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한국의 건국 신화 읽기5. 가야의 건국 설화 읽기1) 김수로왕 신화의 전승과 성립

나.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 - 김수로와 탈해의 경쟁

〔사료 5-1-03〕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김수로왕 신화

(나) 이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임신을 하여 달이 차서 알을 낳았다. 그 알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기에,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이 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락국에 왔는데, 키가 3척이고 머리 둘레가 1척이었다.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러 왔소.”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다.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 내 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탈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법(術法)으로 겨루어 보겠는가?”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었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이렇게 변하는 데 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탈해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본 모습이 되었다.

탈해가 그제야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한 것은, 모두 성인께서 죽이시기를 싫어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과 왕위를 다투기가 진실로 어렵습니다.” 곧 왕에게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갔다. 이웃 교외의 나루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닿는 수로(水路)를 따라가려고 했다. 왕은 그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반란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였다. 탈해가 계림(鷄林)의 국경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여기에 실린 기사는 신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 수로와 탈해의 대결

(나) 부분은 수로왕이 왕위에 오른 뒤, 새로 등장한 탈해와 경쟁하여 이들의 도전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수로왕 등장 이후에도 이러한 이주민 관련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수로 집단의 등장을 전후한 가야 지역에서 이주민의 이동이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수로 집단을 중심으로 한 소국으로서의 가락국이 형성되는 계기도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이 주된 배경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수로왕 신화에서 ‘탈해’라는 인물의 등장이 과연 본래 수로왕 건국 신화에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탈해는 신라의 시조 설화에서 석씨 집단의 시조로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로왕 신화와 신라의 석탈해 설화를 연결시켜 보면 ‘탈해’라는 인물이 실제로 가야와 신라 지역에 등장하였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설화적 존재인 ‘탈해’가 가야와 신라의 시조 전승에서 유사한 성격의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수로와 탈해 관련 설화는 후대에 부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수로 신화의 성립 시기를 따져 보면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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