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조선 전기성리학의 발달

이황의 성학십도 저술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는 차자를 올리다.

판중추부사 신 이황(李滉, 1501~1570)은 삼가 두 번 절하고 아뢰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도(道)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河圖)1)와 낙서(洛書)2)가 출현하면서부터 성인이 이를 근거로 괘(卦)와 효(爻)를 만들었으니, 도가 비로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도 크니 어디서부터 착수할 것이며, 옛 교훈이 천만 가지이니 어디로부터 들어가겠습니까? 성학(聖學)에는 커다란 단서[大端]가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그림[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향해서 설명[(설)說]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토대를 보여 주니, 이것 또한 후대 현인이 부득이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한 마음[一心]은 만 가지 조짐이 연유하는 곳이요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이니, 온갖 욕심이 서로 다투고 온갖 사특함이 차례로 마음을 꿰뚫습니다. 한 가지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뒤따르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성군(聖君)과 현명한 왕[명왕(明王)]은 이를 근심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삼가고 노력하며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겼습니다.

사부(師傅)의 관직을 세우고 간쟁(諫諍)하는 직책을 만들어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3), 수레를 타면 여분(旅賁)4)의 규범이 있고, 위저(位宁)5)에서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책상에 기대고 있을 때는 훈송(訓誦)의 간함이 있고, 침전에 들어서는 설어(暬御)6)의 잠언(箴言)이 있으며, 일을 처리할 때는 고사(瞽史)7)의 인도함이 있고, 한가롭게 거처할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으며, 소반과 밥그릇과 책상과 지팡이, 칼과 검, 출입문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이 가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은 어디나 명(銘)과 계(戒)를 새겨 놓았으니 마음을 지키고 몸을 방비하는 법도가 이와 같이 지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업이 날로 넓어져서 털끝만 한 허물도 없게 되고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후세의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고 왕위에 올랐으니, 책임이 지극히 중하고 큼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다스리는 수단은 한 가지도 이러한 엄격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공(王公)과 많은 백성이 추대하는 자리에서 성인인 것처럼 하고 오만하게 스스로 방자히 하다가 결국에는 난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 임금을 인도하고 도에 합당하도록 하는 이는 진실로 그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장구령(張九齡)8)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9)이 「무일도(無逸圖)」를 바친 것과 이덕유(李德裕)10)가 「단의육잠(丹扆六箴)」을 바친 것과 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올린 것11) 등은 임금을 아끼고 나라를 근심하는 깊은 충의와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절한 뜻이니, 임금이 깊이 생각하고 공경하여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매우 비루함에도 여러 임금께 요행히 은혜를 입었고 병으로 시골에 들어앉아 초목과 함께 썩기로 기약하였는데, 뜻밖에 헛된 이름[허명(虛名)]이 잘못 알려져서 조정에 불려 와 경연(經筵)의 중한 자리에 앉게 되니, 두렵고 황송하지만 사양하여 피할 길이 없습니다. 기왕에 피하지 못하고 이 자리를 더럽힌 이상, 이는 성학(聖學)을 권도(勸導)하고 군덕(君德)을 보양하여 요순시대처럼 융성한 데 이르기를 기약해야 하니, 비록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건대, 신은 학술이 거칠고 말주변이 서투른데, 여기에다 몹쓸 병이 잇따라 시강(侍講)도 드물게 하다가 겨울철 이후로는 완전히 폐하기에 이르렀으니, 신의 죄는 만 번이라도 죽어야 마땅한지라 근심되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신이 가만히 엎드려 생각해 보건대, 처음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말들이 이미 전하의 뜻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하지 못하였고, 그 후 전하를 뵙고 여러 번 아뢴 말씀이 또 전하의 생각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미력한 신의 정성으로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聖學)을 밝히고 심법(心法)을 얻어서 도(圖)를 만들고 설(說)을 만들어 남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토대를 보여 준 것이 오늘날 세상에 행하고 있어서 해와 별같이 밝습니다. 이에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께 진술하여 옛 제왕(帝王)의 공송(工誦)12)과 기명(器銘)13)의 남긴 뜻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지난날 성현들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빌려서 앞으로 유익하도록 하려는 바람입니다.

이에 삼가 그 가운데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 것을 골라 일곱 개를 얻었습니다. 그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임은(程林隱)14)의 그림에다 신이 만든 두 개의 작은 그림을 덧붙인 것입니다. 세 가지는 그림은 비록 신이 만들었으나 그 글과 뜻의 조목(條目)과 규획(規畫)은 한결같이 옛 현인이 만든 것을 따른 것이요, 신이 창작하여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을 합하여 「성학십도」라 하고, 각 그림 아래에 또한 외람되게 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삼가 잘 써서 올립니다.

다만 신은 추위에 떨리고 병에 걸린 가운데 혼자 힘으로 이것을 작성하자니, 눈은 어둡고 손이 떨려서 글씨는 단정하지 못한 데다 줄을 맞추어 글자를 고르게 하지 못해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에 전하께서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이것을 경연관에게 내리어 상세하게 고치고 논의하며 잘못된 것을 고치고 보완하게 하고서 다시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밀하게 베껴 정본(正本)을 만들게 하고, 해당 관서에 보내어 병풍 한 벌을 만들어서 평소 조용히 거처하시는 곳에 펼쳐 놓으시고, 혹은 별도로 조그마하게 한 권으로 꾸며 수첩을 만들어서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시고, 기거동작(起居動作)하실 때에 살피고 경계로 삼으신다면, 구구하게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저의 뜻에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그 뜻에 있어서 미진한 것은 신이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찍이 듣건대, 맹자의 말에 “마음의 본분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하여 또 이르기를, “생각하면 명철해지고, 명철해지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은 방촌(方寸)15)에 갖추어져 있으면서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영(靈)하며, 이치는 그림과 글 속에 나타나 있으면서 지극히 뚜렷하고 지극히 진실하니, 지극히 허령한 마음을 가지고 지극히 뚜렷하고 진실된 이치를 구한다면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생각하면 얻고 명철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 어찌 오늘날에 징험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허령하다 해도 만약 주재(主宰)함이 없으면 앞에 일을 당해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치가 뚜렷하고 진실해도 만약 비추어 보지 않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또한 그림 때문에 생각하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또한 공자께서는, “배우고도 생각하지 아니하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하다16)” 하였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 일을 익혀서 참되게 실천함을 이릅니다. 대개 성현의 학문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혼미해져서 얻는 것이 없는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것에 통달해야 하고,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져서 불안한 까닭에 반드시 배워서 그 실질을 이행하여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 발전시켜 주고 서로 이익이 되게 합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의 명철함으로 이 이치를 깊게 헤아리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시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또한 이와 같이 된다. ”17)고 하시고, 분연히 힘을 내셔서 배우고 생각하는 이 두 가지 공부에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경(敬)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動)과 정(靜)을 관통하며, 안과 밖을 합일시키고 드러난 것과 은미(隱微)한 것을 한결같이 하는 도(道)입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반드시 가지런하고 정중하며 고요하고 한결같은 가운데 이 마음을 두어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동안에 이 이치를 궁리하여 보이거나 들리기 전에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하게 하고 더욱 공경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은미한 곳과 혼자 있는 곳에서는 성찰하는 것을 더욱 더 정밀하게 하여 어느 한 가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할 적에는 마땅히 이 그림에만 마음을 오로지 하여 다른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어떤 한 가지 일을 익힐 때는 마땅히 이 일에 오로지 하여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여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이 없이 하고 매일매일 계속하며, 혹 새벽에 정신이 맑을 때에 그 의미를 풀어 보고 음미하며, 혹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응대할 때 몸소 경험하고 북돋우면 처음에는 혹 불편하고 모순되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고,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유쾌하지 못한 병통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곧 옛사람이 말한 장차 크게 나아가려는 징조요, 또한 좋은 소식이 올 단서입니다. 절대로 이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지 말고 더욱 자신을 가지고 힘써서 참된 것을 많이 쌓고 힘쓰기를 오래 하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잦아들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융회관통(融會貫通)하게 되며, 익히는 것과 일이 서로 익숙하여져서 점차 평탄한 길을 편안하게 행하게 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맹자가 논한, ‘깊이 이해하고 자득하는’ 경지이며, ‘생기가 나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경험입니다. 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서 자신의 재주를 다하면, 안자(顔子)의 인(仁)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나라 다스리는 사업이 바로 그 가운데 있게 되고, 증자(曾子)의 충(忠)과 서(恕)로 일관하여 도(道)를 전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함과 공경함이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중화(中和)⋅위육(位育)18)의 공(功)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덕행(德行)이 떳떳한 인륜(人倫)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여 천(天)과 인(人)이 하나가 되는 신묘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그 그림을 만들고 설명을 만들어 겨우 열 폭의 종이 위에 서술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익혀서 평소에 조용히 계실 때에 공부하시면 도를 깨달고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바로잡고 나아가 다스리는 근원이 다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정신을 모으고 뜻을 더하여 반복하기를 시종 계속하시어 경미한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싫증나고 번거롭다 하여 그만두지 않으신다면, 종묘사직으로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며 신하와 백성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신은 야인(野人)들이 미나리와 햇볕[芹曝]을 임금께 바치고자 하는 정성19)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줄 알면서도 이에 바칩니다. 황송하여 숨을 멈추고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퇴계선생문집』권7, 차, 진성학십도차

1)『하도(河圖)』 : 복희씨(伏羲氏) 때 하수(河水), 즉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으로, 복희씨가 그것을 보고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한다.
2)『낙서(洛書)』 :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글로서, 우임금은 그것을 보고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3)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 : 네 가지 모두 천자를 전후좌우에서 보필하는 관직의 이름이다. 한나라 때 복생이 『상서』를 전수하고 주석을 붙여 펴낸 『상서대전(尙書大傳)』(금문상서)에서는 “옛날에 천자는 반드시 전후좌우 네 호위가 있어서, 앞에 서는 이를 의(疑), 뒤에 서는 이를 승(丞), 왼쪽에 서는 이를 보(輔), 오른 쪽에 서는 이를 필(弼)이라 하였다(古者 天子必有四鄰, 前曰疑, 後曰丞, 左曰輔, 右曰弼)”고 되어 있다.
4)여분(旅賁) : 고대 관직 이름으로 천자와 제후가 출입할 때 창을 잡고 호위하는 직책.
5)위저(位宁) : 문(門)과 병풍 사이에 있으면서 조회를 보는 곳.
6)설어(暬御) :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近臣]이다.
7)고사(瞽史) : 주(周) 나라 관직 이름으로 고(瞽)는 악사(樂師)로서 음악을 담당하고, 사(史)는 태사(太史)와 소사(小史)로서 음양, 천문, 예악을 담당하였다.
8)장구령(張九齡)과 『금감록(金鑑錄)』 : 장구령(673~740)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재상이다. 저서에는 『곡강선생문집(曲江先生文集)』이 있다. 당시 황제의 생일에는 신하들이 거울을 바쳐서 축하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장구령은 『춘추금감록(千秋金鑑錄)』이란 책을 지어 올렸다. 이 책은 역대 정치의 잘잘못을 기록한 것으로 이것을 보고 황제가 정치의 거울로 삼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9)송경(宋璟)과 「무일도(無逸圖)」 : 송경(663~737)은 당 현종 때 재상으로 그는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위해 지은 이 내용을 그림(도)으로 만들어 현종에게 바쳤다. 그 내용은 안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0)이덕유(李德裕)와 「단의육잠(丹扆六箴)」 : 이덕유(787~849)는 당나라 재상으로, 「단의육잠(丹扆六箴)」을 지어 경종(敬宗)에게 바쳤다. 단의(丹扆)는 천자가 제후를 대할 때 뒤에 세우는 붉은 병풍이며, 육잠(六箴))은 「소의잠(宵衣箴)」⋅「정복잠(正服箴)」⋅「파헌잠(罷獻箴)」⋅「납회잠(納誨箴)」⋅「변사잠(辨邪箴)」⋅「방미잠(防微箴)」이다.
11)진덕수(眞德秀)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올린 것 : 진덕수(1178~1235)는 남송(南宋) 대의 주자학자이다. 호는 서산(西山), 시호는 문충(文忠). 저서로 『대학연의(大學衍義))』,『독서기(讀書記)』,『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가운데 제1편인 「칠월(七月)」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빈풍(豳」은 주(周)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시대, 곧 후직(后稷) 기(棄)의 3대손인 공유(公劉)로부터 12대손 고공단보(古公亶父, 문왕의 조부)에 이르기까지 주나라의 시조들이 빈(豳) 땅에 살 때 유행했던 노래들을 말하며, 그 중 「칠월」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짓는 풍경을 읊은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하나로 생각된다. 노래 가사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는 「빈풍도」라고도 하며 임금이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수고로움을 알고 바른 정치를 베풀도록 왕을 경계시키는 목적으로 그려졌는데, 남송 때 진덕수, 원대(元代)에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등이 「빈풍칠월도」를 올렸다. 이러한 관습은 조선 초기에 전래되어 여러 차례 「빈풍칠월도」가 제작되었으며, 18세기 이방운(李昉運)의 작품이 그 예이다. 가사가 8연으로 되어 있으므로 「빈풍칠월도」도 역시 보통 8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작가에 따라 채택하는 장면이나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12)공송(工誦) : 악공(樂工)들이 시편을 외우면서 임금에게 들려주어 경계로 삼도록 하는 것.
13)기명(器銘) : 임금의 일용 기물에 명문(名文)을 새겨 임금으로 하여금 깨우치고 경계하도록 하는 것.
14)정임은(程林隱) : 정심복(程復心)으로 원(元) 인종(仁宗) 대에 활약한 학자로 자는 자현(子見)이고 임은(林隱)은 호이다. 저서에 『사서장도(四書章圖)』 3권이 있다. 성학십도(聖學十圖)에는 정임은의 저술로 심통성정도 상도(上圖) 외에 서명도, 심학도 2도와 심통성정도설, 심학도설 2설이 있다. 그의 심하도설은 『심경부주』의 첫머리에도 실려 있다.
15)방촌(方寸) : 사방 한 치란 뜻으로 옛사람은 마음의 작용이 가슴 밑 방촌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16)『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이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17)『맹자(孟子)』「등문공(滕文公)」상에 나오며, 공자의 제자인 안연이 한 말이다(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
18)『중용(中庸)』의 첫 장에, “중화를 이르면 천자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육성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다.
19)야인(野人)들이 미나리와 햇볕[芹曝]을 임금께 바치고자 하는 정성 : 『열자양주(列子楊朱)』 편에 나오는 말로, 옛날에 들에 사는 백성이 미나리를 먹다가 맛이 좋으므로 그것을 임금에게 바치려 하였고, 추운 겨울에 따뜻한 햇볕을 쬐다가 그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고자 했다고 한다.

進聖學十圖箚

判中樞府事臣李滉, 謹再拜上言. 臣竊伏以, 道無形象, 天無言語. 自河洛圖書之出, 聖人因作卦爻, 而道始見於天下矣. 然而道之浩浩, 何處下手, 古訓千萬, 何所從入. 聖學有大端, 心法有至要. 揭之以爲圖, 指之以爲說, 以示人入道之門, 積德之基, 斯亦後賢之所不得已而作也. 而況人主一心, 萬幾所由, 百責所萃, 衆欲互攻, 群邪迭鑽. 一有怠忽, 而放縱繼之, 則如山之崩, 如海之蕩, 誰得而禦之. 古之聖帝明王, 有憂於此. 是以, 兢兢業業, 小心畏愼, 日復一日, 猶以爲未也. 立師傅之官, 列諫諍之職, 前有疑後有丞, 左有輔右有弼, 在輿有旅賁之規, 位宁有官師之典, 倚几有訓誦之諫, 居寢有暬御之箴, 臨事有瞽史之導, 宴居有工師之誦, 以至盤盂⋅几杖⋅刀劍⋅戶牖, 凡目之所寓, 身之所處, 無不有銘有戒, 其所以維持此心, 防範此身者, 若是其至矣. 故德日新而業日廣, 無纖過而有鴻號矣. 後世人主, 受天命而履天位, 其責任之至重至大爲如何. 而所以自治之具, 一無如此之嚴也. 則其憪然自聖, 傲然自肆於王公之上, 億兆之戴, 終歸於壞亂殄滅, 亦何足怪哉. 故于斯之時, 爲人臣而欲引君當道者, 固無所不用其心焉. 若張九齡之進金鑑錄, 宋璟之陳無逸圖, 李德裕之獻丹扆六箴, 眞德秀之上豳風七月圖之類, 其愛君憂國拳拳之深衷, 陳善納誨懇懇之至意, 人君可不深念而敬服也哉. 臣以至愚極陋, 辜恩累朝, 病廢田里, 期與草木同腐, 不意虛名誤達, 召置講筵之重, 震越惶恐, 辭避無路. 旣不免爲此叨冒, 則是勸導聖學, 輔養宸德, 以期致於堯舜之隆, 雖欲辭之以不敢, 何可得也. 顧臣學術荒疎, 辭辯拙訥, 加以賤疾連仍, 入侍稀罕, 冬寒以來, 乃至全廢, 臣罪當萬死, 憂慄罔措. 臣竊伏惟念, 當初上章論學之言, 旣不足以感發天意, 及後登對屢進之說, 又不能以沃贊睿猷, 微臣悃愊, 不知所出. 惟有昔之賢人君子, 明聖學而得心法, 有圖有說, 以示人入道之門, 積德之基者, 見行於世, 昭如日星. 玆敢欲乞以是進陳於左右, 以代古昔帝王工誦器銘之遺意. 庶幾借重於旣往, 而有益於將來. 於是, 謹就其中, 揀取其尤著者, 得七焉. 其心統性情, 則因程圖, 而附以臣作二小圖. 其三者, 圖雖臣作, 而其文其旨, 條目規畫, 一述於前賢, 而非臣創造. 合之爲聖學十圖, 每圖下, 輒亦僭附謬說, 謹以繕寫投進焉. 第緣臣㥘寒纏疾之中, 自力爲此, 眼昏手顫, 書未端楷, 排行均字, 竝無准式. 如蒙勿卻, 乞以此本, 下諸經筵官, 詳加訂論, 改補差舛, 更令善寫者精寫正本, 付之該司, 作爲御屛一坐, 展之淸燕之所, 或別作小樣一件粧貼爲帖, 常置几案上, 冀得於俯仰顧眄之頃, 皆有所觀省警戒焉, 則區區願忠之志, 幸莫大焉. 而其義意有所未盡者, 臣請得而申言之. 竊嘗聞之, 孟子之言曰, 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也. 箕子之爲武王陳洪範也, 又曰, 思曰睿, 睿作聖. 夫心具於方寸, 而至虛至靈, 理著於圖書, 而至顯至實, 以至虛至靈之心, 求至顯至實之理, 宜無有不得者. 則思而得之, 睿而作聖, 豈不足以有徵於今日乎. 然而心之虛靈, 若無以主宰, 則事當前而不思, 理之顯實, 若無以照管, 則目常接而不見. 此又因圖致思之不可忽焉者然也. 抑又聞之, 孔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學也者, 習其事而眞踐履之謂也. 蓋聖門之學, 不求諸心, 則昏而無得, 故必思以通其微, 不習其事, 則危而不安, 故必學以踐其實. 思與學, 交相發而互相益也. 伏願聖明深燭此理, 先須立志, 以爲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奮然用力於二者之功. 而持敬者, 又所以兼思學, 貫動靜, 合內外, 一顯微之道也. 其爲之之法, 必也存此心於齋莊靜一之中, 窮此理於學問思辨之際, 不睹不聞之前, 所以戒懼者愈嚴愈敬. 隱微幽獨之處, 所以省察者愈精愈密, 就一圖而思, 則當專一於此圖, 而如不知有他圖, 就一事而習, 則當專一於此事, 而如不知有他事. 朝焉夕焉而有常, 今日明日而相續, 或紬繹玩味於夜氣淸明之時, 或體驗栽培於日用酬酢之際, 其初猶未免或有掣肘矛盾之患, 亦時有極辛苦不快活之病, 此乃古人所謂將大進之幾, 亦爲好消息之端. 切毋因此而自沮, 尤當自信而益勵, 至於積眞之多, 用力之久, 自然心與理相涵, 而不覺其融會貫通, 習與事相熟, 而漸見其坦泰安履. 始者各專其一, 今乃克恊于一. 此實孟子所論深造自得之境, 生則烏可已之驗. 又從而俛焉孶孶, 旣竭吾才, 則顔子之心不違仁, 而爲邦之業在其中, 曾子之忠恕一貫, 而傳道之責在其身. 畏敬不離乎日用, 而中和位育之功可致, 德行不外乎彝倫, 而天人合一之妙斯得矣. 是其爲圖爲說, 僅取敍陳於十幅紙上. 思之習之, 只做工程於平日燕處, 而凝道作聖之要, 端本出治之源, 悉具於是. 惟在天鑑留神加意, 反復終始, 勿以輕微而忽之, 厭煩而置之, 則宗社幸甚, 臣民幸甚. 臣不勝野人芹暴之誠, 冒瀆宸嚴, 輒以爲獻. 惶懼屛息, 取進止.

『退溪先生文集』卷7, 箚, 進聖學十圖箚

이 사료는 이황(李滉, 1501~1570)선조(宣祖, 재위 1567~1608)에게 올린 『성학십도』의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지어서 올리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이 68세 때,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선조가 성군(聖君)이 될 수 있도록 그 요령을 도표로 그려 올린 책으로, 원제목은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이다. 이는 ‘임금님께 성인이 되는 학문의 10가지 도해를 올리는 글로 그림을 첨부한다’라는 뜻이다. 이황은 성인이 되는 유학의 핵심을 10개의 그림과 그것에 대한 해설로 설명하였다.

『성학십도』는 서론인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를 시작으로 제1도인 태극도(太極圖), 제2도인 서명도(西銘圖), 제3도인 소학도(小學圖), 제4도인 대학도(大學圖), 제5도인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제6도인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제7도인 인설도(仁設圖), 제8도인 심학도(心學圖), 제9도인 경재잠도(經齋箴圖), 제10도인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황은 당시까지 논의되고 연구되었던 성리학의 우주론⋅심성론⋅수양론 등을 압축⋅정리하였다. 여기에서 보이는 이황 철학의 핵심은 경(敬)이고, 위의 책은 그러한 주장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공경의 마음이자 고마워하는 마음이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자 무언가 도와주려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실천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한 공부를 중시해야 한다. 즉, 그는 경을 알고 몸소 행하는 데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었다.

결국 이황이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올린 이유는, 임금의 마음은 나라의 모든 정사가 나오는 곳이며, 모든 책임이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임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태해지고 방종해진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임금에게 올려 옛 왕들이 음악으로 듣고 그릇에 새겨서 반성했던 것처럼 그림과 설명으로 대신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중국 청나라 말기 량치차오[梁啓超]가 극찬한 적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1655년에 책이 인쇄되어 유학자들의 기본 학습서로 각광을 받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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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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