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현대광복과 분단의 문화

광복 직후 우익 계열의 문학론-김동리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

- 문학의 내용(이상성)적 기초를 위하여 -

소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문학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기대로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중략)……

우리는 보통 시나 소설(혹은 희곡이나 평론을) 쓰는 것을 가리켜 문학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면, 시 쓰고 소설 쓴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시나 소설의 의의를 사전이나 문학개론 같은 데서 배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개 참고 재료는 될지언정, 전적으로 해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 쓰고 소설 쓰는 사람은 시 쓰고 소설 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각자대로 한 번씩 생각해보고, 자기대로의 해답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가 시 쓰고 소설 쓴다는 일이 한 개 직업적인 시인, 소설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화직공(洋靴職工)이 구두를 만들어 내듯이 제지업자가 종이를 떠내듯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시와 소설을 제조해 낸다면, 그것은 한 개 시 제조업자나 소설 제조업자로서의 장인(匠人)이요 기자(記者)에 지나지 못할 것이며, 문학을 한 개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배격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높고 참된 의미에 있어서의 ‘문학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구경적(究竟的, 삶의 궁극적 의의, 절대적 진리의 깨달음을 탐구하고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자세)인 삶의 형식이 아니어서는 아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구경적인 삶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먼저 모든 문화적 생산 혹은 창조는 삶의 긍정을 전제하고 출발한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완전히 삶을 부정하는 데서는 문학뿐 아니라 일체의 문화는 생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사는 것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금수(禽獸)나 가축류가 사는 것과 같은 넓은 의미의 모든 생명현상을 통틀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직업적 삶’이다. 오늘날의 인류라는 동물이 영위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삶의 형태다.

……(중략)……

그러나 여기서는 삶의 연속성은 없다.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비교적 안일하게, 비교적 편리하게, 비교적 부유하게. 비교적 즐겁게 몇 십년 사는 대로 살다 없어져 버리는 것. 여기서 우리는 그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삶의 의욕이 여기서 채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그칠 것이다. 그들의 모든 생산(문화적)도 이 범주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 여기서 삶의 의욕이 끝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시 다음의 제3 단계의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구경적 삶(生)’이라 일컫는 것이다. 여기서 인류는 그가 가진 한도 끝도 없는(無限無窮) 의욕적 결실인 신명(神明)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명을 갖는다’는 말이 거북하면 자아 속에서 천지(天地)의 분신을 발견한다고 해도 좋은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부연하면, 우리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천지에 태어나 한사람씩 한 사람씩 천지 사이에 살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적어도 우리와 천지 사이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유기적 관련이 있다는 것과 이 ‘유기적 관련‘에 관한 한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운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는 우리들에게 부여된 우리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 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천지의 파편에 그칠 따름이요, 우리가 천지의 분신임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이며, 이 체험을 갖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천지에 동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우리의 이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것, 이것을 가르쳐 ’구경적 삶‘이라 부르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것만이 우리의 삶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중략)……

첫째, 내가 말하는 ‘구경적 삶’이란 반드시 종교를 통해서만 수행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학을 통해서든, 철학을 통해서든, 혹은 정치를 통해서든 교육을 통해서든 가능해야 할 것이며 실지로 가능했던 것이다. ……(중략)……

둘째, ‘구경적 삶의 형식’만을 ‘문학하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의의와 가치에는 수억, 수만의 등차가 있을 것과 같이 ‘문학하는 것’의 단계와 등차도 수억 수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위에서도 가장 높고 참된 의미에 있어 ‘문학하는 것’이란 ‘구경적 삶의 형식’이라 한 것이다. 내가 생각 하는 바 ‘문학하는 것’의 최고지향을 말한 데 불과한 것이다. (2월 10일)

『백민』 제4권 2호, 1948년 3월

文學하는 것에 對한 私考

     - 文學의 內容(理想性)的 基礎를 爲하여 -

所謂 文學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文學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自己대로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極히 드물다.

……(중략)……

우리는 普通 詩나 小說(惑은 戱曲이나 評論을) 쓰는 것을 가리켜 文學하는 것이라고 한다. 勿論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問題는 그러면, 詩 쓰고 小說 쓴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詩人이나 小說家가 詩나 小說의 意義를 辭典이나 文學槪論 같은 데서 배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개 參考 材料는 될지언정, 全的 解答이 되어서는 안 된다. 詩 쓰고 小說 쓰는 사람은 詩 쓰고 小說 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각자대로 한 번씩 생각해보고, 自己대로의 解答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가 詩 쓰고 小說 쓴다는 일이 한 개 職業的인 詩人, 小說家가 되어서는 안 된다. 洋靴職工이 구두를 만들어 내듯이 製紙業者가 종이를 떠내듯이 詩人이나 小說家가 詩와 小說을 製造해 낸다면, 그것은 한 개 詩製造業者나 小說製造業者로서의 匠人이요 記者에 지나지 못할 것이며, 文學을 한 개 政治的 道具로 삼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排擊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높고 참된 意味에 있어서의 ‘文學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究竟的인 生의 形式이 아니어서는 아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究竟的인 生의 形式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먼저 모든 文化的 生産 혹은 創造는 生의 肯定을 前提하고 出發한다는 데서부터 始作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完全히 生을 否定하는 데서는 文學뿐 아니라 一切의 文化는 生産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사는 것에는 여러 가지 段階가 있다. 첫째 禽獸나 畜類가 사는 것과 같은 넓은 의미의 모든 生命現象을 통틀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職業的 삶’이다. 오늘날의 人類라는 動物이 營爲하고 있는 가장 一般的인 삶의 形態다.

……(중략)……

그러나 여기서는 生의 連續性은 없다. 또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比較的 安逸하게, 比較的 便利하게, 比較的 富裕하게 比較的 즐겁게 몇 십 년 사는 대로 살다 없어져 버리는 것 여기서 우리는 끄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生의 意慾이 여기서 채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끄칠 것이다. 그들의 모든 生産(文化的)도 이 範疇에 끄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滿足할 수 없는 사람들, 여기서 生의 意慾이 끝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시 다음의 第3 段階의 生의 方式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究竟的 삶(生)’이라 일컫는 것이다. 여기서 人類는 그가 가진 無限無窮에의 意慾的 結實인 神明을 갖게 되는 것이다. ‘神明을 갖는다’는 말이 거북하면 自我 속에서 天地의 分身을 발견한다고 해도 좋은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敷衍하면, 우리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天地 사이에 태어나 한 사람씩 한 사람씩 天地 사이에 살아지고 있다는 事實을 通하여, 적어도 우리와 天地 사이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有機的 關聯이 있다는 것과및 이 ‘有機的 관련’에 關한 限 우리들에게는 共通된 運命이 賦與되어 있다는 것을 發見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는 우리들에게 賦與된 우리의 共通된 運命을 發見하고 이것의 打開에 志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 事業을 遂行하지 않는 限 우리는 永遠히 天地의 破片에 끄칠 따름이요, 우리가 天地의 分身임을 體驗할 수는 없는 것이며, 이 體驗을 갖지 않는 限 우리의 生은 天地에 同化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賦與된 우리의 이 共通된 運命을 發見하고 이것의 打開에 노력하는 것, 이것을 가르처 究竟的 삶이라 부르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것만이 우리의 삶을 完遂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중략)……

첫째 내가 말하는 ‘究竟的 삶’이란 반드시 宗敎를 通해서만 遂行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文學을 通해서든, 哲學을 通해서든, 혹은 政治를 通해서든 敎育을 通해서든 可能해야 할 것이며 實地로 可能했던 것이다. …(중략)…

둘째, ‘究竟的 生의 形式’만을 ‘文學하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文學作品의 意義와 價値에는 數億 數萬의 等差가 있을 것과 같이 ‘文學하는 것’의 段階와 等差도 數億 數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위에서도 가장 높고 참된 意味에 있어 ‘文學하는 것’이란 ‘究竟的 生의 形式’이라 한 것이다. 내가 생각 하는 바 ‘文學하는 것’의 最高志向을 말한 데 不過한 것이다. (2月 10日)

『백민』 제4권 2호, 1948년 3월

이 사료는 『백민(白民)』 1948년 3월호에 실린 김동리의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문학의 내용(이상성)적 기초를 위하여-」라는 글이다. 『백민』은 1945년 12월 김현송(金玄松) 등이 창간한 종합 문예지였다.

김동리(金東里, 1913~1995)는 한국의 소설가⋅시인으로 본명은 김시종(金始鐘)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반의 십자가』, 『무녀도』 등이 있다. 김동리는 1913년 경상북도 성건리에서 출생하였고, 17세 때 서울 경신중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귀향하여 철학 서적과 세계 문학, 동양 고전에 심취했는데, 이때부터 『매일신보』와『중외일보』에 시 「고독」과 「방랑의 우수」 외에 수필 등을 발표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했으며,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가 당선하였다. 김동리는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하였고, 그 뒤 「바위」와 「무녀도」 등을 발표하였다. 김동리는 1937년 서정주, 김달진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하다가 진주 다솔사 소속의 광명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2년 소설 「소녀」, 「하현」 등이 일제 총독부의 검열을 받아 전문이 삭제되고 광명학원이 폐쇄되자 김동리는 절필을 선언하였다.

해방 이후 문학계에서도 좌우의 이념 대립이 벌어졌다. 당시 좌파 계열인 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던 문학인들은 임화⋅김동석⋅이태준⋅이동주 등이었고, 우파 계열인 청년문학가협회에서는 김동리⋅조연현⋅서정주⋅박두진 등이 활동하였다. 잡지도 『문학』⋅『신문예』⋅『민성』 등은 좌파 계열, 『백민』⋅『해동공론』⋅『문학정신』 등은 우파 계열로 나뉘었다. 임화⋅김동석과 김동리⋅조연현 사이에서 벌어진 순수⋅참여문학 논쟁을 통해 당시의 이념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순수⋅참여문학 논쟁에서 김동리는 문학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주장했고, 김동석은 문학의 사회성과 계급성⋅역사성을 주장하였다. 이때 김동리는 ‘계급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해 ‘인간주의 민족문학론’을 제창하며 ‘본격 문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에는 당시 김동리의 문학관이 잘 드러나 있다. 김동리는 이 글에서 문학하는 것은 ‘구경적 삶의 형식’이라 했는데, ‘구경적 삶’이란 작가가 지닌 무한한 자아 추구이며 또한 인간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고, 새로운 신을 찾고 구하는 것이며, 문학을 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과 자율성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해방직후의 민족문학운동 연구』, 권영민,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6.
『한국문학의 이해』, 김흥규, 민음사, 1998.
『한국문학의 관계론적 이해』, 최유찬, 실천문학사, 1998.
편저
『해방공간의 민족문학 연구』, 김윤식 편, 열음사, 1989.
『한국문학의 흐름과 이해』, 손미영 외, 아세아문화사, 2002.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