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조선 전기문학과 예술의 융성

금오신화

이생(李生)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또 최랑의 집에도 가 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이경(二更)쯤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 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는데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 보았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 뿐이지,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꽃 앞에서 한 번 웃고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정이 백 년을 넘쳤었지요.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백 년을 함께하자고 하였는데,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봉래산 12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삼세(三世)의 향이 향기로우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옛날의 맹세를 저 버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그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 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이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여인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두었지요”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잠자리를 같이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또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그 뒤에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되었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 주었지요.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그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 번 내려온 뒤에

깨어진 종(鐘)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이제 한 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하늘과 인간 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황천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내 버려져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옛사람 말씀에,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 지내라’ 하셨는데,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당신도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 년 뒤에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여인이 말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제가 굳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면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 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에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금오신화』, 이생규장전

生竄于荒野, 僅保餘軀, 聞賊已滅, 遂尋父母舊居. 其家已爲兵火所焚. 又至女家, 廊廡荒凉, 鼠喞鳥喧. 悲不自勝, 登于小樓, 收淚長噓. 奄至日暮, 塊然獨坐, 竚思前遊, 宛如一夢.

將及二更, 月色微吐, 光照屋梁, 漸聞廊下, 有跫然之音. 自遠而近, 至則崔氏也. 生雖知已死, 愛之甚篤, 不復疑訝. 遽問曰 避於何處, 全其軀命. 女執生手, 慟哭一聲, 乃叙情曰 妾本良族, 幼承庭訓, 工刺繡裁縫之事, 學詩書仁義之方. 但識閨門之治, 豈解境外之修. 然而一窺紅杏之牆, 自獻碧海之珠. 花前一笑, 恩結平生, 帳裏重遘, 情愈百年. 言至於此, 悲慚曷勝. 將謂偕老而歸居, 豈意橫折而顚溝. 終不委身於豺虎, 自取磔肉於泥沙. 固天性之自然, 匪人情之可忍. 却恨一別於窮厓, 竟作分飛之匹鳥. 家亡親沒, 傷殢魄之無依. 義重命輕, 幸殘軀之免辱. 誰憐寸寸之灰心. 徒結斷斷之腐腸. 骨骸暴野, 肝膽塗地, 細料昔時之歡娛, 適爲當日之愁寃. 今則鄒律已吹於幽谷, 倩女再返於陽間. 蓬萊一紀之約綢繆, 聚窟三生之香芬郁, 重契闊於此時, 期不負乎前盟. 如或不忘, 終以爲好, 李郞其許之乎. 生喜且感曰 固所願也. 相與款曲抒情. 言及家産被寇掠有無, 女曰 一分不失, 埋於某山某谷也. 又問 兩家父母骸骨安在 女曰 暴棄某處. 叙情罷, 同寢極歡如昔. 明日, 與生俱往尋瘞處, 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 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 貿金賣財, 各合葬於五冠山麓. 封樹祭獻, 皆盡其禮. 其後, 生亦不求仕官, 與崔氏居焉. 幹僕之逃生者, 亦自來赴. 生自是以後, 懶於人事, 雖親戚賓客賀吊, 杜門不出. 常與崔氏, 或酬或和, 琴瑟偕樂.

荏苒數年, 一夕, 女謂生曰 三遇佳期, 世事蹉跎, 歡娛不厭, 哀別遽至. 遂嗚咽, 生驚問曰 何故至此 女曰 冥數不可躱也, 天帝以妾與生, 緣分未斷, 又無罪障, 假以幻體, 與生暫割愁腸. 非久留人世, 以惑陽人. 命婢兒進酒, 歌玉樓春一闋, 以侑生, 歌曰

干戈滿目交揮處, 玉碎花飛鴛失侶.

殘骸狼藉竟誰埋, 血汚遊魂無與語.

高唐一下巫山女, 破鏡重分心慘楚.

從玆一別兩茫茫, 天上人間音信阻.

每歌一聲, 飮泣數下, 殆不成腔. 生亦悽惋不已曰 寧與娘子, 同入九泉, 豈可無聊獨保殘生. 向者, 喪亂之後, 親戚僮僕, 各相亂離, 亡親骸骨 狼藉原野, 儻非娘子, 誰能奠埋. 古人云: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盡在娘子. 天性之純孝, 人情之篤厚也. 感激無已, 自媿可勝. 願娘子, 淹留人世, 百年之後, 同作塵土. 女曰 李郞之壽, 剩有餘紀, 妾已載鬼籙, 不能久視. 若固眷戀人間, 違犯條令, 非唯罪我, 兼亦累及於君. 但妾之遺骸, 散於某處, 倘若垂恩, 勿暴風日. 相視泣下數行云 李郞珍重. 言訖漸滅, 了無踪迹.

生拾骨, 附葬于親墓傍. 旣葬, 生亦以追念之故, 得病數月而卒. 聞者莫不傷歎, 而慕其義焉.

『金鰲新話』, 李生窺牆傳

이 사료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이다. 김시습은 본관이 강릉으로,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등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김시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기구한 일생을 보냈는데, 그의 사상과 문학은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하였다.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얻은 생활 체험은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의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은 불의한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과 맞닿으면서 중민(重民)에 기초한 왕도 정치(王道政治)의 이상을 구가하는 사상으로 확립되었다.

한편, 그가 당시의 사상적 혼란을 올곧게 하기 위한 노력은 유⋅불⋅도 삼교(三敎)를 원융적(圓融的) 입장에서 일치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불교적 미신은 배척하면서도 조동종(漕洞宗)의 인식론에 입각하여, 불교의 종지(宗旨)는 사랑(자비)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밝혀 탐욕을 없애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또 비합리적인 도교의 신선술(神仙術)을 부정하면서도 기(氣)를 다스림으로써 천명(天命)을 따르게 하는 데는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즉, 음양(陰陽)의 운동성을 중시하는 주기론적(主氣論的)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 흡수하여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시켰는데, 이런 철학적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현실 생활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문 단편소설집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31세에서 37세까지 경주 금오산에 머물면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활달한 시기에 인생을 해석하고 우주의 신비를 추구했던 지적 노력의 결과물로 파악되기도 한다. 즉, 현실에 대한 불신이 이상을 추구하는 시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금오산에 머물며 창작한 것이다. 김시습은 이 작품을 지은 뒤 곧바로 세상에 발표하지 않고 석실(石室)에 감춰 두고,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아는 자가 있으리라” 하였다. 이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금오신화』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약탈하여 일본에서 두 차례나 판각되었다.

『금오신화』 속 작품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같은 작품이 창작된 데에는 문학사적 전통의 영향이 컸다.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의 원초 형태인 설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져 전승, 변모되면서 소설이 발생할 수 있는 문학사적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요인은 사상사의 새로운 전개를 들 수 있다. 조선 왕조의 새로운 지도 이념에 부합하는 주리론이 통치를 합리화하는 명분론으로 인식되자 이에 대항하여 만물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인식하려는 주기론적 철학이 나타났는데, 여기서 개인과 사회의 대립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소설 발생의 직접적 요인으로 새로운 철학 사상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 밖에 명나라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 등 외래적인 요인도 작용하였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의 내면적인 고민의 소산이다. 곧 유⋅불⋅선을 탐구하던 30대 지식인의 사상과 세계관의 갈등이 뒤섞인 작품으로, 입신양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러한 갈등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말이다. 따라서 『금오신화』는 그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문학사적으로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이자 전기소설(傳奇小說)이다. 『금오신화』에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5편이 남아 있다. 이중 대표적인 작품이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다. 이 두 작품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비극적이어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들 이야기의 특징은 인간과 귀신의 만남,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다. 「이생규장전」은 한글로 풀면 ‘이생이 물래 담 안을 본 이야기’ 정도가 된다.

「이생규장전」의 대강의 줄거리를 보면, 개성에 사는 이생이 선죽교 근처를 지나다가 담 안의 미인, 즉 최 소저라는 젊고 아리따운 여성을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의 글을 써서 던진다. 그 뒤 그들은 결혼하지만 홍건적의 난에 여인은 죽는다. 그 후 죽은 여인이 이생을 찾아와 즐겁게 지낸다. 가슴 시린 사랑은 귀신이 된 최씨와의 해후에서 비롯된다. 여인은 3년이 지난 후 자기 해골을 거두어 장사 지내 줄 것을 부탁하고 사라진다. 이생도 아내의 장사를 지낸 후 세상을 떠난다.

「이생규장전」의 전반부에는 살아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어 애정 소설 가운데서도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에 해당한다. 또 배경을 우리나라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금오신화』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주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힘겹게 사랑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여기서는 ‘효’라는 전통적인 도덕규범과 대치하기도 한다. 후반부는 그 같은 강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파괴되고 좌절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생규장전」의 최씨만이 아니라 「만복사저포기」의 처자나 「취유부벽정기」의 기씨녀도 모두 전쟁터에서 정절을 지키려다 죽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교육받은 가치에 따라 기꺼이 죽었다 하더라도 꽃다운 나이에 죽은 게 원통하여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었다.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여성들이 모두 열녀인 것은 당시 정절 이데올로기가 남성의 성은 문제 삼지 않고 단지 여성의 성만을 규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결말은 대부분 비극적인 것으로 해석되지만 도교적 초월로 보기도 한다. 현실적, 일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현실을 깊이 있게 주시하면서 현실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해 준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적, 사실주의적 경향을 띠며,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적 가치와 소설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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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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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소설사의 형성과정과 그 저변』, 정환국, 소명출판, 2005.
『전등신화와 금오신화의 구성 비교 연구』, 한영환, 개문사, 1975.
편저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정병헌 외, 돌베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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