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현대광복과 분단의 문화

광복 직후 사회상을 반영한 노래

〈해방의 노래〉

김순남 작곡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말굽 소리와

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야

놈들에게 빼앗겼든 토지와 농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제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농민가〉

김순남 작곡

펄럭이는 조합기를 앞에 세우고

동무들아 용감하게 싸워 나가라

어제까지 피를 빨든 우리 원수는

오늘부터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귀국선〉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하략)…

〈굳세어라 금순아〉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 인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아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음 받고서 살아를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정경은, 『한국 현대 민중가요사』, 서정시학, 2008

    〈해방의 노래〉

               김순남 작곡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말굽 소리와

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야

놈들에게 빼앗겼든 토지와 농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제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농민가〉

            김순남 작곡

펄럭이는 조합기를 앞에 세우고

동무들아 용감하게 싸워 나가라

어제까지 피를 빨든 우리 원수는

오늘부터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귀국선〉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하략)…

    〈굳세어라 금순아〉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 인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아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음 받고서 살아를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정경은, 『한국 현대 민중가요사』, 서정시학, 2008

이 사료는 1945년 8월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을 담은 노래들이다. 해방 직후 작곡가 김순남과 성악가이자 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던 신막⋅이범준 등 좌익 인사를 중심으로 ‘조선 음악 건설 본부’가 출범하였다. 하지만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좌익 인사들이 일제 강점기부터 존재해 온 우파 성향의 ‘조선음악가협회’와의 대립으로 빠져나가 따로 ‘조선 프롤레타리아 음악 동맹’을 결성하면서 타격을 받았고 결국 1945년 10월에 해산하였다.

해방 직후 ‘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이하 전평)’,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전국 청년 단체 총동맹’, ‘전국 부녀 총동맹’ 등이 주도한 노동 운동에서 ‘조선 프롤레타리아 음악 동맹’의 주악과 합창이 빠지지 않았다. 「해방의 노래」, 「건국행진곡」, 「독립의 아침」, 「독립행진곡」, 「자유의 노래」, 「애국가」, 「적기가」 등이 대표적인 곡들이다. 특히 김순남의 「해방의 노래」는 예술제와 궐기 대회 등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불렸다. 노동 운동 단체는 교양 강습과 연극⋅음악⋅체육 등 연예 활동을 이용해 조합원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고, 이는 전국적 활동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1945년 해방 이후 유행가는 ‘대중가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일본 가요의 영향을 받았던 대중가요는 미국의 재즈와 팝의 영향을 받아 리듬 패턴이 다양해졌다. 대중가요는 시대 상황과 정서를 대변하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중가요는 식민지 시대 피압박 민족의 설움을 직간접으로 표현하여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한편 저항 정신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당시 등장하는 가사 중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는 ‘고향, 방황, 나그네, 타국’ 등이었다.

해방과 함께 민족의 일체감, 해방의 환희,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을 담은 밝고 명랑한 대중가요가 등장하였다. 해방 가요 1호로 알려진 「사대문을 열어라」(1945, 고려성 작사, 김용환 작곡)도 그 중 하나이다. 당시 가장 유행한 노래는 「귀국선」, 「비 내리는 고모령」, 「가거라 38선」 등이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곡들은 잠시 잠깐 대중의 인기를 누렸을 뿐, 현재 찾아볼 수 있는 노래도 몇 곡에 불과하다. 남과 북으로 단절된 데 이어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시대의 아픔을 그린 노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사연구」,『낭만음악』,노동은,낭만음악사,1988.
저서
『노래이야기 주머니』, 이영미, 녹두, 1993.
『한국대중가요사』, 이영미, 시공사, 1998.
『한국 현대민중가요사』, 정경은, 서정시학,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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