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해동(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나시어서, 그 행동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의 하신 일들과 부절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
제2장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솟아나므로, 내가 되어서 바다에 이르니.
제3장
옛날 주(周)나라 대왕이 빈곡((豳谷)에 사시어서 제업을 여시니. 1)
1)
주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12세손인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는 빈곡(豳谷)에서 덕을 쌓아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는 주나라의 건국이 무왕 때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 기초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우리 시조가 경흥(慶興)에 사시어서 왕업을 여시니. 2)
2)
목조(穆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본래 전주 사람으로 고향을 떠나 삼척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동북면의 의주(함경도 덕원부)로 옮겼는데, 전주로부터 그를 따라온 사람들 및 삼척과 덕원 등지에서 합류한 사람들로 인하여 휘하에는 큰 이주민 집단이 형성되었다. 고려 정부는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의주병마를 주었다. 그러나 원나라가 쌍성(雙城) 이북 지방을 개원로라는 행정구역에 속하게 하고 원나라 장수인 산길대왕(散吉大王)을 통하여 그에게 항복을 요구하였으므로 이안사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몇 차례의 이주를 거쳐 그는 1254년 개원로 남경(南京)의 알동(斡東, 함경도 경흥)으로 옮긴 후 원나라 황제로부터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임명되었다.
제4장
적인(狄人)들이 모여 사는 가운데에 가시어, 적인들이 침범하거늘 기산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이시니. 3)
3)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빈곡에 살 때 적인(狄人)들의 침략이 잦았는데, 이들에게 재물을 주어 달랬으나 다시 침입하여 땅과 백성을 요구하였다. 사람들이 노하여 모두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고공단보는 백성들이 자신을 위해 싸우면 헛되이 목숨을 희생할 뿐이라는 논리를 들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빈곡을 떠나 기산(岐山)으로 갔다.
야인
들이 모여 사는 가운데에 가시어, 야인
들이 침범하거늘 덕원(德源)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이시니. 4)
'야인' 관련자료
'야인' 관련자료
4)
익조(翼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증조부 이행리(李行里)는 이안사의 뒤를 이어 알동(斡東, 함경도 경흥)에서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있으면서 인심을 얻었다. 원나라의 통치력이 약화되고 원나라 장수 산길대왕(散吉大王)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북방의 여진족
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두만강 인근의 적도(赤島)로 피신하였다가 그를 따르는 경흥 사람들과 함께 덕원으로 옮겼다.
'여진족' 관련자료
제5장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두 강가에 있는 움을 후세 성인이 말씀하시니, 임금 노릇하기의 조심스럽고 힘듦이 저러하시니. 5)
5)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으로 옮기는 중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인근에서 움을 파고 살았다는 내용이다.
붉은 섬 안에 있는 움을 이제도록 보나니, 임금되기의 어려움이 이러하시니. 6)
6)
익조(翼祖), 곧 이성계의 증조부 이행리(李行里)가 두만강 근처 적도(赤島, 붉은 섬)으로 피신하였을 때 움을 파고 살았다는 내용으로, 왕업(王業)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6장
상(商)나라의 덕망이 쇠퇴하매, 주(周)나라가 장차 천하를 맡으실 것이므로, 서수(西水) 강가가 저자 같으니. 7)
7)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으로 옮기는 중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인근에서 움을 파고 살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와서 강변이 마치 저자(시장)과 같이 북적였다는 내용이다.
고려의 운명이 쇠퇴하매, 조선이 (장차) 나라를 맡으실 것이므로, 동해(東海) 해변이 저자와 같으니. 8)
8)
목조(穆祖), 곧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에 살 때 아끼는 기생을 둘러싸고 전지주사(知全州事) 및 산성방호별감(山城防護別監)과 사이가 나빠져서 동해, 곧 강원도 삼척현으로 옮겼는데 그 때 가솔과 함께 전주의 백성 170여 호가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후에 강원도에 안렴사(按廉使)로 부임한 사람이 전주에서 기생의 일로 다투었던 산성방호별감이었므로 이안사는 다시 함경도로 옮겼는데 그 때 170여 호의 백성이 다시 그를 따라갔다.
제7장
붉은 새가 글을 물어 침실의 지겟문에 앉으니, 이것은 그 성자(聖子)가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늘이 내리신 복을 보일 것이니. 9)
9)
붉은 새가 단서(丹書), 곧 붉은 종이 한 장을 입에 물고 와서 문왕의 침실 창문턱에 놓고 날아갔다. 이는 주나라가 천명을 받았다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성자(聖子)란 거룩한 왕의 아들, 곧 문왕의 아들 무왕을 말하는 것으로 혁명이 일어날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뱀이 까치를 물어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것은 성손(聖孫, 태조
)이 장차 일어나려 하매 그 아름다운 징조가 먼저 나타난 것이니. 10)
'태조' 관련자료
10)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조부 이춘(李椿)은 이행리(李行里)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를 물려받았다. 어느날 이춘이 군영에 있을 때 두 마리의 까치가 군영 안의 큰 나무에 앉았는데, 그는 멀리서 화살을 쏘아 한 살로 두 마리를 모두 떨어뜨렸다. 이때 큰 뱀이 나타나 까치를 물고 다른 나무에 얹어놓고 먹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성손은 이춘의 손자, 곧 태조 이성계를 말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것이며 그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제8장
태자를 하늘이 가리시어, 그 형의 뜻이 이루어지시매, (하늘이) 성손(聖孫)을 내신 것입니다. 11)
11)
태자는 고공단보의 막내아들 계력(季歷), 그 형은 계력의 맏형인 태백(太伯)이며, 성손은 문왕을 뜻한다. 계력은 아들 창(昌)을 낳았는데 그때 상서로운 길조가 있었으므로, 태왕 고공단보는 세 아들 중 막내아들 계력을 왕으로 세워 다시 손자인 창(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장자 태백은 태왕의 의도를 알고 동생 우중(虞仲)과 함께 형만으로 달아나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이로써 왕위에 오른 창은 문왕(文王)이 되었으며, 그 아들인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켜 주나라가 건국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다.
세자를 하늘이 가리시어, 황제의 명이 나리시매, (하늘이) 성자(聖子)를 내신 것입니다. 12)
12)
세자는 환조로 추존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황제는 원나라의 황제이며, 성자는 태조
이성계를 뜻한다. 목조 이안사가 받은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의 벼슬은 이행리(李行里, 익조), 이춘(李椿, 도조)에게 이어졌다. 도조 사후 그 장자인 이자흥(李子興)이 뒤를 이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이자흥의 아들 이교주(李咬住)는 이춘의 첫째 부인 박씨의 소생으로 나이가 어렸는데, 이를 이용하여 이춘의 둘째 부인인 조씨(趙氏)와 그 두 아들이 직위를 빼앗았다. 박씨와 이교주, 이자춘이 원나라 조정에 사정을 알리자, 황제는 이춘의 차자인 이자춘(李子春, 환조)이 임시로 관직을 맡게 하였다. 교주가 성장하자 이자춘은 관직을 돌려주려고 하였으나 교주가 사양하여 그대로 관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자춘은 이후 원나라의 정책에 반대하여 1355년(공민왕 4) 공민왕을 찾아 신하가 되어 동북면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공격하여 친원 기씨(奇氏) 세력을 몰아냈다. 공민왕은 그에게 동북면을 안정시키는 책임을 주고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의 관직을 내렸다. 이로써 그는 동북면의 유력자로서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이성계가 그 뒤를 이어받아 조선 건국의 세력 기반이 마련되었다.
'태조' 관련자료
「용비어천가」
- 주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12세손인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는 빈곡(豳谷)에서 덕을 쌓아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는 주나라의 건국이 무왕 때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 기초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 목조(穆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본래 전주 사람으로 고향을 떠나 삼척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동북면의 의주(함경도 덕원부)로 옮겼는데, 전주로부터 그를 따라온 사람들 및 삼척과 덕원 등지에서 합류한 사람들로 인하여 휘하에는 큰 이주민 집단이 형성되었다. 고려 정부는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의주병마를 주었다. 그러나 원나라가 쌍성(雙城) 이북 지방을 개원로라는 행정구역에 속하게 하고 원나라 장수인 산길대왕(散吉大王)을 통하여 그에게 항복을 요구하였으므로 이안사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몇 차례의 이주를 거쳐 그는 1254년 개원로 남경(南京)의 알동(斡東, 함경도 경흥)으로 옮긴 후 원나라 황제로부터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임명되었다.
-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빈곡에 살 때 적인(狄人)들의 침략이 잦았는데, 이들에게 재물을 주어 달랬으나 다시 침입하여 땅과 백성을 요구하였다. 사람들이 노하여 모두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고공단보는 백성들이 자신을 위해 싸우면 헛되이 목숨을 희생할 뿐이라는 논리를 들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빈곡을 떠나 기산(岐山)으로 갔다.
- 익조(翼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증조부 이행리(李行里)는 이안사의 뒤를 이어 알동(斡東, 함경도 경흥)에서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있으면서 인심을 얻었다. 원나라의 통치력이 약화되고 원나라 장수 산길대왕(散吉大王)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북방의 여진족
'여진족' 관련자료
-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으로 옮기는 중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인근에서 움을 파고 살았다는 내용이다.
- 익조(翼祖), 곧 이성계의 증조부 이행리(李行里)가 두만강 근처 적도(赤島, 붉은 섬)으로 피신하였을 때 움을 파고 살았다는 내용으로, 왕업(王業)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으로 옮기는 중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인근에서 움을 파고 살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와서 강변이 마치 저자(시장)과 같이 북적였다는 내용이다.
- 목조(穆祖), 곧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에 살 때 아끼는 기생을 둘러싸고 전지주사(知全州事) 및 산성방호별감(山城防護別監)과 사이가 나빠져서 동해, 곧 강원도 삼척현으로 옮겼는데 그 때 가솔과 함께 전주의 백성 170여 호가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후에 강원도에 안렴사(按廉使)로 부임한 사람이 전주에서 기생의 일로 다투었던 산성방호별감이었므로 이안사는 다시 함경도로 옮겼는데 그 때 170여 호의 백성이 다시 그를 따라갔다.
- 붉은 새가 단서(丹書), 곧 붉은 종이 한 장을 입에 물고 와서 문왕의 침실 창문턱에 놓고 날아갔다. 이는 주나라가 천명을 받았다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성자(聖子)란 거룩한 왕의 아들, 곧 문왕의 아들 무왕을 말하는 것으로 혁명이 일어날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조부 이춘(李椿)은 이행리(李行里)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 수천호(首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를 물려받았다. 어느날 이춘이 군영에 있을 때 두 마리의 까치가 군영 안의 큰 나무에 앉았는데, 그는 멀리서 화살을 쏘아 한 살로 두 마리를 모두 떨어뜨렸다. 이때 큰 뱀이 나타나 까치를 물고 다른 나무에 얹어놓고 먹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성손은 이춘의 손자, 곧 태조 이성계를 말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것이며 그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 태자는 고공단보의 막내아들 계력(季歷), 그 형은 계력의 맏형인 태백(太伯)이며, 성손은 문왕을 뜻한다. 계력은 아들 창(昌)을 낳았는데 그때 상서로운 길조가 있었으므로, 태왕 고공단보는 세 아들 중 막내아들 계력을 왕으로 세워 다시 손자인 창(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장자 태백은 태왕의 의도를 알고 동생 우중(虞仲)과 함께 형만으로 달아나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이로써 왕위에 오른 창은 문왕(文王)이 되었으며, 그 아들인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켜 주나라가 건국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다.
- 세자는 환조로 추존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황제는 원나라의 황제이며, 성자는 태조
'태조'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