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한국의 건국 신화 읽기4. 신라의 건국 신화 및 시조 전승 읽기1) 신라의 시조 전승과 내용 구성

다. 김알지 신화

신라 시조 전승 중에서 가장 늦게 등장하는 것이 김씨 왕실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이다. 이 신화 역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전해진다. 먼저 『삼국사기』의 전승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재 김알지 신화

〔사료 4-1-07〕『삼국사기』 권 1 신라 본기

석탈해왕 9년(서기 65)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조그만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함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 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함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이라 하였으며, 시림이라는 이름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하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계림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으로 사적 제19호이다. 13대 미추왕 이후 신라의 왕은 주로 김씨들이었는데 계림은 시조 탄강지로서 더욱 숭앙되었다. 지금 숲 가운데 순조 3년(1803)에 세운 계림비가 있는 비각이 있다.
출처: 문화재청
경주 계림 비각
출처: 문화재청

위에서 보다시피 김알지 신화도 신성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신화의 현장인 시림(始林)은 수목 신앙과 연관된다. 흰 닭은 혁거세 신화에 등장하는 흰 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시림이라는 숲에서 알지의 탄생을 알리는 흰 닭의 울음소리는 혁거세 신화에서 나정 옆의 숲에서 흰 말이 울었다는 내용과 그 신화적 모티브가 매우 유사하다.

금으로 된 함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것은 알지가 난생(卵生)이 아니라 태생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알지라는 이름 때문에 ‘알’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래 『삼국유사』의 알지 신화에서는 ‘알지’는 신라 말로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혁거세 신화와 탈해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난생적 요소가 알지 신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금함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 이는 알지의 탄생이 신성한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금함이 걸려 있었던 나무는 곧 천산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 목이나 세계 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자체가 천강(天降)이라는 신화적 요소를 보여 준다. 알지 신화는 천강과 난생이라는 보편적인 신화 요소에서 천강 요소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김알지 신화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내용이 보다 자세하다. 그 내용도 함께 읽어 보도록 하자.

▣ 『삼국유사』 소재 김알지 신화

〔사료 4-1-08〕 『삼국유사』 김알지 탈해왕 대(金閼智脫解王代)

영평(永平) 3년 경신(庚申) 8월 4일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가는데 시림(始林; 또는 구림(鳩林)) 가운데 크고 밝은 빛이 있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뻗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은 상자로부터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그대로 이것을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숲에 나가서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 있던 (아이가) 바로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였다. 알지는 우리 말[鄕言]로 아이[小兒]를 일컫는 말이다. (왕이 아이를) 안고 궁으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면서 춤추고 뛰어 놀았다. 왕이 길일을 택하여 태자로 책봉했으나 후에 파사(婆娑)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 상자에서 나왔으므로 김(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 仇刀)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알지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도 『삼국유사』는 탈해왕 4년, 『삼국사기』는 탈해왕 9년이다. 그리고 닭이 우는 소리도 『삼국사기』에서는 왕이 듣고 호공을 시켜 알아보게 하였지만, 『삼국유사』에서는 호공이 먼저 듣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직접 계림에 행차하여 금궤를 열고 사내아이를 얻어 궁궐로 돌아왔다. 즉 알지의 탄생을 둘러싸고 호공과 탈해의 관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왕이 알지를 안고 궁궐로 돌아올 때 “새와 짐승들이 따르고 기뻐하면서 춤을 추었다.”라는 내용은 혁거세 신화에서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추었다.”라는 대목을 연상하게 한다. 김알지 신화와 혁거세 신화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는 『삼국유사』에서는 탈해가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잇고자 하였으나, 알지가 파사왕에게 양보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어서 알지 이후의 세계를 열거하고 미추가 왕위에 오른 사실을 기술하여 김씨 왕실의 정통성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알지가 왜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따라서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다는 내용은 아마도 후일에 김씨 왕계가 등장하면서 자신들 왕계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부가한 내용으로 짐작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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