게 오는 자는 화를 면하고 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은 비록 열 가지의 큰 죄악1)
을 지은 사람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면 화를 면하게 되고, 아무리 도가 높은 선비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으면 화를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령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올바른 도리가 아니므로 징계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불씨의 가르침이 일어난 후 오늘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부처 섬기기에 매우 독실했던 양 무제(梁武帝)나 당 헌종(唐憲宗)과 같은 이도 모두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한퇴지(韓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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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의 큰 죄악 :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는 열 가지 범죄.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의(不義), 내란(內亂)이다.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의 자(字)
가 “부처 섬기기를 더욱 근실하게 할수록 연대(年代)는 더욱 단축되었다”고 한 말이 또한 매우 깊이 있고 분명하지 않은가? 이단을 물리치는 데 대한 변[闢異端之辨]
……(중략)…… 불씨의 경우는 그 말이 고상하고 미묘하여 성명(性命)⋅도덕(道德)의 논의를 오감으로써 사람을 현혹함이 양주(楊朱)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자신을 중시하고(重己) 목숨을 귀하게 여길 것(貴生)을 주장했다.
와 묵자(墨子)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본명은 묵적(墨翟).
보다 더 심하였다. 주자(朱子)가 “불씨의 말이 더욱 이치에 가깝지만 참된 것(眞)을 크게 어지럽힌다”라고 한 말은 이를 가리킨 것이다. 내 정신이 흐릿하고 어리석어 재주가 부족함을 알지 못한 채 이단을 물리치는 것을 나의 임무로 삼은 것은, 앞서 열거한 여섯 성인[과 한 현인의 마음을 계승하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이단의 말에 현혹되고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아! 난신적자(亂臣賊子)는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사(士師)
형벌을 다스리는 관리
가 필요한 것이 아니며, 사특한 말이 흘러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면 사람마다 물리칠 수 있으니 반드시 성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점이자 아울러 나 스스로가 힘쓰는 바다.『삼봉집』권9, 『불씨잡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