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근대식민지 문화 정책과 그 대응

학생 브나로드와 한글 강습

학생 브나로드와 한글 강습

본사의 여름 학생 브나로드 운동은 계획을 발표한 때가 여름 직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격적인 반응을 받아 이제는 브나로드 대원이 전 조선 13도 200여 주에 가득 차게 되었다. 강습을 위한 교본도 이미 한글, 실용 산수에 관한 것이 인쇄되어 각지의 대원에게 발송되고 있다. 또 본사에서 주최하고 조선어 학회에서 후원하는 한글 강습회는 이미 문자를 아는 이, 특히 교육자와 학생에게 바른 철자와 문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비록 그 범위가 틀리다고는 하나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차의 두 바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브나로드 운동은 다만 문자와 숫자만을 보급하는 데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타에도 무엇이든지 민중에게 필요한 것이요,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문자, 숫자 보급반, 과학, 위생강연대, 학생 기자대뿐이지만, 앞으로는 생산, 소비 등의 조합 훈련이나 음악, 연예 등 오락과 체육 등 무엇이든지 민중에게 유익하고 학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면 점차로 다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학생 브나로드 운동이라 함은 조선의 남녀 학생이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의 일부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민족을 위한 봉사의 대명사다. 우리 조선의 학생은 브나로드를 통해 그들의 젊은 정신으로 조선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또 새롭게 해야만 한다.

한글 강습회의 강사들이나 학생 브나로드의 대원들이나 이 폭염 속에서 아무런 보수 없이 동포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아무리 감사하더라도 부족한 것이다. 이야말로 자기를 초월하고 이해와 고락을 초월하고 순전히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지성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환영과 위로와 보조와 협력과 후원과 감사를 받기를 바라는 바다.

끝으로 학생 기자대에 대해 한 마디 하려 한다. 학생 기자대라는 것은 실로 이 세상에 처음 있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학생들이 조선의 자연과 인사(人事)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훈련을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오늘날 우리 조선 학생은 조선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 교실에서도 조선에 관한 강의를 듣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조선에 관한 지식을 가지려면 첫째로 조선에서 간행되는 신문과 잡지를 보는 것이 필요하거니와 직접 자기가 듣고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자기가 자기 마을의 산천이나 주변 마을의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여 문장으로 서술해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학생 각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그것이 지면에 발표된다고 하면 청순한 남녀 학생의 마음에 비추인 조선의 자연과 인사(人事)는 반드시 크나큰 흥미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동아일보〉, 1931년 7월 28일

學生브나로드와 한글講習

本社의 夏期學生브나로드運動은 計劃을 發表한 時期가 夏休直前이엇음에도 不拘하고 感激에 찬 反響을 받아 이제는 브나로드隊員이 全朝鮮十三道二百餘州에 遍滿하게 되엇다. 講習臺本도 이미 한글과 日用算數에 關한 것이 印刷되어 各地隊員에게 發送되는 中에 잇고 또 本社主催요 朝鮮語學會後援인 한글 講習會도 벌서 開始되여 八月中에 二十八個都市에서 “바른 綴字, 바른 文法”의 運動이 行할 것이다. 브나로드 運動의 한글 普及은 一般 文字, 數字 모르는 民衆을 目標로 한 것이오 한글 講習會는 이미 文字를 아는 이, 特히 敎育者와 學生에게 바른 綴字와 바른 文法을 주기로 目的하는 것이니 이 두가지는 비록 그 範圍의 廣狹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 重要性에 잇어서는 또한 車의 兩輪과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브나로드運動은 다만 文字와 數字만을 普及하는데 局限된 것은 아니다. 其他에도 무엇이든지 民衆에게 必要한 것이오 學生이 할 수 잇는 일이면 할 수 잇는 것이니 今年에는 文字, 數字普及班, 科學, 衛生講演隊, 學生記者隊뿐이어니와 從此로는 生産, 消費等의 組合訓鍊이며 音樂, 演藝, 等娛樂이며 體育等 무엇이든지 民衆에게 有益하고 學生으로 할 수 잇는 것이면 漸次로 다 할 것이니 一言以蔽之하면 學生브나로드運動이라 함은 朝鮮의 男女學生으로서 夏休나 冬休의 一部를 割하야 할 수 잇는 民族에의 奉仕의 總名詞다. 우리 朝鮮의 學生은 브나로드運動을 通하야 그들의 淸新한 精神으로 朝鮮을 一新할 수 잇고 또 그리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한글講習會의 講師諸氏나 學生브나로드의 隊員諸氏나 이 苦熱에 아모 報酬없이 同胞를 爲하야 受苦하는 것은 암만 感謝하더라도 다 感謝할 수 없을 것이니 이야말로 自己를 超越하고 利害와 苦樂을 超越하고 純全히 民族을 爲하야 獻身하는 赤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네가 가는 곳마다 歡迎이 잇고 慰勞가 잇고 補助와 協力이 잇고 後援이 잇고 感謝가 잇기를 바라는 바다.

끝으로 學生記者隊에 對하야 一言하려 한다. 學生記者隊라는 것은 實로 斯界에 初有의 것이어니와 우리는 이것이 學生에게 朝鮮의 自然과 人事를 觀察하고 理解하는 訓鍊을 얻을 機會를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朝鮮學生은 朝鮮에 關한 知識이 不足하다. 敎室에서도 朝鮮에 關한 講義를 듣기가 어렵다. 그럼으로 學生들이 朝鮮에 關한 知識을 가지랴면 첫재로 朝鮮에서 刋行되는 新聞과 雜誌를 보는 것이 必要하거니와 直接 自己가 聞見하는 것이 가장 確實한 길이다. 自己가 自己의 鄕里의 山川이나 隣里의 人民의 生活을 觀察하야 文章으로 叙述하야보는 習慣을 길우는 것은 學生各自에게 甚히 重要한 일일뿐더러 그것이 紙面에 發表된다하면 淸純한 男女學生의 맘에 비초인 朝鮮의 自然과 人事는 반드시 無上한 興味를 催할 것을 믿는다.

〈東亞日報〉, 1931年 7月 28日

이 사료는 1931년부터 동아일보사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농촌 계몽 운동인 브나로드와 관련한 기사이다. 이는 원래 ‘민중 속으로 다님’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하즈데니예 브 나로드(khozhdeniye v narod, 러시아어: хождение в народ)’에서 비롯된 것으로, 러시아 말기 지식인들이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면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구호이다. 이 구호를 앞세워 1874년 수많은 러시아 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계몽 운동을 벌였는데, 이듬해 여름까지 농민을 대상으로 급진적 혁명 사상을 계몽하고 선전을 벌이기 위해 20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지식인과 학생이 농촌으로 들어가면서 정점을 이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정작 농민들로부터는 별 호응을 얻지 못했고,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193인 재판’을 받으면서 막을 내렸다. 이 운동은 농촌을 근간으로 한 사회주의적 급진 사상의 시발점이었으며 많은 혁명가들이 이를 통해 양성되었다. 또한 주변 여러 나라에서 농촌 계몽활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브나로드’라는 말은 ‘농촌 계몽 운동’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국내의 계몽 운동은 1920년대 초 서울의 학생과 문화단체, 동경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다. 브나로드 운동의 예로 1926년 천도교 조선농민사에서 펼친 귀농 운동과 193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 학생들의 문맹 퇴치 운동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농촌 계몽 운동과 함께 한글 보급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930년대 초반 조선일보사가 중심이 된 ‘귀향 학생 문자 보급 운동’과 동아일보사 중심의 ‘브나로드 운동’이 대표적이다. 본 사료는 바로 이 ‘브나로드 운동’을 홍보하고 참가자 및 후원을 모집하기 위해 게재한 기사다.

동아일보사는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매년 여름마다 “힘써 배우자! 아는 것이 힘이다!”,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 등의 구호를 내걸고 학생들을 농촌으로 파견하여 사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4년간 전개한 운동에는 연인원 5752명의 고등보통학교 및 전문학교 학생들이 참여했으며, 9만 8593명이 글자를 깨우친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조선 총독부의 금지 명령으로 1935년부터 중단되었다.

브나로드 운동의 목표는 〈동아일보〉 사설에 의하면 단지 숫자나 문자의 보급에만 한정되지 않고 내용과 범위를 넓혀서 산업 지도, 조합 지도, 생활개선 등 조선인의 생활과 문화를 위한 제반 분야에 걸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동의 전개는 문자와 숫자 보급, 위생 강연으로 제한되었고, 사상⋅정치⋅경제적 또는 어떤 이념적 색채나 선전은 일체 불가했다. 이 때문에 브나로드 운동은 결과적으로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문맹 퇴치 운동으로 제한되었다.

브나로드 운동은 언론계와 문화 단체, 청년 학생들이 힘을 모아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전개했던 거국적인 민족 자강 운동으로 평가 받는다. 이를 통해 문맹 타파, 한글 보급이라는 성과를 거두고 아울러 위생 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선 총독부농촌 진흥 운동과 마찬가지로, 조선인들의 가난 및 열악한 생활 조건은 곧 조선인들의 게으름, 사치, 무식함, 불결함 때문이며, 이를 계몽시키고 개조해야만 개선될 것이라는 사고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식민지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거나 침묵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농촌계몽운동에 나타난 계몽주의 사조의 성격고찰」,『한국교육학연구』3,강선보⋅고미숙,한국교육학회,1997.
「브나로드 운동과 인텔리겐차」,『건농학보』11,김근주,건국대학교 농과대학,1985.
「1870년대 러시아 인민주의 운동의 성격 변화」,『인문과학연구』7,이채욱,서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1998.
「일제시기 브나로드운동 재평가해야」,『역사비평』11,지수걸,역사문제연구소,1990.
저서
『일제강점기 조선어 교육과 조선어 말살정책 연구』, 김성준, 경인문화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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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나로드 운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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