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고려 시대귀족 문화의 발달

새로운 문학 경향-최자의 삼도부

서도의 변생(辨生)이 북경의 담수(談叟)와 함께

강도(江都) 에 놀러 와서

한 정의대부(正議大夫)를 만났다.

대부가 말하되

두 도읍 이름을 들었으나

그 제도를 못 봤는데

이제 다행히 두 분을 만났으니

옛날에 궁금하던 마음이 트이도록

두 서울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오

변생이 이르되 그리하오리다.

서도가 처음 이룩될 때

동명(東明)이란 임금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이 땅을 돌보시어

여기에 거처를 정하셨네. ……(중략)……

거룩하다, 우리나라

전에 없던 높은 풍화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하늘의 도를 즐기어서

작은 나라로 큰 나라 섬겨

이로써 보전하니

만물에 재앙 없고

백성이 태평하네.

감탄만으로는 부족하여

그의 뜻을 거듭 살펴 이렇게 노래로 부르리.

멀리 요순 때부터

당송에 이르기까지

비록 내용과 형식의 연혁은 달랐으나

모두가 사치로 망하고 검소함으로 일어났네.

서쪽 버들은 음란함 때문에 뒤엎어졌고 【서도를 유경이라 부른다.】

북녘 소나무는 사치 때문에 떠돌게 되었네.

아아, 빛나는 강도는

오로지 덕의 터전

천명을 좇아 큰 나라 섬겨

풍속이 순박하고 빛네.

어즈버 천만 년에

태평한 가운데 위태로움을 잊지 않기를.

『동문선』권2 「부」 삼도부

西都辨生與北京談叟, 來遊江都, 遇一正議大夫. 大夫曰, 蒙聞二國之名, 未覩其制, 幸今邂逅, 二客請攄懷舊之情, 弘我以兩京. 辨生曰唯唯. 西都之創先也, 帝號東明, 降自九玄, 乃眷下土, 此維宅焉. ……(中略)……

洪惟本朝, 風化掩古, 畏天之威, 樂天之道, 以小事大, 于時保之, 物不疵癘, 元元皥皥. 歎之不足, 申其義而作歌曰, 邈自陶唐兮, 下至宋康, 雖文質沿革之不同兮, 靡不由奢儉而興亡. 西柳兮以淫而顚覆, 北松兮由侈以流移.【西都號柳京】 煌煌江都, 惟德之基, 順天事大, 風俗淳煕. 於萬斯年, 安不忘危.

『東文選』卷2 「賦」 三都賦

이 사료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한 후 최자(崔滋, 1188~1260)가 지은 「삼도부(三都賦)」 중 일부분이다. 삼도부란 서도(西都), 북경(北京), 강도(江都) 등을 말하는데, 변생(辨生)⋅담수(談叟)⋅정의대부(正議大夫) 등이 그 연원과 흥망성쇠, 가치 등을 논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강화도는 풍속이 순후하여 천만 년을 이을 곳이라 칭송하고 있다.

최자는 최씨 무인 정권기 중 대몽 전쟁을 위해 강화로 천도하여 항쟁하던 시기에 활동하였다. 그는 고려의 해동공자로 추앙 받던 문헌공 최충(崔冲, 984~1068)의 6세손이자 우복야 민(敏)의 아들로, 1212년(강종 1년) 문과 급제로 상주사록(尙州司錄)이 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출세하게 된 계기는 「우미인초가(虞美人草歌)」⋅「수정배시(水精盃詩)」가 당시 문병(文柄)을 잡고 있던 이규보(李奎報)에게 알려지면서였다. 이규보는 최이(崔怡)에게 자기의 후계자로 최자를 추천하였다. 이후 1258년 유경(柳璥, 1211~1289)⋅김준(金俊⋅金仁俊, ?~1268) 등이 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이면서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1259년(고종 46년) 1월 몽골군의 침입이 있자 항복과 항전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났다. 이때 그는 추밀원사 김보정(金寶鼎, ?~?)과 함께 현재 강도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으므로 항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로 보면 「삼도부」는 강화 천도 후 도성으로 자리를 잡은 뒤 몽골과의 강화 협상이 오간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래 ‘삼도부’라는 글제는 동진(東晉)의 좌사(左思)가 10년 동안 구상하여 촉도(蜀都)⋅오도(吳都)⋅위도(魏都)를 노래한 「삼도부(三都賦)」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유명 문인이던 황보밀(皇甫謐)과 장화(張華) 등이 그의 「삼도부」를 격찬하자, 낙양의 귀족들이 이를 서로 다투어 베껴 낙양의 종이 값이 일시에 폭등하기도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그런데 최자는 이와 달리 변생⋅담수⋅정의대부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노래를 전개하고 있다. 더구나 각각의 서울에 대해 논한 것을 보면, 먼저 변생은 서도(평양)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즉,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이 천강하여 도읍을 정한 일과 서도의 경치를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담수는 북경, 즉 고려의 이전 수도[舊都]인 개경에 건국한 역사와 풍물(風物), 그리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웠던 문화에 대해서 읊었다. 마지막으로는 정의대부가 강도의 화산(花山)을 중심으로 갑화관(岬華關)과 풍포관(楓浦館), 바다와 절벽이 갖춰진 금성탕지의 제왕의 도읍이라 칭송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노래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서도는 음란으로 망했고, 옛 수도 개경은 사치로 퇴락했으나, 강도(강화도)는 천명을 좇아 사대하여 풍속이 순후한 덕의 터전으로 태평성대의 지극한 정치가 펼쳐지는 곳이라 하였다.

결국 이 사료는 우리 민족사의 역사를 소재로 하면서도 중국 문학의 좋은 점을 취하는 한편, 최자 자신의 특유한 호활한 문체로 서경개경, 그리고 강화도를 부(賦)로써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즉, 문학에 있어 중국의 것을 사례로 쓰는 용사(用事)와 실제 고려의 역사, 문화, 풍속 등을 읊은 신의(新意)가 적절히 반영된 문학적 독창성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13세기 초 중반 고려의 문학 발달 정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최자비평연구」,『고려시대의 언어와 문학』,김주한,형설출판사,1975.
「최자 문학론 시고」,『어문연구』10-3(통권 35호),이화형,한국어문교육연구회,1982.
「최자의 신의와 용사에 대한 재고」,『어문연구』32-3(통권 123호),이화형,한국어문교육연구회,2004.
「최자의 비평」,『동아문화』9,차주환,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1970.
저서
『고려조 한문학론』, 고경식, 민속원, 2004.
『한국문학통사 1⋅2』,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5.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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