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생원 박초(朴礎, 1367~1454) 등도 역시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엎드려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태조
께서 창업하신 이래로 훌륭하신 왕족들께서 대대로 이어가면서 왕업을 망치지 않은 지 거의 500년이 되었습니다. ……(중략)…… 신들이 가만히 듣건대 천지가 있은 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후에야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父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후에 위아래가 있고, 위아래가 있은 후에 예의가 비로소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요, 고금의 떳떳한 법이므로 잠시라도 거기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만일 이를 없앤다면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바요, 해와 달이 비치지 않을 바요, 귀신이 죽일 것이요, 천하 만세의 공론(公論)이 같이 베어 죽일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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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처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대를 이어야 할 적자로서 그 아비를 떠나 부자의 친분을 끊고, 필부(匹夫)로서 천자에 항명하여 군신의 의(義)를 멸하며, 남녀가 집에 사는 것을 도가 아니라 하고, 남자가 밭 갈고 여자가 베를 짬을 불의(不義)라 하여, 자식을 낳고 사는 도를 끊고 의식의 근원을 막아 버리면서 (부처의) 도를 가지고 천하를 바꾸는 일을 생각하려 합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한다면 100년 후에는 인류가 끊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운행하는 하늘과 아래에서 싣고 있는 땅 사이에 나고 자라는 것은 오직 나무와 풀, 날짐승과 들짐승, 물고기와 자라, 용과 뱀에 불과할 뿐이니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는 어디에 발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대저 부처는 본래 오랑캐의 사람으로 중국과 언어가 같지 않고 의복이 다릅니다. 입으로는 선왕(先王)의 법언(法言)을 말하지 않고, 몸에는 선왕의 법복(法服)을 입지 않습니다. 부부와 부자, 군신의 윤리를 알지 못하고, 거짓으로 삼도(三途)
불교에서 살았을 때 지은 죄에 따라 죽은 뒤에 간다는 지옥도(地獄道)⋅축생도(畜生道)⋅아귀도(餓鬼道)의 세 가지 악도(惡道)
를 말하고 그릇되게 육도(六道)
불교에서 살았을 때의 행적에 따라 이르게 되는 여섯 가지 존재 상태. 천(天)⋅인간⋅아수라(阿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의 세계
를 주장합니다. 마침내 우매한 이들에게 망녕스럽게 공덕(功德)을 구하여 나라에서 금하는 바를 꺼리지 않고 가볍게 법을 어기도록 합니다. 또 삶과 죽음, 오래 살고 빨리 죽는 것은 자연에 의한 것이고, 위복(威福)과 형덕(刑德)
형벌과 덕화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은 임금이 주관하며, 빈부귀천은 노력하여 세운 공업(功業)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들은 거짓말을 꾸며 다 부처 덕분으로 하면서 임금의 권한을 훔치고 조물주의 힘을 멋대로 내세워 백성들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여 천하를 더러운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니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 죽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틈타 누각과 전각, 궁궐을 지어 부처를 섬기고 흙과 나무, 구리와 쇠로 장식하여 불상을 꾸미고 양인(良人) 남녀의 머리를 깎아 그곳에 살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걸왕(桀王)의 선궁(璇宮)⋅상랑(象廊)과 주왕(紂王)의 경궁(瓊宮)⋅녹대(鹿臺)와 초(楚)나라 영왕(靈王)의 장화대(章華台)와 진시황제의 아방궁(阿房宮)도 이보다 더하지 못할 것이니 그 재원이 어찌 백성에게서 거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아! 슬프도다. 그 누가 이를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윗사람이 자신의 덕을 닦고 아랫사람들을 가르쳐서 예의를 밝혀 백성들에게 하늘의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만든 연후에야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널리 생각건대 우리 동방은 신라 말부터 불법을 받들어 백성들이 사는 마을까지 그 탑묘(塔廟)가 즐비했습니다. 불씨(佛氏)의 설이 귀에 가득 차고 넘쳐 피부에 스며들고 골수(骨髓)에 사무쳐, 의리(義理)로서 깨우칠 수 없고 어떤 말로도 분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태조(太祖)
께서 처음 후삼국을 통일했을 때 깊이 그 쌓인 폐단을 경계하여 후대 임금과 신하들이 사사로이 원찰(願刹)을 세우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이에 대사(大師) 최응(崔凝)이 불법(佛法)을 없앨 것을 청하였지만 태조
께서는 “신라 말에 불씨(佛氏)의 설이 사람들에게 깊이 받아들여져 사람들마다 사생(死生)과 화복(禍福)이 모두 불씨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제 삼한(三韓)이 겨우 통일되어 인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였는데 만일 급히 불씨를 없애면 반드시 놀라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훈요를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신라가 불사를 많이 일으켜 이 때문에 망했음을 마땅히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하셨으니, 태조
께서 후세에 내리신 훈요는 그 뜻이 지극히 깊고 절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대 임금과 신하들은 성조(聖祖)께서 남기신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옛 관습에 따라 임금마다 구차하게 암자를 짓고 탑을 세웠으며 지금은 그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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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요순(堯舜) 삼대(三代)의 흥한 바를 본받으시면서 제(齊)⋅진(陳)⋅양(梁)⋅소(蕭)의 망한 까닭을 거울로 삼으셔야 할 것입니다. 위로는 성조(聖祖)께서 남긴 뜻을 잇고 아래로는 우리 유학자들의 평소 희망을 받아들여, 저 불자(佛者)들을 향리
로 돌려보내는 한편 이들을 병역과 부역에 충당하고 절을 집으로 만들어 호구(戶口)를 늘려야 할 것입니다. 그 책을 불살라 영원히 그 근본을 끊고 나라에서 절에 주었던 전토(田土)는 군자시(軍資寺)가 주관하게 하여 군량을 채우고, 소속된 노비는 도관(都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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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형부의 하위 기관으로 노비 문서 관리, 관련 송사(訟事) 판결을 담당함
이 맡게 하여 각 관사에 나눠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상(銅像)과 동기(銅器)는 군기시(軍器寺)에 보내어 갑옷과 무기를 수리하게 하고 쓰던 그릇들은 예빈시(禮賓寺)에 보내 각 관사와 관리들에게 나눠주면 됩니다. 이후 예의로써 가르치고 도덕으로써 기르면 몇 년 되지 않아 백성의 뜻이 정해지고 교화가 이루어져 창고가 차고 나라의 재정이 충족될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과 아비를 등지고 인륜을 파괴하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던 자들이 장차 오랫동안 물들었던 더러움을 버리고 타고난 양심을 일으켜 부자와 군신의 윤리를 알게 되고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베를 짜서 생활을 꾸리면서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그 즐거움을 누릴 테니, 훌륭한 다스림이 가져올 풍요로움은 삼대(三代)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나라와 당나라를 앞지르게 될 것입니다. 또 이제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인 김전(金琠)은 자질도 없고 무지하면서도 임금의 뜻에 아첨하고 명령에 순응하여 옳고 그름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아버지와 임금이 없는 종교를 일으키고 고금 성현의 도를 폐하려 합니다. 그는 태조
께서 개국하신 것은 모두 부처의 힘 덕분이라 여기고 부처를 배척하는 자를 태조
의 죄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태조
의 성스러운 덕과 높은 공덕은 하늘과 인심에 순응하여 요순(堯舜)과 같이 행하고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삼한(三韓)의 백성들은 그 위엄을 큰 우레와 같이 두려워하였고, 그 덕을 부모와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북위(北魏)와 같이 나라 안의 중[沙門]들을 모두 죽이고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처럼 불상을 녹여 돈을 만들더라도 저 승려들이 어찌 태조
께서 삼한(三韓)을 통합하는 공을 이루시지 못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태조'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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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대사성(兼大司成) 정도전(鄭道傳)
은 하늘과 사람의 성명(性命)의 연원을 발휘하여 공자⋅맹자⋅정자⋅주자의 도학(道學)을 앞장서 부르짖으며 불교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속이고 꾀어온 것을 물리치고 삼한(三韓)의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미혹을 깨뜨렸습니다.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사설(邪說)을 그치게 하였으며 하늘의 이치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였으니 우리 동방(東方)의 진정한 유학자는 이 한 사람뿐입니다. 이는 하늘이 전하께 중국의 고요(皐陶)와 이윤(伊尹)⋅부열(傅說)과 같은 훌륭한 신하의 도움을 주어 중흥의 때에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융성함을 일으키게 하려는 뜻입니다. 전하께서는 정도전
의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조종(祖宗)의 죄인으로 삼으시겠습니까, 김전이 부처를 숭봉하는 설(說)을 전하의 충신으로 삼으시겠습니까. 신 등은 역시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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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정도전
의 올바른 학문을 의심하고 김전의 사설(邪說)을 믿는다면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고 만세(萬世)에 비웃음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신들이 감히 말하는 까닭이니, 다스림의 근본이 인심을 바르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개 인심의 향함이 바르지 않으면 그 근본이 망하니 비록 일의 말단에 열심히 힘쓰더라도 모두 구차할 뿐입니다. 근원은 깨끗하지 않은데 흐름이 맑은 것은 있지 않으며 또한 뿌리가 굳건하지 않은데 가지가 무성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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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신들은 오직 이단(異端)을 물리치는 일만이 인심(人心)의 근본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 이렇게 상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틈틈이 특별히 이 점을 유념하시어 시행하시면 비단 오늘의 다행일 뿐만 아니라 길이 만세에 칭송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신들의 말을 거짓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시면 신들은 다시 전하를 위하여 치도(治道)의 만분의 일이라도 아뢰겠나이다.” 상소를 올리자 왕이 크게 노하였다.
『고려사』권120, 「열전」33 [제신] 김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