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FIFA 월드컵과 한국사회
가. 화해와 질서의 월드컵
2002년 6월, 단 31일 동안 세계는 유쾌한 충격에 빠졌다. 월드컵 기간 동안 전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코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공동 개최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낸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조셉 블래터 FIFA 회장의 발언은 단순히 경기 운영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월드컵 본선 출전 6회 만에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4강 진입에 성공한 한국의 선전도 경이로운 사실이었지만, 그것보다 세계를 놀라게 한 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한국인들의 모습이었다.
2002년 6월 4일 벌어진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50만명에 이르던 길거리 응원단은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선 7백만명으로 불어나, 전체 인구의 20%가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열정에 세계는 놀랐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규모의 길거리 응원단이 거리와 인도를 뒤덮었지만 한국인들은 질서와 청결로 다시 한번 세계에 경이로움을 선사하였다.
그러나 정작 정열과 질서와 청결이라는 시민 의식으로 세계인들의 찬사를 얻어낸 한국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스스로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과연 우리들 속에 이런 에너지가 있었나”를 외치면서 열정의 진원지를 찾으려고 부산을 떨었다. 그것은 사회 계층간의 위화감이 외환 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던 시점에서 경험한 것이어서 더욱 값질 수밖에 없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어 모두가 붉은 티셔츠를 입고 뛰어나와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축제를 만끽하였다. 기성 세대들은 W세대(월드컵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응원 문화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태극기에 대한 친밀감을 새삼스럽게 느끼기 시작하였다.
지역과 계층, 세대와 성별의 차이는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그렇다고 월드컵이 잉태한 애국심과 민족주의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흐른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응원단은 상대팀의 선전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경기장 내에서나 밖에서나 훌리건식의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 세계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번 2002 FIFA 월드컵이 한국인들에게는 성공과 자축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있다는 안도감과 자신감이 한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이라는 쾌거와 어우러져 배타성과 폐쇄성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즉 이번 대회에서 한국인들은 세계화와 민족주의가 하나로 조화될 수 있다는 교훈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또 한 가지, 수십만 명이 모인 속에서도 별다른 안전 사고 없이 ‘자율’과 ‘질서’ 그리고 ‘시민 의식’과 ‘자발성’을 함께 보여준 한국인들은 ‘즐기되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했으며, 밀실 문화에서 광장 문화로 변환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신고식을 치러내면서, 자유와 책임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게 된 것은 이번 월드컵이 한국인들에게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이 경제적인 성장과 발전에만 급급한 국가가 아니라, 문화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오를 만한 수준에 놓였음을 증명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나. 붉은 악마와 월드컵 세대
외국의 그 어떤 국가 대표팀 서포터스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조직적인 경기 응원과 장관을 이뤘던 길거리 응원의 핵심에는 ‘12번째 태극 전사’로 불렸던 ‘붉은 악마’(Red Devils)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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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는 이번 월드컵 대회를 통해서 전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당김 박자를 이용한 박수 그리고 응원 도구화된 대형 태극기 등 몇 가지 아이콘을 남겼다. 먼저 남도 민요를 연상케 하는 ‘오~필승 코리아’와 같은 응원가와 함께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응원 구호로 삼았으며, 독특한 다섯 박자의 당김 박수로 응원의 열기를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가로 60미터, 세로 40미터(펼치면 720여 평)의 무게 1.5톤에 이르는 대형 태극기 응원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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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응원 집단을 뛰어넘어 일종의 문화적 키워드로 받아들여진 붉은 악마는 W세대(월드컵세대)라는 ‘신인류’의 탄생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이들 W세대들은 이념이 아닌 재미와 취향을 구심점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기왕의 4‧19 세대나 6‧3 세대, 그리고 386 세대와는 차별되는 세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태생적 차이로 인해 W세대들은 이전의 세대들이 보이지 않던 몇 가지 특성을 나타내었다. 우선 이들은 취향과 공통의 재미를 추구할 수만 있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화될 수 있다는 특징을 보였다. 이것은 이들이 외국에 대한 배타성이나 과거사와 연관된 열등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매 경기마다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한국전에서도 상대팀을 비방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응원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결승행을 판가름하는 독일과의 준결승전이나 터키와의 3위 결정전에서는 상대팀을 응원하기 위한 응원단을 조직하는 여유까지 선보인 것이다. 즉 이들의 애국심은 배타성이 제거된 것이었고, 이를 두고 기성 세대들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세대의 등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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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를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사회적 금기의 색이었던 붉은 색을 신바람과 활력의 상징으로, 신성의 대상이었던 국기를 친숙한 소지품의 항목으로 치환시킨 W세대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집단주의의 수직적 공동체주의를 벗어나 개인주의에 기초한 수평적 결합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역동성이 미래 사회를 이끌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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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과 한국사회」, 2002년 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