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근대식민지 문화 정책과 그 대응

한용운의 독립 사상-조선 독립의 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개요

이 글은 옥중에 계신 우리 대표가 일본인 검사총장(檢事總長)의 요구에 응해 저술한 것 중 일부로, 비밀리에 감옥 밖으로 반출되어 전해진 것이다.

一. 槪論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인식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로 진보하는 것인데 여기서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열패⋅약육강식의 이론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天使國)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 백, 몇 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예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 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침략만을 일삼는 극악무도한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그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하고 하늘이 슬퍼한 유럽 전쟁은 대략 1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 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전 세계를 유린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초사 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 마일의 싸움터에 배치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황제의 호언은 한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을 뜻하는 종곡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호언장담만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 계획도 실로 탁월하였다. 휴전 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 측의 군대는 독일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는 하늘에서, 잠수함은 바다에서, 대포는 육지에서 각각 그 위력을 발휘하여 싸움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군국주의적 낙조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아아, 1억만 인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에 선전 포고했던 독일 황제. 그리하여 한때는 종횡무진으로 백전백승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 황제가 하루아침에 생명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이냐. 이는 곧 황제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실패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그 개인을 위해서는 한가닥 동정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 연합국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 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 간의 지구전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 측 준군국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 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이다.

독일 혁명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룩된 것인 만큼 그 유래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 혁명의 자극을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의 잘못을 통감한 사람들이 전쟁을 스스로 파기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 혁명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하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연합국뿐만 아니라 또한 독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면 그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이 한때 승리를 거두었을 지라도 반드시 연합국의 복수 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한 것이 아니고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때에 단연 굴욕적인 휴전 조약을 승낙하고 강화에 응한 것은 기회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 회담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 조약에는 무조건 승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3월 1일 이후의 소인식은 알 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라 할 것이다.

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유럽 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황제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 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 선언, 체코의 독립, 아일랜드의 독립 선언, 조선의 독립 선언이 그것이다.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

朝鮮獨立에 對한 感想槪要

此書는 獄中에 게신 我代表者가 日人 檢事總長의 要求에 應하야 著述한 者 中의 一인대 祕密裏에 獄外로 送出한 斷片을 集合한 者라

一. 槪論

自由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 人生의 幸福이니, 故로 自由가 無한 人은 死骸와 同하고 平和가 無한 者난 最苦痛의 者라 壓迫을 被하난 者의 周圍의 空氣난 墳墓로 化하고 爭奪을 事하는 者의 境涯는 地獄이 되나니 宇宙萬有의 理想的 最幸福의 實在는 곳 自由와 平和라. 故로 自由를 得하기 爲하야는 生命을 鴻毛視하고 平和를 保하기 爲하야 犧牲을 甘飴嘗하나니 此는 人生의 權利인 同時에 또한 義務일지로다. 그러나 自由의 公例는 人의 自由를 侵치 안이함으로 界限을 삼나니 侵掠的 自由난 沒平和의 野蠻 自由가 되며 平和의 精神은 平等에 在하니 平等은 自由의 相敵을 謂함이라. 故로 威壓的 平和는 屈辱이 될 뿐이니 眞自由는 반다시 平和를 保하고 眞平和는 반다시 自由를 伴할지라. 自由여 平和여 全人類의 要求일지로다.

그러나 人類의 知識은 漸進的임으로 草味로붓허 文明에, 爭奪로붓허 平和에 至함은 歷史的 事實로 證明하기 足하도다. 人類 進化의 範圍난 個人的으로부터 家族, 家族的으로붓허 部落, 部落的으로붓허 國家, 國家的으로붓허 世界, 世界的으로붓허 宇宙的主義에 至하도록 順次로 進步함이니 部落主義 以上은 草昧時代의 落謝塵에 屬한지라 回首의 感懷를 資하난 外에 論述할 必要가 無하도다. 幸인지 不幸인지 十八世紀 以後의 國家主義난 實로 全世界를 風靡하야 騰奔의 絶頂에 帝國主義와 그 實行의 手端(段) 卽 軍國主義를 産出함에 至하야 所謂 優勝劣敗, 弱肉强食의 學說은 最眞不變의 金科玉條로 認識되야 殺伐强奪의 國家 或 民族的 戰爭은 자못 止息될 日이 無하야 或幾千年의 歷史國을 丘墟하며 或幾十百萬의 生命을 犧牲하난 事가 地球를 環하야 無한 處가 無하니 全世界를 代表할 만한 軍國主義난 西洋에 獨逸이 有하고 東洋에 日本이 有하엿도다.

그러나 所謂 强者 卽 侵掠國은 軍艦과 鐵砲만 多하면 自國의 野心壑欲을 充하기 爲하야 不人道 蔑正義의 爭奪을 行하면서도 그 理由를 說明함에 世界 或 局部의 平和를 爲한다던지 爭奪의 目的物 卽 被侵掠者의 幸福을 爲한다던지 하난 等 自欺欺人의 妄語를 弄하야 儼然히 正義의 天使國으로 自居하나니 例하면 日本이 暴力으로 朝鮮을 合倂하고 二千萬 民族을 奴隷待하면서도 朝鮮을 合倂함은 東洋平和를 爲함이며, 朝鮮民族의 安寧 幸福을 爲함이라 云云함이 是라.

嗚呼라 弱者에 終古의 弱者가 無하고 强者에 不盡의 强者가 無하니 (曝寒의) 大運이 其輪을 轉하난 時난 復讎的 戰爭은 반다시 侵掠的 戰爭의 踵을 隨하야 起할지니 侵掠은 戰爭을 誘致하난 事라 엇지 平和를 爲하난 侵掠이 有하며 또한 엇지 自國幾千年의 歷史 他國侵掠의 劍에 斷絶되고 幾百千萬의 民族은 外人의 虐待下에 奴隷가 되고 牛馬가 되면서 此를 幸福으로 認할 者가 有하리오. 何民族을 勿論하고 文明程度의 差異는 有할지나 血性이 無한 民族는 無하니 血性을 具한 民族이 엇지 永久히 人의 奴隷를 甘作하야 獨立自存을 圖치 아니하리오. 故로 軍國主義 卽 侵掠(的)主義는 人類의 幸福을 犧牲하는 惡魔(最魔術)일 뿐이니 엇지 是와 如한 軍國主義가 天壤無窮의 運命을 保하리오. 理論보다 事實,(以下 不明) 嗚呼라 ‘劍’이 엇지 萬能이며 ‘力’이 엇지 勝利리오. 正義가 有하고 人道가 有하도다. 侵掠又侵掠 惡極慘極의 軍國主義 獨逸로써 最終幕을 演치 아니하엿는가? 血耶肉耶 鬼哭神愁의 歐洲 大戰爭은 大略 一千萬의 死傷者를 出하고 幾多億의 金錢을 糜費한 後에 正義人道를 標榜하 旗幟下에셔 講和條約을 成立하게 되엿도다. 그러나 軍國主義의 終極도 實로 色彩를 莊嚴히 함에 遺憾이 無하엿도다. 全世界를 蹂躪하랴는 私欲을 充하기 爲하야 苦心焦思 三十年의 準備로 幾百萬의 健兒를 數百哩의 戰線에 立하고 鐵騎飛船을 鞭馳하야 左衝右突 東奔西擊 開戰 三個月 內에 巴黎를 陷落한다 自期하던 가이제르의 聲言은 一時의 壯絶을 極하엿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訣別의 終曲일 뿐이며, 理想과 聲言 뿐 아니라 作戰計劃의 事實도 卓越하야 休戰을 開議하던 日까지 聯合國側 兵馬의 足跡은 獨逸國境의 一步地를 踰越치 못하엿스니 航空機 空에셔 潛航艇은 海에셔 自動砲난 陸에셔 各各 其 妙를 極하야 實戰의 作略에 絢爛한 色彩를 發하엿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落照의 反射일 뿐이라. 噫라, (一)億萬 人民의 上에 君臨하고 世界 一括의 雄圖를 自期하야 對世界의 宣戰을 布告하고 百戰百勝의 槪를 有하야 神耶人耶의 間에셔 縱橫自在하던 獨逸皇帝가 一旦에 自己生命의 神으로 認하난 ‘劍’을 解하고 踽凉落拓, 天涯淪落의 和蘭 辟陬에 殘喘을 (僅)保함은 何等의 突變이냐? 此는 곳 가이제르의 失敗 뿐 아니라 軍國主義의 失敗니 一世의 快事를 感하는 同時에 其人을 爲하야난 一線의 同情을 禁치 못하리로다. 그러나 聯合國側도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한다 聲言하엿스나 其 手端 方法의 實用은 亦是 軍國主義의 遺物인 軍艦 鐵砲 等의 殺人具이니 是는 蠻夷로 蠻夷를 攻함이니 何의 別이 有하리오. 獨逸의 失敗가 聯合國의 戰勝이 안인즉 數多한 强弱國의 合致한 兵力으로 五年間의 持久戰에 獨逸을 制勝치 못함은 此는 또한 聯合國側 準軍國主義의 失敗가 아닌가. 그러면 聯合國側의 砲가 强함이 안이요, 獨逸의 劍이 短함이 아니어늘 戰爭의 終極을 告함은 何故오? 曰 正義 人道의 勝利오 軍國主義의 失敗니라. 然하면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聯合國의 手를 借하야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인가. 曰 否라.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獨逸人民의 手를 假하야 世界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이니 곳 戰爭中(의) 獨逸革命이 是라. 獨逸革命은 社會黨의 手에(서) 起하엿슨즉 그 由來가 久하고 또한 露國革命의 刺戟을 受한 바가 有하나 統括的으로 (말)하면 戰爭의 苦를 感하야 軍國主義의 非를 痛切히 覺悟한 故로 談笑從容의 間에서 戰爭을 自破하고 怒濤驚浪의 軍國主義를 發揮하랴던 劍을 倒하야 軍國主義의 自殺을 遂하고 共和革命의 成功을 博하야 平和的 新運命을 開拓함인즉 聯合國은 其隙을 乘하야 漁父의 利를 得함이라. 今番 戰爭의 終極에 對하야난 聯合國의 勝利 뿐 아니라 또한 獨逸의 勝利라 하리로다.

何故오? 今番般戰爭에 獨逸이 孤注一擲의 最後 一戰을 決할지라도 勝負를 可히 知치 못할지오. 假使 獨逸이 一時의 勝利를 得한다 할지라도 聯合國의 復讎戰爭이 一起再起하야 獨逸의 滅亡을 見치 아니하면 兵을 解할 日이 無할지라. 故로 獨逸이 戰敗치 아늘 뿐(만) 아니라 戰勝이라도(고) 할 만한 境遇에 在하야 斷然히 屈辱的 休戰條約을 承諾하고 講和를 請함은 곳 機를 見하야 勝을 制함이니 講和會議에 對하야도 可及의 屈辱的 條(約)에난 無條件으로 承諾함을 推知하기 不難하도다 (三月一日 以後의 外界消息은 不知). 그러하면 現金(今)主義로 見하면 獨逸의 失敗라 할지나 遠視的으로 見하면 獨逸의 勝利라 할지로다.

噫라 曠古 未曾有의 歐洲의 大戰爭과 奇怪 不思議의 獨逸의 革命은 十九世紀 以前의 軍國主義 侵掠主義의 餞別會가 되난 同時에 二十世紀 以后의 正義 人道的 平和主義의 開幕이 되여 가이제르의 失敗가 軍國主義的 各國의 頭上에 痛捧(棒)을 下하고 威日遜의 講和基礎 條件이 各領土의 古査에 春氣를 傳함에 侵掠國의 壓迫下에서 伸(呻)吟하던 民族은 騰空의 氣와 決河의 勢로 獨立自決을 爲하야 奮鬪하게 되엿스니 波蘭의 獨立이 是며 채크(체코)의 獨立이 是며 愛蘭의 獨立宣言이 是며 印度의 獨立運動이 是며 比律賓의 獨立經營이 是며 朝鮮의 獨立宣言이 是며.(三月一日까지 狀態) 各民族의 獨立 自決은 自存性의 本能이며 世界의 大勢며 宇宙神明의 贊同이며 全人類(의) 未來 幸運의 源泉이라. 誰가 此를 (制하며 誰가 此를) 防하리오.

〈獨立新聞〉, 1919年 11月 4日

이 사료는 한용운(韓龍雲, 1879~1944)3⋅1 운동 당시 체포되어 일본인 검사의 심문에 답변할 내용을 구상하던 중 기초한 것으로 상해 임시 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자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 개요」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후 「조선 독립의 서」, 「조선 독립 이유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한용운은 승려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어렸을 때 가학으로 한학을 배운 이래 불교⋅서양 학문⋅천도교 등 다양한 학문과 종교를 탐구한 바 있으며, 3⋅1 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신간회 결성에 적극 나섰다.

「조선 독립의 서」는 조선인이 자신의 실력으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 제국주의가 필연적으로 패망할 수밖에 없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가 요구하는 시대적 대세이며, 세계의 역사가 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는 세계적 평화주의로 나아가기 전에 국가주의 단계에 와 있고, 국가주의는 폭력적 제국주의 혹은 군국주의로 쉽게 타락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에는 독일, 동양에는 일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 통치는 군국주의의 전형이며 조선의 자유와 평등은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 통치에 의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한용운은 독일이 끝내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것은 그들의 군국주의가 자유와 평등 앞에 패퇴한 것이며, 일본의 미래도 동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독일 황제정 실패, 사회당 설립 등이 일본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며 조선은 폴란드⋅체코⋅아일랜드⋅인도 등 많은 식민지 국가들과 함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의 민족 자결주의에 따른 독립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한용운 사상의 특징은,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와 역사의 서구적 진보를 인정하면서도 사회 진화론의 약육강식관(弱肉强食觀)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을 자유와 평등으로 규정하고, 바로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세계 역사가 발전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일본은 조선인의 자유와 평화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고 있으므로, 조선인들이 자신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 일본의 야욕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조선은 끝내 독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실력(경제력과 군사력)에 근거해 세계 역사가 진보한다는 일반적 사회 진화론과는 반대 입장에 선 도덕 중심주의이며, 만해 한용운 사상의 종교적 특징이라고도 하겠다.

또한 한용운은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개인–가족–부락–국가–세계–우주로 상정하면서, 국가주의가 세계주의로 발전하지 못하고 제국주의나 군국주의로 정체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국가주의가 ‘자유와 평화에 기반한 세계주의’로 발전한다고 봤다. 이는 사해동포 의식에 기반한 이상적인 전망이지만,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식민지 국가 국민들의 희망으로 제기되던 때에는 나름 설득력 있게 거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신채호(申采浩, 1880~1936)의 ‘조선 혁명 선언’과 함께 일제 강점기 2대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상해 임시 정부의 설립 및 정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만 이 글에는 3⋅1 운동 전후로 조선 내 민족주의자 그룹이 갖고 있었던 국제 정세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 그대로 묻어 있다. 곧, 세계사가 자유와 평화를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과,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실제 식민지 국가들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당시 국제 질서를 너무나 안이하게 인식한 한계를 드러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한용운의 시대인식에 대한 일고찰 : 「조선불교유신론」⋅「조선독립의 서」를 중심으로」,,강미자,경성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89.
「한용운의 독립사상」,『한용운사상연구』2,김상현,민족사,1981.
「한용운의 사회사상에 관한 일연구」,,이양순,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78.
「한용운의 3⋅1 독립운동에 관한 일고찰」,『한용운사상연구』3,전보삼,민족사,1994.
저서
『한용운 전집』, 한용운, 신구문화사, 1973.
편저
『한용운의 3⋅1독립정신연구』, 만해사상연구회, 만해사상연구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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