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근대근대 교육의 보급

육영 공원 설립

내무부에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학과를 설치하는 절목을 참작하여 만들어서 알려왔다.

【1. 학교를 설립하고 ‘육영공원(育英公院)’이라 부른다. 내무부 수문사 당상(內務府修文司堂上)이 관할하며 따로 주사(主事)를 정해 해당 당상의 명령에 따라 일처리를 진행하게 한다. 당상은 하루건너 사진(仕進)하며 주사는 매일 출근하게 한다.】

【2. 외국인으로 성품이 선량하고 재간 있으며 총명한 사람 3명을 초빙하여 ‘교사(敎師)’라고 부를 것이며 가르치는 일을 전적으로 맡도록 한다. 그리고 외국의 말과 글을 이미 배워 잘 아는 사람을 따로 선발하여 교사가 명령하는 대로 적당하게 학도(學徒)를 가르치는 것을 도와주는 자를 ‘교습(敎習)’이라고 부른다. 또 각종 과정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연습해서 본 학업을 넓힌다.】

【3. 원(院)은 좌원(左院)과 우원(右院)을 설립하고 각각 학생을 채워서 매일 공부한다.】

【4. 별도로 과거 급제 출신의 7품 이하 관료로서 나이가 젊고 원문(原文)에 밝은 문벌 있는 집안의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10명을 한정해 좌원에 넣어 공부하게 한다. 한문이나 경서(經書)와 사서(史書) 같은 것은 본래 계속해야 하며 그만둘 수 없다. 또 서양어도 부지런히 공부하며 중단함이 없어야 한다. 여러 과목에 각각 노력하게 하여 혹여나 각각 재능과 지식에 따라 벼슬에 임명되어 직무를 수행할 때 지장 없이 왕래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설사 품계가 올랐다 하더라도 졸업하기 전이면 공부를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지 말 것이며, 평생 쓸 방도를 힘써 기약하고 매일 묘시(卯時)에 출근하였다가 신시(申詩)에 퇴근하게 하되 공부하는 시간은 모두 우원의 규정과 같게 한다.】

【5. 재주가 있고 똑똑한 나이 15세부터 20세까지의 사람 20명을 선발하여 우원에 넣어 공부하게 한다.】

【6. 땔나무⋅물⋅기름⋅등불 등은 적당히 마련하되 매달 6000냥씩을 호조와 선혜청에서 절반씩 나누어 배정하여 그 수요를 공급할 것이다. ……(중략)……】

【7. 공부할 때는 전심전력하여 공부하게 할 것이며, 산만하게 떠들거나 시간을 틈타 잡된 놀이를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부모가 앓거나 선친의 제사와 실지로 자신이 병이 든 것 이 외에, 어떤 일을 핑계대어 다른 곳으로 나가거나 편한 대로 위반하는 경우에는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고치지 않는 사람은 주사 또는 교습이나 당상에게 사유를 갖추어 보고하고, 당상은 교사에게 즉시 통지하여 내쫓도록 한다.】

【8.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는 언제나 공원에 있게 하며 학습을 제대로 못했을 때는 다른 기예를 구하게 한다.】

【9. 기예와 근면성을 상고하여 월과(月課)⋅계고(季考)⋅세시(歲時)⋅대고(大考)로 나누어 평가하되, 월과와 계고는 매달 마지막에 진행하고 세시는 12월마다 진행하며 대고는 3년마다 거행하되, 과업의 성적이 좋은가 나쁜가를 점검하고 참작해서 고무 격려하게 한다.】

【10. 월과와 계고는 해당 관청의 당상과 교사가 주관하여 과장(科場)을 감독하고, 세시는 내무부 독판(內務府督辦)과 해당 관청의 당상과 교사가 주관하여 과장(科場)을 감독하며, 대고는 총리대신과 내무독판, 해당 관청의 당상과 교사가 과장(科場)을 감독한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골라서 보고하고 벼슬을 준다.】

【11. 월과와 계고 시험을 볼 때는 종이⋅붓⋅먹으로, 세시는 책 같은 것으로 상을 준다.】

【12. 매번 방성일(房星日)⋅허성일(虛星日)⋅묘성일(昴星日)에는 하루 전 오후부터 당일까지 휴가를 준다. 또 명절(정월 보름 전과 한식, 추석 전후)에 각각 1일씩 휴가를 준다. 또 성절(聖節)인 2월 8일, 7월 25일, 9월 25일, 12월 6일에는 휴가를 주어 경사를 맞이한 뜻을 보일 것이며, 별도로 서양력의 휴일, 즉 서력(西曆) 1월 1일, 2월 22일, 7월 4일, 11월 20일에도 휴가를 준다. 또 섣달인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와 무더운 더위 때인 초복부터 말복까지는 방학(放學)을 한다.】

【13. 매일 학습하는 차례는 첫째는 책읽기, 둘째는 습자, 셋째는 글자 쓰는 법 배우기, 넷째는 셈 배우기, 다섯째는 셈법 익힌 것을 연습하기, 여섯째는 지리, 일곱째는 문법 배우기이다. 기초를 마친 학도는 다음과 같은 과목을 공부한다. 첫째는 대산법(大算法), 둘째는 각국의 언어, 셋째는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제반 학습법, 넷째는 의학⋅농리(農理)⋅지리⋅천문⋅기기(機器) 등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 다섯째는 각국 역사, 여섯째는 정치 및 각국 조약법과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사를 쓰는 전술, 그리고 금수(禽獸)와 초목(草木)으로 한다.】

고종실록』권23, 23년 8월 1일(신유)

內務府以育英公院設學節目, 參酌書入啓.

【一, 建置學舍曰育英公院. 內務府修文司堂上句管事務, 另定主事, 依該堂上指令, 辦理施措. 堂上間一日仕進, 主事課日仕進.】

【一, 延致外國姿性醇良才知通敏者三員曰敎師, 專掌敎訓. 另選曉解外國言語, 文字之已經學習者, 依敎師指敎, 隨宜助諭. 學徒曰敎習, 亦於各項課程, 身親鍊習, 以廣本業.】

【一, 院設左右, 各充學員, 課日肄習.】

【一, 另揀科第出身參下年少之原文通暢, 門地才俊者, 限十員, 充左院學習. 如漢文, 經史, 原始終不已, 亦勤課西語, 無或間斷. 推諸科程, 分途功力, 各隨才識, 或値除王供仕之時, 無礙往來. 且雖陞資, 其卒業前, 則不許廢課, 務期平生需用之方. 每日卯進, 申退, 課習時刻一如右院規式. 一, 揀選才質聰慧年十五至二十餘者, 限二十人, 充右院肄習.】

【一, 薪水膏火之節, 酌量磨鍊, 每朔六千兩式, 自戶, 惠廳分半畫下, 以爲院內供給, 而各項簿牒支應等節, 每於朔終入下 ……(中略)……】

【一, 學習之時, 專心聽業, 均不準汗漫喧譯, 偸暇雜戲. 且親瘠先忌及實病外, 假託出他, 占便圖間犯者, 從輕重施罰之, 而不悛者, 主事, 敎習, 具告堂上堂上, 知照敎師, 亟令黜退.】

【一, 學徒卒業以前, 常令在院學習, 不準營求他技.】

【一, 考藝勤慢, 分有月課, 季考, 歲試, 大考, 而月課, 季考, 每於月終, 歲試每於臘底, 大考每於三年擧行, 考其課業之進退, 酌量鼓勵.】

【一, 月課, 季考, 該司堂上與敎師, 句管監場; 歲試內務督辦及該司堂上, 敎師, 句管監場, 大考則總理大臣, 內務督辦與該司堂上, 敎師監場, 考取擇尤, 奏明授職.】

【一, 月課, 季考時, 以紙筆墨歲試則以書冊之類施賞.】

【一, 每値房虛昻星日, 則自前一日下午, 以至當日, 放暇. 又於名節正月望前及寒食秋夕前後各一日, 放暇. 又値聖節, 二月八日, 七月二十五日, 九月二十五日, 十二月初六日, 放暇示慶, 另依西法暇日, 卽西曆一月一日, 二月二十二日, 七月四日, 十一月二十日, 放休. 又値臘底, 自十二月二十五日, 至三十日, 及盛署, 自初伏至未伏, 放學.】

【一, 每日學習次第, 一讀書, 二習字, 三學解字法, 四算學, 五寫所習算法, 六地理, 七學文法. 初學卒業後所學諸條, 一大算法, 二各國言語, 三諸般學法捷經易覺者, 四格致萬物醫學農理地理天文機器, 五各國歷史, 六政治與各國條約法及富國用兵之術, 禽獸草木.】

『高宗實錄』卷23, 23年 8月 1日(辛酉)

이 사료는 조선이 1882년(고종 19년)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한 이후, 미국 공사와 보빙사(報聘使)의 권고를 받아들여 1886년(고종 23년) 육영공원(育英公院)을 설립하면서 작성한 학교 운영 규칙이다.

1876년(고종 13년) 조일 수호 조규를 계기로 조선은 중화(中華)를 중심으로 한 사대 질서에서 점차 벗어나 서구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언어와 학문에 능통한 관료를 양성할 필요를 느낀 조선 정부는 신식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인적 필요를 채우려고 하였다. 1883년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주도로 청국의 동문관(同文館)을 모델로 하여 세운 동문학(同文學)이 외국어로서의 영어 교육을 실시한 최초의 사례이다. 동문학의 설립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협판 겸 총세무사로 부임한 독일인 묄렌도르프(Möllendorff, Paul Georg von, 1848~1901)가 직접 대화가 가능한 통역관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동문학은 사실상 청국의 관리 아래 있었던 데다 초빙된 교관의 자질도 부족하여 졸업생들이 통역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 미국에 보빙사로 다녀온 민영익(閔泳翊, 1860~1914)과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이 본격적으로 영어 및 국제적인 학문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기관 설립을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에게 건의하였다. 이에 대해 고종은 본래 1884년(고종 21년) 기관을 설립하도록 허가를 내렸으나, 갑신정변으로 인해 2년 뒤인 1886년에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길모어(Gilmore, G. W., 1858~?)⋅벙커(Bunker, D. A., ?~?) 등 미국인 교사 3인을 초청해 동문학을 대체하는 근대적 교육 기관을 설립하였다. 학교 이름은 ‘영재를 육성하는 공립 학교’라는 뜻의 육영공원(育英公院)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서소문동 38번지 일대에 있었으나, 설립 5년 후에 박동독일영사관 자리와 맞교환하여 이전하였다.

「육영공원설학절목」에 따르면 육영공원은 내무부에서 관할하고 좌원(左院)과 우원(右院)으로 나누어, 좌원에는 젊은 현직 관리를 학생으로 받고 우원에는 관직에 아직 나아가지 않은 명문가 자제들을 입학시켰다. 황현(黃玹,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보면, 실제 학생 선발은 문벌 및 당파를 떠나 골고루 안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학교 운영비는 호조와 선혜청에서 절반씩 나누어 부담하도록 했으나, 실제 학교 운영 비용은 인천⋅부산⋅원산 등의 항구에서 받는 해관세로 충당되어 학생들의 교육비 부담은 따로 없었다. 수학 규정은 매우 엄격하여, 설령 관직에 임용되었다고 해도 반드시 정해진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며 정기적인 평가 제도도 있었다. 육영공원에서 가르친 과목은 외국어 기초, 수학 기초, 세계 지리 등 기초 과목과 수학, 외국어, 과학(기계⋅천문⋅지리⋅농학⋅의학 등), 각국 역사, 정치, 외교, 군사, 생물학 등 고급 과목으로 나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것은 외국어, 특히 영어였으며, 실제로 조선 정부는 육영공원의 존재 의의를 통역 능력을 갖춘 관료를 양성하는 데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인 교사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초기에는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이 공식 규정이었으며 학생들의 수업 태도도 좋았다. 그러나 아직 신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전통적인 과거 공부만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으므로, 현직 관리나 문벌 출신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그리 충실하지 않았다. 실제로 학생들은 가사와 공무를 핑계로 수업에 결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보수 관료들의 육영공원에 대한 해원 행위로 말미암아 6시간이었던 강의 시간이 4시간으로 단축되었으며, 해관에서 지급받던 교사들의 월급은 지연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지원 미비는 교사들의 의욕을 저하시켜 결국 1888년 길모어, 1891년 헐버트, 1894년 벙커가 차례로 사임하면서 육영공원은 부실화되었다. 이들 교사의 사임 이후 조선 정부는 영국인 허치슨(Hutchison, W. F., ?~?)과 핼리팩스(Hallifax, T. E., ?~?)를 다시 교사로 고용해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결국 육영공원은 폐교되고 말았다.

육영공원은 조선 정부가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공립 학교로,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립 교육 기관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관리를 양성하겠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제반 관료 시스템은 제도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전통 유교에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었으므로, 육영공원에서 제공한 근대 교육을 열심히 학습할 동기는 부족하였다. 또한 아직까지 신분 제도가 남아 있고 근대적 공교육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무 관료를 양성하기 위해 일개 학교를 설립하는 것만으로는 근대화를 위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육영공원의 운영방식과 학원의 학습 실태」,『한국교육사학』21,김경미,한국교육사연구회,1999.
「육영공원의 폐원요인 분석: 1883-1894년간의 조선개화의 사상적⋅정치적 측면을 중심으로」,,김미진,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8.
「1880년대 근대교육기관의 설립과 육영공원의 운영」,,허화연,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8.
저서
『한국근대교육의 형성』, 김경미, 혜안, 2009.
편저
『한국사』11(근대민족의 형성 1), 강만길 외, 한길사, 199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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