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帝王)이 정책을 베풀어 모든 사무가 완성되게 한 것을 상고해 보면, 반드시 역일(曆日)을 밝혀 백성에게 먼저 일할 때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때를 가르쳐 주는 요결은 실로 하늘과 기후를 관찰하는 데 있으므로, 이 기형(璣衡)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기계
과 의표(儀表)
모범, 본보기
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고험(考驗)
신중히 생각하여 조사함
의 방법이 지극히 정밀하여 하나의 기물이나 하나의 형상만으로는 바른 길을 취할 수 없으므로 우리 주상 전하께서 담당관에게 명하여 모든 의상(儀象)
천문 관측 기기
을 제정하였다. 이를테면 대소의 간의(簡儀)
1)
⋅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일구(仰釜日晷)⋅일성정시(日星定時)⋅규표(圭表)⋅금루(禁漏) 등의 기구가 모두 지극히 정세하고 공교하여, 예전의 것보다 월등히 나으나 오히려 제도가 미진함을 염려하시고, 또 이상의 모든 기구가 다 후원(後苑)에 마련되어 수시로 관찰하기 어려우므로, 드디어 천추전(千秋殿) 서쪽 뜰에 한 칸의 작은 누각을 짓고, 종이를 발라서 산을 만들되 높이를 7자쯤 하여 그 누각 가운데 두고, 안에다 옥루기륜(玉漏機輪)을 설치하여 물로 부딪치게 하며, 금으로 해를 만들되 크기가 탄환만하게 하고, 오색구름이 그 해를 둘러서 산허리를 지나가되 하루 한 바퀴를 돌아, 낮에는 산 너머에 보이고 밤에는 산속으로 사라지며, 비스듬한 형세로 천행(天行)에 준하여 원근과 출입의 구분을 분명히 하여, 각각 절기(節氣)에 따라 하늘의 해와 더불어 합하게 하였다.
'간의(簡儀)' 관련자료
1)
간의(簡儀)
: 혼천의에서 적도 좌표계와 지평 좌표계를 분리해 관측하기에 편하도록 개조한 관측기구이다.
'간의(簡儀)' 관련자료
해 아래는 옥녀(玉女) 네 사람이 있어, 손에 금방울을 들고 구름을 타고 사방으로 갈라서서, 인(寅)⋅묘(卯)⋅진(辰)시의 초정(初正)이 되면 동에 있는 자가 매양 방울을 흔들고, 사(巳)⋅오(午)⋅미(未)시의 초정이 되면 남쪽에 있는 자가 방울을 흔들며, 서와 북에서도 다 그렇게 하고, 아래 네 신(神)이 있어 각기 자기 맡은 방위에 서서 다 산을 대면하고, 인시(寅時)
이 다시 동으로 향하며, 차례로 향하는 방위는 앞에 보인 바와 같고, 다른 것도 다 이와 같다.
오전 3시 30분에서 4시 30분
가 되면 청룡(靑龍)이 북으로 향하며, 묘시(卯時)
오전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가 되면 동으로 향하고, 진시(辰時)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가 되면 남으로 향하며, 사시(巳時)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가 되면 다시 서로 향하고, 주작(朱雀)2)
2)
주작(朱雀) :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남쪽을 지키는 일곱 별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산의 남쪽 기슭에 높은 대(臺)가 있고, 사신(司辰) 한 사람이 붉은 공복(公服)을 갖추어 산을 등지고 서 있으며 무사(武士) 세 사람이 있어 다 철갑 투구를 갖추되, 하나는 종을 치는 방망이를 들고 서쪽을 향하여 동쪽에 서고, 하나는 북채를 들고 동쪽을 향하여 서쪽에 서되 북쪽에 가까이 하고, 하나는 징채를 들고 역시 동쪽을 향하여 서쪽에 서되 남쪽에 가까이 하여, 매양 때가 되면 사신(司辰)이 종인(鍾人)을 돌아보며, 종인도 역시 사신을 돌아보며 이에 종을 치고, 경(更)마다 고인(鼓人)은 북을 치고, 점(點)마다 정인(鉦人)이 징을 치는데, 그 서로 돌아보는 것은 똑같으며, 경(更)⋅점(點)에 북과 징을 치는 번수는 모두 일정한 법과 같이 한다.
또 그 아래 땅바닥에 12신(神)이 각기 자기 맡은 방위에 엎드려 있으면, 12신장의 뒤에 각기 구멍이 있어 항상 닫혔으되, 자시(子時)가 되면 쥐를 맡은 신장의 뒤에 있는 구멍이 저절로 열려 옥녀(玉女)가 시패(時牌)를 들고 나오고 쥐는 앞에서 일어나며, 자시가 다 지나면 옥녀가 도로 들어가고 그 구멍도 닫히고 쥐도 도로 엎드리며, 축시가 되면 소를 맡은 신장의 뒤에 있는 구멍이 저절로 열리어, 옥녀가 역시 나오고 소도 역시 일어나며 12시마다 시간이 되면 다 그렇다.
오위(午位)의 앞에 또 대가 있고, 대 위에 비스듬한 그릇이 있으며, 그릇의 북쪽에서 관인(官人)이 금병(金甁)을 들고 물을 쏟는데, 누수(漏水)의 남은 물을 이용하여 언제나 끊어지지 않게 하여 비어 있으면 비스듬하고, 중간쯤 물이 올라오면 반듯하며, 가득 차면 엎어지는 것이다. 옛 법과 같이 또 산의 동쪽에는 봄 석 달의 경치를 만들고, 남쪽에는 여름 석 달의 경치를 만들며, 가을과 겨울도 역시 그렇게 만들고, 빈풍도(豳風圖)에 의거하여 나무를 새겨 인물⋅금수⋅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에 맞춰서 안배해 놓으니, 7월편의 전경(全景)이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다. 누각의 이름을 흠경(欽敬)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요전(堯典)의 ‘하늘의 뜻을 공경히 받들어 백성에게 일할 때를 가르쳐 준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무릇 당우(唐虞) 시대로부터 측후(測候)의 기구가 역대마다 각각 제작이 있고, 당송(唐宋) 이래로 그 법이 차츰 갖추어져, 이를테면 당의 황도(黃道)⋅유의(游儀)⋅수운(水運)⋅혼천(渾天)과, 송의 부루(浮漏)⋅표영(表影)⋅혼천의상(渾天儀象), 원조(元朝)의 앙의(仰儀)⋅간의(簡儀)
까지도 다 정묘하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대개는 각기 한 가지 궤도만 이루었을 뿐이요, 겸비하지는 못했으며, 운용의 기구(機具)도 대부분 인위(人爲)를 빌렸던 것인데, 지금은 천일(天日)의 도수(度數)와 구루(晷漏)의 각수(刻數)와 4신(神)⋅12신⋅고인(鼓人)⋅종인(鍾人)⋅사신(司辰)⋅옥녀(玉女) 등의 온갖 기관이 차례로 함께 움직이되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절로 치고 저절로 운행하여, 마치 귀신이 시키는 것과 같아서 보는 자를 놀라게 하나 그 이유를 해득할 수 없으며, 위로 천행(天行)과 더불어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제작 규모가 절묘하다고 이를 만하다. 또 누수의 남은 물을 이용하여 비스듬한 그릇에 쏟아 넣어 천도(天道)의 차고 비는 이치를 관찰하며, 산의 사방에 빈풍(豳風)을 진열하여 민생이 수고롭게 농사짓는 것을 보여 주니, 이것은 전대에 없던 아름다운 행사이다.
'간의(簡儀)' 관련자료
그래서 항상 좌우에 접근하여 매양 성려(聖慮)를 깨우치며, 또한 밤낮으로 근심하고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마저 깃들었으니, 어찌 다만 성탕(成湯)의 목욕하는 반(盤)이나, 주무왕(周武王)의 지게문에 새긴 명(銘)에 비할 따름이랴. 그 하늘을 본받고 때를 순히 하며 공경하는 뜻이 극진함과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는 인후한 덕은 마땅히 주나라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짝하여 무궁토록 전할 것이다. 각(閣)이 낙성되자 신에게 명하여 그 사실을 기록하게 하므로, 삼가 대강을 적어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올린다.
『동문선
'동문선'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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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簡儀)
'간의(簡儀)' 관련자료
- 주작(朱雀) :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남쪽을 지키는 일곱 별을 통틀어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