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문화현대광복과 분단의 문화

1968년 제정된 국민 교육 헌장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 : //www.law.go.kr/)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www.law.go.kr/)

이 자료는 1968년 12월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이다. 1968년 6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 정립과 시민 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 확립’을 위해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총망라하여 교육 장전의 제정을 지시하였다. 이를 위해 문교부는 26명의 기초 위원과 48명의 심의 위원을 선정하고, 개혁 위원 가운데 박준규⋅이만갑⋅김성근⋅정범모⋅이규호⋅박희범 등이 제출한 논문을 토대로 대학교수 20명으로 구성한 초안작성준비위원회를 3차례 개최하였다.

이를 기초로 1968년 7월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박종홍⋅이인기⋅유형진 등이 헌장 초안을 수정하였다. 그 뒤 헌장 제정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주관한 전체 회의가 4차례,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의가 4차례 개최되었고, 그 결과물인 헌장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 뒤 헌장은 1968년 11월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12월 5일 대통령이 이를 선포하였다.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선포일인 12월 5일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삼고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토록 하였다.

문교부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헌장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문교부는 이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교육과정 재편을 추진하였고, 『국민교육헌장독본』 265만 부를 발간하여 각급 학교와 기관에 배부하였으며, 국민학생을 위한 『헌장 그림책』 130만 부를 발간 배포하였다.

각급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암기할 것을 강요하였고, 암기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체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암송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유신 체제에서는 매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행사를 개최하였으나, 1994년부터 기념행사가 폐지되었고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도 삭제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정부 공식 법정 기념일이었던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도 폐지되었다.

한편 1978년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 지표」라는 성명서 때문에 송기숙 등 대학교수 11명이 해직되었고, 해직 교수 중 일부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대학교수들이 외신에 배포한 「우리의 교육 지표」라는 성명서 가운데 “「국민교육헌장」이 교육 실패의 본보기이고, 행정부가 이를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제하의 교육 칙어를 연상케 한다”는 부분 때문에 발생하였다. 당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아래에서는 대학교수들이 주장하는 학원의 민주화⋅인간화, 민주주의에 대한 정열, 외부 간섭 배제, 자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교육 등이 ‘사실 왜곡’과 ‘정권 비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국민교육헌장과 박정희 정권의 국민통제」,,성윤정,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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