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개벽하면서 문(文)이 생겼다. 해와 달과 별이 위에 엄숙하게 벌려 있어 하늘의 문이 되고, 산과 바다와 개천이 아래에 흐르고 솟아 땅의 문이 되었다. 성인이 괘를 그리고 글자를 만들어 사람들의 문이 점점 베풀어져 도가 순화되고 통일되어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것은 문의 본바탕이다.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은 문의 쓰임이다.
이러므로 시대에 따라 각기 문이 있고, 문에는 각기 체(體)가 있는 것이니, 전모(典謨)를 읽으면 요(堯)와 순(舜)의 문을 알 수 있고, 훈(訓)과 고(誥), 서(誓), 명(命)을 읽으면 삼대의 문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진에서 한으로, 한에서 위⋅진으로, 위에서 수⋅당으로, 수⋅당에서 송⋅원으로 내려오면서 그 시대를 논하여 그 문(文)을 상고하면 『문선(文選)』⋅『문수(文粹)』⋅『문감(文鑑)』⋅『문류(文類)』등 여러 가지 책으로써, 대개 후세 문운(文運)의 높고 낮음을 논할 수 있다. 근래에 문을 논한 사람이, 송나라의 문은 당나라의 그것이 아니고, 당나라의 문은 한나라의 그것이 아니고, 한나라의 문은 춘추전국 시대의 그것이 아니고, 춘추전국의 문은 하⋅은⋅주와 요, 순 시대의 그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말 식견이 있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단군이 나라를 세우셨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일이다. 기자(箕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밝히고 팔조법(八條法)을 펼쳐서 그 당시에는 반드시 문화적인 치적이 가히 숭상할 만한 것이 있었겠지만 당시의 문헌들이 남아 있지 않다. 삼국 시대에는 전쟁이 날로 일어났으니 어찌 글짓기에 종사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명(辭命)
에 합격한 사람이 50여 명이나 되었는데 최치원(崔致遠,857~?)이 지은 황소(黃巢, ?~884)에게 보낸 격문[檄]
이라고 이름을 내리셨습니다.
외교문서를 짓는 일
을 잘하여 수나라의 백만 군대에 대항하였다. 신라에서는 젊은이들을 당나라에 들여보내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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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황소격문
(討黃巢檄文). 중국 당나라 말기 농민 반란의 수장인 황소(黃巢, ?~884)를 토벌하기 위해 지은 글
은 그 위명이 천하에 진동하였다. ……(중략)……우리 조선은 여러 임금이 대를 이어 백 년이나 인재를 길렀으므로 인물이 그 동안 나와 좋은 정기를 한데 모아 글을 짓게 되었는데 생동적이고 뛰어난 글이 또한 옛날보다 못하지 않을 정도이다. 이것은 곧 우리나라의 문이 송나라와 원나라의 글이 아니며, 또한 한나라⋅당나라의 글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글인 때문이다. ……(중략)……우리는 상감(上監)의 분부를 우러러 받아서 삼국 시대부터 뽑기 시작하여 당대의 사부(辭賦)⋅시문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글을 수집하여서, 글의 이치가 순정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취하고 부문으로 나누고 종류대로 모아 130권으로 정리하여 올린 바,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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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은 엎드려 생각하건대 『주역』에 이르기를, “인문(人文)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 하였습니다. 대개 천지에는 자연의 문이 있으므로 성인이 천지의 문을 본받았으며, 시대의 운수에는 성쇠(盛衰)의 다름이 있으므로 문장이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육경 뒤에는 오직 한⋅당⋅송⋅원과 명나라의 문이 가장 옛것에 가까우니, 그것은 그 당시에 천지의 기운이 왕성하였으므로 큰 음향(音響)이 절로 완전하여 다른 시대처럼 남북 분열의 폐단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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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의 문은 삼국 시대에서 비롯하여 고려에서 성하였고, 우리 조선에 와서 극(極)에 이르렀으니, 천지 기운의 성쇠에 관계된 것을 역시 상고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문이란 것은 도(道)를 통하는 기제이므로, 육경(六經)의 문은 문장을 지으려 뜻을 둔 것이 아닌데도 자연히 도에 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세의 문은 먼저 문장을 지으려고 뜻을 두기 때문에 때로는 도에 순수하지 못하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공부하는 자들이 진실로 도에 마음을 두고 문장을 짓는 데만 힘쓰지 아니하며, 경에 근본하고 제자(諸子)에 애써 따르려 하지 않으며, 단아하고 바른 것을 숭상하고 허황된 것을 멀리하여 고명하고 정대(正大)하게 되면, 성인이 지은 글을 우익(羽翼)함에 있어 반드시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문장에만 뜻을 두고 도에 근본하지 아니하며, 육경의 법칙에 어긋나고 제자(諸子)의 범위에 빠져 버린다면, 문이 도를 통하는 문이 아니니, 오늘날 전하께서 계발하여 주신 거룩한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성스럽고 밝으신 이가 위에 계시며 천지의 기운이 성하니, 인물이 시기에 응하여 태어나서 문으로써 세상에 울릴 자가 반드시 잇달아 일어날 것이니, 어찌 사람이 없으리라 걱정되겠습니까. 신이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마땅히 붓을 잡고 기다리겠습니다.
성화 14년(1478, 성종
9) 무술 2월 하완에 순성명량좌리공신 숭정대부 달성군 겸 예문관 대제학지성균관
사 동지경연사오위
도양부도양관 신 서거정
은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며 삼가 서(序)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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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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