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主旨) 밝히노라.
……(중략)…… 자본주의의 탐욕은 노동주의의 도전을 받았고 강력한 힘에 기본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에 기반한 인도주의로 전환하려고 한다. 그러한즉 인민에 기초한 자유 정치와 노동에 기반한 문화 창조와 정의·인도(正義人道)에 근거한 민족 연맹의 신세계가 전개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어찌 이상과 하늘만 보고 사실과 땅은 잊겠는가. 세계의 대세를 있는 그대로 논해 본다면,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력이 있는 동시에 또 한편에는 이에 대립하는 옛 세력이 있어 서로 투쟁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정치로나 경제로나 사회로나 문화로나 각 방면에 해방과 개조의 운동이 있는 동시에 곧 이 모든 것을 억압하려 하는 아주 큰 운동이 존재한다. ……(중략)…… 신구의 충돌과 진보와 보수의 다툼이 어찌 이 시대에만 특별히 있었겠는가. 온 역사를 통하여 언제나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신구의 충돌은 이미 새로운 것이 올 때가 되었음을 표시함이고, 옛 것이 갈 때가 되었음을 북을 쳐 알리고 있다. 필연적인 형세는 사람의 힘으로 좌우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것이 기필코 성공하고 옛 것이 반드시 물러갈 것이지만, 우리들은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암흑 속에서 투쟁으로써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웅장한 신문명의 모습과 밝디 밝은 신시대의 서광이 멀리 수평선 위에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때에 동아일보는 태어났다. 아아! 이 탄생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돌이켜보면 한일병합부터 지금까지 10년, 그 사이에 조선 민중에게는 큰 악몽이 들이닥쳤다. 그가 또한 사람이라 어찌 사상과 희망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쉽게 펼치지 못했다. 그가 또한 사회라 어찌 집합적 의사와 활력의 충동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쉽게 이루지 못했다. 그가 또한 민족이라 어찌 고유한 문명의 특별한 장점과 생명의 미묘함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감히 펼치지 못했다. 실로 개인이 간혹 경험하는 것을 부르짖고자 하나 입을 열지 못하며, 달리고자 하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 악몽에 조선의 2000만 무고한 민중은 빠졌었다.
이이는 곧 사지(死地)고 함정이었으며 자유와 발달을 기약하지 못할 곳이었다. 조선 민중은 실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 혹은 울고 혹은 분노하였다. ……(중략)…… 이에 동아일보가 태어났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실로 민중의 열망과 시대의 동력으로 태어났다고 하겠다.
주지를 아래에 밝혀 창간사에 대신하고자 한다.
(1) 조선 민중의 표현 기관을 자임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소수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단일한 전체로서의 2천만 민중의 기관으로 자임하니, 그의 의사와 이상과 계획과 운동을 여실히 표현하며 보도하기를 약속한다.
(2)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는 국가체제나 정치체제의 형식적 표준이 아니라, 곧 인류 생활의 큰 원리요 정신이니 힘을 배척하고 인격의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 쓰임이 국내 정치 부분에서는 자유주의며, 국제정치 부분에서는 연맹주의요, 사회생활 부분에서는 평등주의요, 경제조직 부분에서는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다.
특히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보다 더 많은 친목과 단결을 의미하며, 세계 전체에 있어서는 정의와 인도(人道)를 승인하고 그보다 더 많은 평화와 연결(聯結)을 의미한다. ……(중략)……
(3) 문화주의를 제창한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생활 내용을 충실히 하며 풍부히 함이니, 곧 부의 증진과 정치의 완성과 도덕의 순수와 종교의 풍성과 과학의 발달과 철학·예술의 깊고 오묘함이다. 바꾸어 말하면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세계 문명에 공헌하게 하며 조선 강산으로 하여금 문화의 낙원이 되게 함을 외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조선 민족의 사명이며 생존의 가치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요컨대 동아일보는 태양의 무궁한 광명과 우주의 무한한 생명을 삼천리 강산 2천만 민중 가운데 실현하며 전달하여 자유 발달의 국면을 잇고자 하는 것이니 (1) 조선 민중이 각각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을 바르게 하여 한마음으로 화합하는 큰 문화의 수립을 약속하며 (2) 천하의 많은 백성들이 그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 세상이 함께 하는 커다란 낙원을 건설하는 것에 힘을 합치고 서로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이 동아일보의 주지이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1일, 「주지를 선명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