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장(醫學校長) 지석영이 상소
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문명의 근본은 진실로 교육에 있고 교육하는 도구는 백성이 쉽게 알고 쉽게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 도구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국문(國文)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문은 우리 세종대왕(世宗大王)
께서 나라에 예전부터 문자가 없었던 것을 걱정하여 신묘한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상형(象形)하고 절음(切音)하여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원칙이 간결하면서도 쓰임이 무궁하여 형용하기 어려운 언어와 드러내지 못하는 뜻도 모두 말로 담아 낼 수 있는 데다 배우기가 매우 쉬워서 비록 아녀자나 어린아이같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며칠만 공부하면 모두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황실의 보배로운 문자이며 가르치는 도구 가운데 지남(指南)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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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살펴보건대, 어제정음(御製正音) 28자는 초(初), 중(中), 종(終) 3성을 병합하여 글자를 이루고 또 고저(高低)의 정식(正式)을 갖추고 있어 조금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교육이 해이해져 참된 이치를 잃어버리고 또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소홀히 버려두었습니다. 이에 민간에서 어린이를 가르칠 때에 글자가 이루어지고 난 뒤의 음만을 가지고 어지럽게 읽었으므로 점차 잘못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현재 사용하는 언문(諺文) 14행(行) 154자(字) 가운데 첩음(疊音)이 36개나 되고 잃은 음이 또한 36개나 됩니다. 또 고저의 정식이 전부 실전(失傳)되어 이 때문에 눈[雪]과 눈[目]은 의미를 분간하기 어렵고 동(東)과 동(動)은 음이 같아 말과 일을 기록하는 데에 구애되는 점이 많으니 신이 이를 늘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각 나라가 모두 자국(自國)의 문자를 자국에 사용하니, 자주(自主)의 의리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에 타국의 각종 문학(文學)을 모두 자국의 문자로 번역 출판하여 자국의 백성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주(五洲)의 모든 백성이 문자를 알고 시국에 통달하여 무럭무럭 날마다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통상(通商) 후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물어물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에만 매달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문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감히 외람함을 피하지 않고 함부로 미천한 말을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교육을 담당한 신하로 하여금 우선 국문을 참고하여 정리하는 한편 편리한 방법을 사용하여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경전 가운데 성인들의 가르침 몇 편을 번역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가르침으로써 먼저 심지(心志)를 정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최근의 실용적인 신학문(新學問)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번역하여 민간에 널리 배포한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충성하고 애국하는 일과, 경제(經濟)와 관련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것들을 알게 되어 점차 부강해지는 것을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교육이 진보하는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또한 황조(皇朝)를 계승하는 아름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하였다. 답변에 “상소
를 보고 잘 알았다. 진술한 말은 참으로 백성을 교육하는 요점이다. 상소
내용을 학부(學部)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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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고종 42년 6월 6일
서언
내가 국어 문법을 30년 동안 연구하면서 원고를 모두 8차례 바꾼 끝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감히 완성된 것이라고 말하진 못하겠으며 사람들이 한 번 살펴보길 바랄 뿐이다. 또 이에 관해 세상에 주의를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책을 집필하는 중 제4차 원고가 유출되어 애서가(愛書家)가 이를 인쇄하고 재판(再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원고는 오류가 많아 독자의 의혹을 살 우려가 있기에 이를 걱정하여 한 마디를 해 둔다.
(융희 3년(1909) 맹춘(孟春) 가송관
천민거사(天民居士) 지(識)
읽을지어다. 우리 대한 문법을 읽을지어다. 우리 대한의 동포여. 우리 민족이 단군의 영명한 후예로 고유한 언어가 있으며 특유한 문자가 있어 그 사상과 의지를 목소리로 발표하고 기록으로 전하여, 언문일치의 정신이 4000여 년을 이어져 역사의 진면목을 보호하고 문화의 정신을 증거한다.
그러나 언어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글자는 모양이 단순하고 용법이 쉬워서 배우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르치며 연구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며, 어조가 변화하면서 음운에 차이가 생기고 글자가 변하여 부호의 오류가 보이는데도 이를 교정하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용법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을뿐더러 문법이라는 말조차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중 수백 년 동안 한문을 숭배하는 풍습이 전국을 마비시켰고, 중국에서 빌려 온 글자들이 국민의 올바른 언어를 지식인의 책상과 필자의 붓끝에서 몰아내 버렸다. 이것이 아편의 독에 취하는 것처럼 더욱 심해져서 인명(人名), 지명(地名), 국호(國號)까지도 한자로 고쳐서 쓰게 되었다. 이 말이 의심스러우면 옛 역사를 살펴보라. 을지(乙支)라는 성은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는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갈파지(葛坡知)와 가리개(加里介)라는 이름이나, 졸본(卒本)이나 서라벌(徐羅伐)이라는 이름은 그 뜻이 무엇인가? 상상하건대 이는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의 말소리를 그 한자로 흉내 낸 것이 아닌가?
한자는 모양을 딴 것이다. 우리의 음을 딴 글자와 그 성질이 다르기에 도저히 함께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글이 말을 담지 못하고 말이 글에 맞지 않아 판연히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청춘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밤낮으로 공부해도 피상적인 이해나마 얻는 자가 100명 중 1, 2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나라 안에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배우지 못해 낫 놓고 기역자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뿐더러, 문법의 학문이 아예 없기 때문에 명망 있는 학자라도 그 뜻을 생각하지 못한다.
세월이 오래 지나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나라 사람들의 이목에 점점 더 익숙해져서 말과 글자가 서로 섞이는 일이 발생했으며, 자연스럽게 서로 동화하여 우리 국어의 일부를 이뤘다. 이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사어(死語)가 영어, 프랑스어 등의 활용자(活用字)로 변화되어 온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순한문을 쓴 문장을 얼핏 보면 우리 국문이 아니지만 그 의미의 해석은 반드시 우리 국어에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한자는 사용하지만 한문은 사용하지 않으며, 우리의 일개 보조물이자 부속품이 되기에 그치고 있다. 한자를 읽는 법은 소리를 따라 읽든지 뜻을 따라 읽든지 우리의 문법에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글자를 우리가 쓰며, 우리의 말을 우리가 쓰니 이는 곧 자연스러운 하늘의 뜻이다. ‘문법이 있어야만 그 법을 알 수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차가 바퀴 없이 가고 배가 키 없이 갈 수 있는가? 이 때문에 우리들이 수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이 책을 쓴 것이다. 감히 신묘한 이치와 심오한 의미를 하나 남김없이 드러냈다고 할 수는 없다. 옛사람을 본받아 이렇게 책을 쓰는 것이 앉은뱅이가 한단의 걸음을 배우려고 하는 추태이지만 비틀거리며 걷더라도 결국 서울에는 갈 것이다. 연구에 오류가 많아 독자들의 조소를 면치 못하겠지만 많은 이가 협력하여 수정한다면 반드시 완성된 상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그 만족스럽지 못함을 스스로 위로한다.
읽을지어다. 우리 동포여. 세계 만국 중에 그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있으면서 문법이 없는 국민은 없으니, 읽을지어다. 이 문법을.
유길준, 『대한문전』, 동문관,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